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앞에서 발이 멎었다. 볼수록 탐스럽게 잘 생겼다. 시드니 7월, 이맘때쯤의 배추는 그 튼실한 자태와 초록빛이 특히 아름답다. 다른 볼일로 나왔는데, 마트 앞에서 싱싱한 배추를 보고는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있다. 

얼마나 실한지 내 머릿속에서는 벌써 배추에 칼집을 넣고 있다. 칼끝에 힘을 주면 쩍 벌어지면서 드러날 노란 속살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치마폭처럼 겹겹이 쌓인 초록 잎 속의 노랑은 여인네 속곳처럼 은밀하기까지 하다. 어느새 입에 침이 고인다. 노랑 속잎에서 나온 달큰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지고 있는 것이다. 머리채를 잡고 슬쩍 칼집을 한 번 더 넣고는 풀어 놓은 소금물에 담근다. 소금에 절여진 배추는 얼마나 탄력 있고 야들야들한가. 마트에 쌓인 배추 앞에 서서 나는 벌써 배추를 절이고 있다. 나도 어쩌지 못하는 배추 사랑이다. 

문득 여고 시절 친구들이 불렀던 별명이 생각난다. 각자 외모에서 연상되는 이름을 짓기로 했다. 홀쭉이, 목련, 땅콩... 등등 여러 이름이 나왔다. 그때 친구들이 내게 지어준 별명은 조선 배추였다. 퉁퉁한 몸집에서 어쩐지 조선 여자의 향기가 난다며 깔깔 웃으며 붙여준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속이 꽉 찬 배추는 중국종자인 호 배추이다. 토종 조선 배추는 잎이 길쭉해서 얼갈이배추와 비슷하며, 몸통이 결구되지 않아 벌어져 있다. 암튼 나는 순수 토종의 모습이란 걸로 이해하고 이 별명을 여태 좋은 느낌으로 기억하고 있다. 

사실 나의 지나치리만큼 심한 배추 사랑은 김치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아이들이 결혼해서 나간 뒤 이제 두 사람만 남았는데도 나의 김치 욕심은 여전하다. 김치 통이 비어있으면 숙제해야 할 일이 남아있는 것처럼 불안하다. 김치냉장고에 배추김치는 물론 깍두기, 동치미, 열무김치, 갓김치, 오이소박이, 알타리 김치 등을 사시사철 꽉 채워 놓아야 안심이 된다. 은연중에 김치 통을 채우는 일이 살림의 기본 척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민 초창기부터 고수하고 있는 김치 담그기는 어쩌면 타국에서 내 정체성을 지키는 소극적인 나만의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이민 초기에 배추를 편하게 구할 수 없는 지역에 살았다. 지금은 사는 지역마다 식품점이 있어 편리하지만, 그때는 먼 거리에 있는 곳으로 배추를 사러 가야 했다. 주말에 열리는 플래밍턴 야채 시장을 자주 찾곤 했는데 이른 새벽에 부지런을 떨고 가야 한국농장에서 나오는 맘에 드는 싱싱한 배추와 조선 무를 만날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늦은 날엔 이미 파장을 하고 말아 헛걸음을 쳐야 했다. 브리스밴에 사는 동생은 그곳에서는 조선 무를 구할 수 없다고 시드니에 내려 올 적마다 조선 무와 알타리를 욕심내어 잔뜩 사 가곤 했다.
김치를 만드는 재료 중 제일 구하기 어려운 것은 고춧가루였다. 한국 농장에서 만든 태양초가 있지만, 그 태양초를 넉넉히 사려면 예약주문을 해야 했다. 고춧가루 소비가 많은 내게는 값도 비싸고 양은 턱없이 적게 느껴져 맘 놓고 쓸 수가 없었다. 식구들이 한국에 갔다 올 때면 나는 고춧가루를 제일 먼저 챙겼다. 아버님이 농사지어 보내주는 고춧가루는 내겐 보물 같은 존재였다. 

지난여름 시드니는 이상기온으로 농작물 피해가 심했다. 그 여파로 배추의 질은 떨어지고 값이 폭등하여 김치는 그야말로 金치 였다. 식품점에서는 재빠르게 한국에서 건너온 김치로 사람들을 유혹했다. 값도 싸고 한국의 가을배추로 담은 김치라는 점은 사람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할 만했다. 나도 솔깃한 맘으로 사 와서 김치 통에 채워 넣었다. 배추 값이 폭등한 상황에서는 싸다고 하지만 한 박스 뜯어봐야 얼마 되지 않았다. 저녁상에 내가 만든 김치 인양 올렸다. 남편은 한입 먹어보고는 바로 이건 무슨 김치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을 않고 넘어 갔는데, 김치를 다 먹어 갈 무렵 남편과 같이 장을 보러 마트에 갔을 때 ‘김치는 당신이 담는 게 좋겠어.’라고 말해서 뜨끔했었다. 

내게는 김치로 얽힌 추억도 많다. 캐나다로 이민 간 남편의 친구는 전화 통화를 할 때면 내가 만든 김치찌개가 생각난다고 했다. 아무 때고 남편 친구들이 갑자기 놀러 오면 술상을 봐야 했다. 별달리 할 줄 아는 건 없고 후다닥 만들어 내놓는 게 김치찌개였다.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 아들의 친구도 오랜 기간 함께 지냈었는데 우리 집에서 먹던 김치 맛이 늘 그립다고 말했다. 내가 만든 김치로 향수를 느낀다고 하니 고맙기도 하고, 마음이 뿌듯했다.
한국에서 김장하는 날 떠들썩하게 이웃들과 정을 나누던 일은 이젠 다 추억이 되었다. 지금은 그때 비하면 비교할 수도 없이 적은 양이다. 나 혼자 조금씩 일을 쪼개어서 하고 밤새 절인 배추를 아침 일찍 일어나 시작하면 아침 먹기 전에 끝나버린다. 누구의 점심을 차려 줄 일도 없는 김장이다. 어쩐지 조금 쓸쓸하다. 

김치는 그냥 김치일 뿐인데 왜 그리 힘들게 김치에 신경을 쓰냐고 딸이 타박하지만, 김치를 해 놓고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즐겁기 그지없다. 얼마 전 모임이나 행사가 있을 때 김치를 가져간 일이 있다. 모두 맛있다며 내게 김치 장사를 해보면 어떠냐는 제안과 주문을 받기도 했다. 사업적으로 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기분이 좋아 저절로 으쓱해지는 순간이었다. 요즘은 외국인들도 김치 맛에 빠져 담는 방법을 알아내어 그들 나름의 김치를 만들기도 한다. 어느 날 같이 일하던 동료 웬디가 유튜브 보고 배웠다며 자기가 만든 김치를 먹어 보라고 내게 내밀었다. 고춧가루를 넣긴 했지만 허멀건 빛깔의 김치는 배추 샐러드에 가까웠다. 맛 보다는 그의 열의에 감동해서 손을 치켜세웠다. 한국 아줌마들이 김치 담그는 일을 게을리 하다간 아마도 조만간 외국 사람들이 김치를 더 잘 만드는 세상이 올지 모른다.

성큼 배추 앞으로 다가간다. 
7월이 다 가기 전 김장을 해야겠다. 갑자기 손길이 빨라진다. 치렁치렁 무청이 달린 시퍼런 무도 담고 탐스러운 배추도 욕심껏 쇼핑 트롤리에 담는다. 오늘은 아이들도 모두 부르고 김장하는 날의 기분을 살려 맛있게 속 쌈도 만들고 돼지고기도 삶아야겠다. 실한 배추를 쭉쭉 찢어 양념을 넣고 버무려 겉절이도 만들어야겠다. 노란 배추의 고소함에 쓸쓸한 마음이 덮어지도록 입이 미어지게 배추쌈을 먹어야겠다.

나는 조선 배추 아줌마, 이름 값해야지.

김 미경  수필가
수필집 < 배틀한 맛을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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