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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단상] 에포케(판단중지)
최정복 (엠마오대학 기독상담학과 교수) | 승인 2020.05.28 14:38

코로나 팬데믹으로 멈추고 닫힌 것들이 많았다. 건강한 사람도 여러 형태의 격리와 정지를 강요받았다. 서로에게 의존했던 삶에서 홀로서기를 배워야 했다. 두어달이 지났지만 내게는 아직 낯설고 불편하다. 이 기간이 도박 중독의 치료기회가 되었고 어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작한 사람도 있다. 부부  혹은 자녀들과의 관계를 회복한 사람들도 있다. 다행한 일이다. 
반면에ABC공영방송에 따르면 호주인 2,297명의 설문조사 결과,  우울과 절망을 느끼는 횟수가 3배 이상, 혼란을 느끼는 사람수는 5배 이상이라고 한다. 학생과 젊은이, 장년이나 노년에 상관없이 엇비슷한 블루 터널을 통과 중인 것도 사실이다. 괜찮은 척 하다보면 속 사람은 더 아플 수 있다. 적응하기 힘들다. 돈 문제로 심각하다. 지루함, 무기력함, 우울증과 분노를 느낀다. 심리적 탈진을 경험하고 있다 등 문제를 사실대로 인정할 때, 오히려 건강해 질 수 있다.정부에서 다양한 무료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보통 부부나 가족관계도 갈등에 빠지고 악화되기 쉽다. 실제로 가정폭력이며 온라인 도박 등이 증가한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소통과 공감만이 이런 아픔 등을 예방할 수 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피차 성급한 판단을 보류하고, 먼저 상대의 마음이나 감정을 느끼며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때로 내 마음을, 자주 변하는 감정을 자신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배우자나 자녀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찾아 구하며 댓가를 지불해야 할만큼 귀한 가족 관계이지 않는가!
다른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서도 우리는 너무 쉽고 빠르게 판단하기 마련이다. 단지 우리의 눈높이와 기준에서 말이다. 가령 프레드 홀로우(Fred Hollows) 재단에 의한 저개발국가 맹인들의 최근 실태를 읽었다고 하자. 5명 중 4명은 20분여의  간단한 수술을 받으면 24시간 후에는 볼 수 있다. 그러나  케냐같은 나라에서는 $25을 지불할 수 없어 혹은 그런 수술 기회를 가질 수 없어 맹인으로 산다. 어찌 그런 가혹한 일이 있는가? 그렇게 한심한게 나라인가? 우리는 즉시 분노하며 혹평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상황을 더 알 수도, 바꿀 수도 없다. 대신 판단을 멈추고, $25이라도 기부하는 것이 이 문제와 소통하며 변화에 참여하는 방법이 아닐까?
에포케(epoché)는 헬라어 에페케인(멈추다)에서 비롯된 철학용어로 ‘판단중지’라는 뜻이다. 심리학에서는 의사소통과 공감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자신의 판단을 보류하고, 먼저 상대의 말, 생각과 형편 그대로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 때 소통과 공감이 가능하다.  우리 모두에게는 편견과 선입관이 있지 않는가?  먼저 그런 자신의 판단을 멈추라. 그런 판단이나 관점에 따른 즉흥적인 말이나 댓글, 행동을 중지하라. 고리타분한 말처럼 들릴 수 있다. 에포케의 본질은 이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마음의 소통을 시작하는 방법이다. 공감과 변화를 이루기 위한 과정이다. 
꽃들은 사람들을 판단치 않고 꽃을 피우며 향기를 내품는다. 해와 달, 별도  각기 다른 사람들을 판단치 않고 자신의 궤도를 돌며 자리를 지킨다. 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공감을 주는 것이 아닐까? 무지개도 그렇다. 찬비가 추적이며 햇살이 뒤섞인 그런 아침이었다. 한 친구의 아내가 큰 수술을 받기 전날이었다. 브리스베인 워터에서 시작하여 건너편 산등성이 끝까지 선명한 무지개가 떠 있었다. 내가 본 것 중 가장 크고 완전한 무지개였다. 감동을 느끼며 쳐다 보았다. 친구 부부를 위해 기도했다. 모바일로 이 무지개 사진을 찍어 그 친구에게 보냈다. 어떤 위로와 소망, 약속의 메시지로 공감되기를 원해서다.
백무산 시인은 ‘정지의 힘’이라는 시에서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달리는 이유를 안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가 조금씩 진정되며 6월부터 여러 규제와 멈춤 등이 완화 된다. 이 사태 또한 끝나고 지나갈 줄 안다. 그러나 이 멈춤의 영향으로 미래의 세상과 삶의 방법은 크게 변화될  것이 분명하다. 다만 큰 혼돈이 없기를 바란다. 그간 정지에 있던 어려움들을 통해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배웠으면 한다. 그토록  숨가프게 달려온 우리 삶의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스트우드 한인상우회의 주관으로 동포 청년들을 위해 8주 동안, 물품지원과 함께 3000여개의 무료 도시락을 제공했다는 소식을 신문을 통해 알게됐다. 먼저 자신들의 사업이 어려운 중에도  동포 청년들의 힘든 형편에 대한 배려와 공감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결과로 도움을 받은자, 여러 한인 후원자, 직접 일하고 나눈 모두에게 따뜻한 감동을 주었다. 상우회 부회장으로 이 나눔을 위해 많이 애쓴 한 분은 “이민 생활 중 가장 큰 보람이었다”라고 말했다. 그것을 읽으며 나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엔돌핀은 통증을 해소하고 암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 최근 의학은 이 엔돌핀보다 4000배  효과가 큰  ‘다이돌핀’을 발견하였다. 이 호르몬은 어떤 좋은 음식이나 신약으로 가능치 않다. 큰 감동을 받을 때, 특히 어떤 진리를 깨달았을 때, 우리 안에서 생성되는 호르몬이다. 어려운 때 일수록 누군가를 탓하고, 분노하기 쉽다. 그 대신에 피차 ‘에포케’를 선택하면 어떨까? 먼저 이웃의 말과 형편을 그 마음을 그대로 느끼며 받아들이는 배려와 소통, 공감이 필요치 않는가! 거기에서 크고 작은 감동의 물결이 시작되고 확장될 수 있다. 많은 한인 동포들이 우리안에 주어진 다이돌핀의 강력한 효과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최정복 (엠마오대학 기독상담학과 교수)  jason.choi4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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