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8월 19일은 UN이 지정한 “세계 인도주의의 날”입니다. 인도주의가 무엇이냐고요?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인종, 민족, 국가, 종교를 초월하여 인류의 안녕을 꾀하고 모든 인류의 공존과 복지를 위해 노력하는 사상과 정신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굿네이버스’와 같은 많은 NGO 단체들도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모든 프로젝트들이 진행이 되지요.

인도주의의 날은 시작은 비극적이었습니다. 2003년 이라크 바그다드 UN 본부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로 인도주의 활동가 22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의 부상자들이 발생하였는데요, 이 일을 계기로 전쟁, 분쟁, 재해, 재난 등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빠진 사람들을 구호하는 활동을 하는 활동가들의 헌신을 기억하며 일반인에게 인도주의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 지정된 날이 바로 “세계 인도주의의 날”입니다. 

그래서 세계 인도주의의 날은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 세계의 분쟁 혹은 재난 지역 등 최전방에서 열심을 다해 일하고 있는 활동가들, 그리고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고통받고 있는 난민, 아동, 여성 등 소외된 이웃들이 바로 그러하지요.  오늘은 특별히 인도주의의 날의 시작을 기억하며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긴급구호 시 필요한 물자를 나르고 있는 활동가들의 모습

2015년 4월 25일, 네팔에서는 7.8규모의 지진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는데요, 저는 재난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현장을 지원하기 위한 긴급구호 태스크포스(TF) 팀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재난이 발생하자마자 그 소식을 전달받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전달된 정보만으로도 잔뜩 긴장이 되었지요. 네팔을 방문한 적이 있었던 저는 7.8규모의 지진이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힐지 상상조차도 무서웠습니다. 긴급구호 태스크포스 팀은 긴급 상황 발생 시 바로 피해 지역에 파견될 수 있도록 평소에 교육과정을 이수하는데요, 주로 응급 처치, 긴급구호의 기본 원칙, 물자 배분 등 현장에서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 지에 대한 소양을 익히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심각한 수준의 재난을 알리는 “레드 알람”을 받으면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도록 상시 파견 대기 상태가 되는데요, 저 역시 토요일 네팔 지진 소식 이후 대기 상태로 전환되었습니다. 

지진 발생 2주 후, 저는 2차 의료지원을 위해 삼성의료원 의료팀의 코디네이터로 네팔을 향했습니다. 일정을 확정하고 가는 파견이 아니었기 때문에 집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떠나는 기분이 남달랐습니다. 지진 발생 2주가 지났지만 현장은 처참하였습니다. 멀쩡한 건물은 찾기가 어려웠으며 여전히 크고 작은 여진으로 주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곧바로 진앙지인 고르카 지역을 향했습니다. 산악지역이라 여진으로 인한 낙석 때문에 어디서도 안전을 담보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베이스캠프를 향해 가는 길에 7.4 규모의 2차 지진이 발생하였습니다. 벌써 몇 년이 지난 일이지만 저는 아직도 그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고함소리와 비명소리, 아이들이 우는소리, 천둥소리와 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지는 사람들… 한국에서 태어나 그 정도의 지진을 처음 겪어보는 저로서는 떠날 때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못 전하고 온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땅이 갈라지고 등 뒤에 그나마 버티고 서있던 반쯤 흔적이 남은 건물들은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기껏해야 1분 미만의 시간이었을 텐데, 단연코 제 인생에서 가장 긴 순간이었습니다. 

지진 당시 현지의 모습

지진이 났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반이 튼튼한 공터에 있으되 큰 건물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합니다. 전깃줄이나 건물 근처로 대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다행히 우리 팀은 모든 안전 수칙을 준수하고 있었던 터라 아무런 인명 피해 없이 무사히 그 시간을 지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실시간 뉴스가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 송출되고 가족들은 혹시 모를 소식을 듣기 위해 마음을 졸였다고 합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생과 사의 기로에 있었던 저는 비로소 재난 현장의 처절함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2차 지진으로 모두가 놀란 상황이었지만 일정을 지체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의 도움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난 발생 시 많은 지원 단체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우후죽순으로 각 단체가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네팔 정부(고르카 지역 재난대응위원회)와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 OCHA), 그리고 여러 단체들이 함께 각 영역에서 인도하고 조정할 대표 단체를 선정하여, 그 선정된 단체를 필두로 현장에서 활동을 수행하게 됩니다. 제가 속해 있는 굿네이버스는 당시 네팔에서 여성, 아동,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보호 사업 영역’(Protection Cluster)을 책임지고 조정하는 단체로 선정되어 각 단체들의 활동 정보를 공유하고 조정하는 코-리딩(Co-leading)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이런 재난의 현장에서는 어느 단체 소속인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는 아무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는 ‘인도주의 활동가’일뿐이었습니다.

지진 후 무너진 교실에 앉아 있는 아동의 모습

베이스캠프를 꾸리고, 이튿날부터 이동진료소를 진행하였습니다. ‘국경 없는 의사회’와 미팅을 통해 ‘국경 없는 의사회’가 못 들어가는 산악 마을로 접근해 경증 환자들을 치료하고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은 헬리콥터로 베이스캠프에 이송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동진료소는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정신없는 하루를 마치고 바라본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눈이 부실만큼 여전히 아름다웠습니다. 고된 하루를 끝내고  베이스 캠프로 돌아와 다양한 국적의 활동가들과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인사를 나누며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는 하였습니다. 여진으로 텐트조차 사용하기 어려운 날에는 타프 아래 침낭을 깔고 쪽잠을 자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언제라도 비상 상황 시 대피를 해야 했기 때문에 신발까지 신은 상태로 잠에 들고는 하였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바람에 타프가 쓰러지지 않도록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서며 동료들의 밤을 지켰습니다. 

진료를 받고 있는 현지 아동의 모습

어떤 사람들은 묻고는 합니다. 왜 굳이 이렇게 고생스럽고 위험한 일을 하냐고...  저 역시 당시 현장에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해보았습니다. 여기 있는 활동가들은 왜 본인들의 안전조차 담보 받지 못하는 이곳에 와서 이렇게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제 스스로에게도 수없이 물었던 질문입니다. 무엇이 나를 이곳에 오게 만들었을까? 어쩌면 생각보다 그 답은 단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도주의”가 정의하듯이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동의하고, 그 존엄성을 위협받는 일이 발생하면 그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이건, 나이가 몇 살이건, 종교가 어떻건, 그 어떤 조건과 상관없이 그 사람이 최대한 빨리 그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활동가의 역할이라고 믿기 때문이겠지요. 

아무리 여진이 무서워도 처음 보는 외국인이 신기한 아이들, 그 아이들이 우정의 표현으로 불러주던 노래, 수줍게 잡던 손, 말이 통하지 않아도 같이 앉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았던 네팔의 노을… 저에게는 이 모든 것이 인도주의 활동을 하게 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인도주의 활동’은 상상할 수 있는 것만큼 멋있는 활동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재해, 분쟁 지역에 가서 활동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치열하고 실제적인 위험이 따르는 활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도주의 활동가들은 그들의 활동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줄 수 있는 지원이 비록 우리 모든 이웃의 위협을 모두 제거해 주지는 못할지라도 그것을 통해서 작은 희망의 조각을 찾기를 기대합니다.

인도주의 활동가들이 지키고 싶은 아이들의 미소

지금도 여전히 시리아 난민, 로힝야 난민을 비롯하여 많은 이웃들이 분쟁과 재해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가깝게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누구도 안전을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일수록 우리는 서로가 필요할 것으로 믿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인도주의 활동에 관심을 가져 주시기를 촉구합니다. 그리고 활동가가 아닌, 세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인도주의 활동가분께 진심 어린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후원문의: 굿네이버스 호주 (H. http://goodneighbors.org.au / P. 0416 030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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