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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브릿지] 시간 여행
황현숙 (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7.30 14:33

사람들은 오래된 추억을 실낱같은 그리움으로 가슴 한편에 소중하게 담아둔다. 잊어버린 듯 희미해진 옛일들이 하나씩 조심스럽게 바깥으로 스며 나오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무게에 눌리며 단지 잊은 것처럼 착각하며 살 뿐이다. 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은 나만의 지난 시간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과의 만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참으로 이상한 마법의 시간 속에 걸려들었다. 날이 갈수록 사람과 사람사이가 멀어져가니 자주 만나서 수다 떨던 일도 먼일같이 느껴진다. 우리 눈에 눈물이 없다면 그 영혼에는 무지개가 없다고 한다. 우리의 가슴이 점차 메말라가지만 나보다는 우리라는 말을 더 따뜻하게 여기는 세상에서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답답한 마음에 참선 공부를 오래한 지인에게 화두처럼 한 질문을 던져 보았다. “사람은 변화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이 생기기 때문에 삶 자체를 회피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정보를 얻게 되면 어깨가 눌려지는 무거움 때문에 순수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곧 사람의 본성론입니다.”라는 철학적인 답을 들려주었다. 불안한 심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곡선의 길이라도 느슨하게 걸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시기라 여겨진다.  
 
최근에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가 자주 선보이고 있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흔들리니 시간여행이라는 비현실적인 상상을 통해서 작은 위로라도 가져보라는 의도가 아닐까.  그래서 시간여행자를 통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필요한 ‘사랑’이라는 주제를 시청자들에게 다시 한 번 일깨우게 만든다. 시간여행은 보통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가서 잘못된 일을 바르게 고치거나 혹은 미래로 가서 닥쳐올 재앙을 미리 막는 설정으로 되어있다. 두 개의 다른 내용으로 연출된 ‘어바웃 타임(About time)’이라는 미국영화와 한국드라마를 보면서 나 역시 뚜렷한 주제의식을 만날 수 있었다. 

미국판 영화인 어바웃 타임은 평범한 한 남자대학생이 스무 살이 되던 날, 아버지로부터 자기 집안의 성인이 된 남자에게 유산으로 물려받는 특별한 능력에 대해서 듣게 된다. 남자주인공은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며 주어진 행운을 즐기기도 하고 한편 혼란스러워 하기도 한다.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에 돌아가서 지난날의 사람들과 만나서 행복한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과거의 사건을 바꾸게 되면 미래가 바뀌고 삶 또한 다르게 변한다. 놀라운 비밀과 능력을 아들에게 알려준 아버지였지만 폐암에 걸려서 죽음을 기다리는 상태가 된다.  아버지의 죽음을 막고 싶은 아들은 과거의 젊은 청년이었던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담배를 끊고 건강을 지키라는 충고를 하고 싶어 하지만 아버지는 거절하며 자신의 삶을 바꾸지 못하게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의 운명을 바꾸면 자랑스러운 아들의 아버지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해준다. 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전해주는 메시지에 내 가슴이 울렸다. 아버지는 인생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배웠던 삶의 지혜를 아들에게 들려주며 행복하게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 
‘아들아, 인생은 모두가 함께 하는 여행이다. 매일 매일을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즐기는 것이다. 오늘 하루가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열심히 살아가며, 매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가고, 그것이 진짜 삶의 행복이라는 걸 배우게 된단다.’ 

나에게 시간여행이 허락된다면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10살 미만 무렵의 어린 시절과 20살의 풋풋했던 대학 신입생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만약에 내가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러나 한 가지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이 나를 기다린다는 믿음은 가질 수 있다. 체격이 큰 편이었던 아버지는 어린 막내딸을 배위에 올려놓고 잠을 잘도 재웠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포근했던 아버지의 체온과 토닥여주던 손길을 잊을 수가 없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아버지와 함께 포장마차에 가서 바다냄새 물씬 풍기는 홍합탕과 함께 달콤한 동동주를 마시며 맷돌에 갈아서 갓 구워낸 구수한 빈대떡을 나눠 먹기도 했다. 
자전거 뒷좌석에 나를 태우고 힘껏 페달을 밟으며 파도가 넘실대는 해운대 백사장을 신나게 달려주었던 나의 아버지. 어리광 피우던 막내딸이 대학생이 되어서 함께 술잔을 나누는 부녀사이가 되었으니 참 많이 흐뭇하셨던가 보다. 
아직도 철이 덜 든 이 나이의 나를 어찌해야 하나. 따뜻한 그리움이 커지는 날에는 잠시라도 시간 여행자가 되어보고 싶다.      

만약에 나에게 주어진 수명 시간을 디지털시계처럼 내 팔목에서 볼 수 있다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 갈 수 있을까. “멈추고 싶은 순간 : 어바웃 타임(About time)”은 색다른 내용을 담은 한국드라마의 제목이다. 드라마는 젊은 남녀의 삼각관계라는 기본적인 사랑이야기 안에 뮤지컬이 들어가고 플러스로 죽음의 시간을 엿볼 수 있는 아릿한 삶의 휴머니티를 담아냈다. 여주인공은 다른 사람의 수명시계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7살 어린 나이에 할머니가 차사고로 죽는 모습을 목격한 이후로 다른 사람의 수명시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수명시계는 사람들의 팔목에 그 사람의 남아있는 삶의 시간을 디지털시계처럼 날자, 시간, 분, 초까지 정확한 숫자로 보여준다.  다른 사람의 남은 시간이 여주인공의 눈에 보일 때면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자책감에 몹시 괴로워한다. 결말은 절실한 사랑의 힘은 죽음이 닥쳐와도 연인을 갈라놓을 수 없는 끈질긴 운명으로 엮어놓는다. 여주인공의 특별한 능력은 차사고로 인해서 사라지게 되지만 두 연인들은 예전보다 아주 더 많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남아있는 삶의 수명시간에 연연해하며 매달리지 않아도 되니까.
  
나 자신이 궁금해졌다.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수명시계가 언제까지 나를 끌고 갈려는지. 하루하루를 여행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즐겁게 오늘을 살고 후회하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둔다. 그리고 사람, 삶, 사랑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 철든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 속에서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황현숙 (객원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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