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애봇 전 총리

영연방국가인 호주에서는 1월(26일 오스트레일리아 데이)과 6월 여왕 생일에 국민훈장(Order of Australia) 수훈자를 발표한다. 대체로 한 분야에서 오랜 기간(거의 평생) 봉사해 온 시민들과 특정 분야에서 탁월한 공적을 세운 호주인들, 군과 경찰 봉사자들이 훈장을 받는 경우가 많다. 
 
올해 여왕 생일 국민훈장 수훈자들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사람은 토니 애봇 전 총리일 것이다. 그는 최고등급 영예인 컴패니언(Companion of the Order of Australia: AC) 수훈자 3명에 포함됐다.  
국민훈장 위원회는 수훈자별로 간략한 공적(수훈 이유)을 발표한다. 애봇 전 총리는 “국민들(사회)과 의회에 기여, 교역, 국경통제, 원주민 커뮤니티 기여”가 골자였다.

자유당 강경 보수파의 리더로 불린 애봇 전 총리(28대 호주 총리)는 당내 퇴출로 총리직 재임 기간(2013-2015년)이 매우 짧았지만 많은 파문을 남겼다. 그의 총리 시절은 호주 정치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기간 중 하나였다. 

애봇 전 총리의 대표적인 업적은 이민정책과 국경통제로 난민신청자(보트 피플) 숫자를 현저히 줄인 것이 꼽힌다. 야당 대표 시절 그는 총선에서 난민선 차단을 의미하는 '스톱 더 보트(Stop the boat)' 구호로 톡톡하게 재미를 봤다. 이 구호는 당시 야당 이민담당이던 스콧 모리슨 현 총리가 등장시킨 슬로건이었다. 관광 마케팅 전문가 출신인 모리슨 총리는 슬로건 만들기에 매우 능숙한 정치인이다. 

그러나 애봇 전 총리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인권 차원)에서는 그의 ‘초강경 이민정책(hardline immigration policy)’은 수치스럽고(shameful) 잔인(cruel)했다고 비난했다. 오랜 기간 해상에 표류해온 보트피플을 공해 상에서 내쫓거나 나우루 또는 마누스섬 수용소에 수년동안 억류시켰다. 아동을 포함한 수천명을 무한정 억류(indefinite detention)시킨 강경 정책으로 일부 아동들까지 정신질환에 시달리거나 자살을 한 경우도 있었다. 국제사회에서 호주의 인권보호 이미지가 여지 없이 퇴색했다. 

인권법률센터(Human Rights Law Centre)의 데이비드 버크(David Burke) 법무소장는 “애봇 전 총리의 국민훈장 컴패니언 수훈은 인권 차원에서는 전혀 축하할 일이 아닐 것”이라고 트위터에 불편한 입장을 전했다.  

원주민 커뮤니티에 대한 애봇 전 총리의 기여도 반론이 만만치 않다. 원주민 작가 클레어 콜만(Claire Coleman)은 “그는 원주민들의 친구였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우리를 모욕했고 여러 원주민 서비스를 차단했다”고 질타했다. 

탄소세 폐지 등 환경 이슈에서는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기후변화를 사실상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구시대적인 환경정책을 고수했다. 사회적 이슈에서도 동성결혼 강력 반대 등 강경 보수주의자로서 앞장섰다.
애봇 전 총리는 보수 성향 국민들에게는 물론 박수를 받을지 모르지만 진보성향인 호주인들이 가장 기피하는 정치인 중 한 명이었다. 지난 총선에서 그는 자유당 텃밭인 지역구(시드니 노스쇼의 와링가)에서 전직 총리임에도 불구하고 무소속 변호사에게 패배하며 낙선하는 망신을 당해 정계를 떠나야 했다. 

이처럼 애봇 전 총리는 국민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지도자였다. 국민들 상당수가 그의 최고등급 국민훈장 수훈에 어쩌면 반대하거나 비판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예의 AC 훈장을 받았다. 이를 보면서 호주가 정치적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는 나라(politically diverse nation)임이 분명하다는 점이 거듭 확인됐다. 또한 비록 반대와 비판의 목소리가 있을망정 그런 점도 포용할 수 있는 성숙함과 다양성이 있는 사회라는 점도 다시 알게 됐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로 비정상이 ‘뉴 노말’이 되는 시대에 국민훈장 수훈자 선정에도 그런 추세를 반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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