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30일 판문점 앞. 문재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의 역사적 만남.

늘 그랬지만, 특히 현 문재인 정부 아래 한국은 통일전문가들의 전성시대가 아닌가 싶다.  텔레비전과  유튜브를 열어보라.  북한학과 교수,  무슨 무슨 연구소 수석 연구원, 한반도평화연구센터장, 군사문제연구소장 같은 직함을 가진  사람이 나와 진행하는 열띤 통일 논쟁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 날이 드물다.
 
오지라고 할 수 있는 여기 시드니에서 나도 이 백가쟁명(百家爭鳴)에 글로 한마디 끼어보려고 하는데 먼저 왜 한국에 통일문제 전문가가 그렇게 많고 나마저인가에 대하여 여담이 될지 모르나 써보고자 한다. 
 
첫째 이유는 물론 통일의 중대성이다. 왜 중대한가를 설명한다면 잔소리가 된다. 그만큼 중차대하다. 둘째 이유는 보통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좀 어렵다. 통일을 다루는 학문적 바탕은 국제정치학인데 이 학문은 인문학은 되어도 사회과학은 못 된다. 사회과학이라고 불리려면 적어도 인과관계(이유와 결과 또는 장래)를 실증적으로 밝힐 수 있어야 하는데 국제정치학은 그럴 수 없다. 
 
한 예로 남북관계 연구가 실증적이 되기 위하여는 김정은과 다른 북한 내 권력 실세들을 찾아가 면접을 하거나 그들 머리 속을 들여다볼 과학적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그건 어림도 없다. 또 국제관계는 국내관계보다 몇 배 더 유동적이다.  모두 장래 일어날 불확실한 주변국 변수들에 크게 의존한다. 그러기에 이 분야는 학문적 연구보다도 제한된 지식과 통찰력을 가지고 점을 치는 걸 더 많아 한다. 
 
국제정치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통일부, 국정원, 통일연구원. 심지어 군 등에서 일하면서 그 잦았던 남북협상 테이블에 적어도 한번쯤 앉아 봤던 실무자라면 모두 전문가 행세를 해보고 싶어 하는 이유다.  
 
도덕주의가 아니라 국가이익

나는 50년대에 대학 정치학과를 나왔다. 그때는 외교학이나 국제정치학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빼고는 그냥 정치학과였다. 지금은 많은 대학에 정외과와 국제정치학과가 따로 있다. 해봐서 아는데 이 학문 연구방법은 과거 국가 간에 일어난 역사적 사례에 기대어 하는 예측이 주로다. 가령 국가 간 관계는 도덕주의(Moralism)가 아니라 힘의 관계였으며 힘은 물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되어 있으니 국방은 세력균형(The balance of power)으로만 가능하다든가, 국제관계에서는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이 먼저라든가, 1938년 히틀러-체임벌린 간의 뮌헨협약을 들어 팽창주의 국가에 대한 유화정책을 경고하는 게 그런 예다.  
 
대표적 학자는 시카고대학의 한스 모겐소((Hans Morgenthau,1904-1980)  교수다. 그의 역작인 Politics Among Nations을 나는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거의 50만의 조회수를 자랑하는 이춘근 박사의 미국의 극동정책, 지금의 한반도정세, 미중 간 갈등을 분석하는 유튜브 강의를 들어보면 그도 모겐소계의 국제정치학자 밑에서 미국 박사를 한 것 같다. 
 
3대로 내려온 세습정치

그럼 나의 통일 시나리오와 결론은 무엇인가? 1953년 정전 이래 수십 번의 아슬아슬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재발하지 않은 것은 유화나 강경 어느 정책도 아닌, 한미동맹을 주축으로 한 남한의 막강한 군사력에 따른 세력균형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슨 짓을 해도 통일은 커녕 남북화해와 공존이 어려운 것은 21세기 대명천지에 불가사의한 북한의 정치체제에 있다. 알다시피 북한은 3대째 세습으로 통치를 해왔다. 4대째도 그래야 할 것이다. 안 그러면 거기 통치자는 2차대전 후 이태리의 무솔리니와 동구권 몰락 때 루마니아 차우세스크 신세가 될 게 뻔하니 지금과 같은 무자비한 숙청과 인권 탄압, 그리고 전대미문의 고립정책을 고수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남한이 그런 정권과 진정한 협상을 한다는 건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와 바이든,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한반도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한반도 전문가로 알려진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 교수는 몇 년 전 시드니에 와 가진 세미나에서 북한 정권이 붕괴하면 통일이 올 수 있다고 말했으나 내 생각은 다르다. 정권이 붕괴한다면 국제정치학 용어로 힘의 공백(Power vacuum)이 오는 건데 누가 그 공백을 메울 것인가가 불확실하다. 대한민국은 아직 시기상조다. 미국도 그런 상황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게 통일은 내가 상대에 대한 절대적 체제우위에 의한 자연스러운 수순으로만 가능하고 장기적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보는 이유다. 독일의 통일이 그렇게 이뤄진 게 아닌가. 한국은 정치체제, 경제, 아마도 군사력에 있어서는 북한보다 우위겠으나 그것만으로 절대적 체제우위일 수 없다. 거기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게 국민통합 또는 결속이다. 아마도 국민 수준 탓일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나라가 늘 4분5열이다. 크게 벌어진 빈부격차 때문일까, 불만 세력도 너무 많다,  
 
한국 사회가 체제상 절대 우위인가 알아보는 시금석은 여러 가지다. 한 가지는 남북 간 자유왕래가 허용되면 북한 인구의 반이 남으로 내려오고, 행복하게 잘 섞여 살 수 있을까이다. 그렇게 된다면 핵은 무용지물이다. 그 질문은 탈북자나 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거나 살다간 재중 동포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처음 배고픔이 해결되고, 돈 몇 푼 생기고, 공포정치에서 벗어나 좋아도 오래 가지 않을 수 있다. 
 
포용주의 통일론을 내세워 정권의 요직에 앉은 인사들 말이다. 그 소신은 과연 정직한가 아니면 정권에 빌붙기 위한 편의인가 묻고 싶다.  내 생각으로는 그들이 통일을 진정 위한다면 공허한 통일 논의보다 일상생활의 실천을 통하여 국민 간 결속에 먼저 신경을 써주는 게 옳다. 

김삼오(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skim193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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