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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단상] 설은 설레임이었다
기후 스님(시드니 정법사 회주) | 승인 2021.01.21 13:00

새 달력 한 장이 일주일을 남겨두고 있다. 희망찬 새해를 맞이 하라는 인사를 숨이 넘어갈 듯이 전해오는 카톡을 들은 지가 얼마되지 않았는데…  

세월이 유수(流水)처럼 흐른다는 옛 사람들의 표현이 실감나는 요즈음이다. 희망은 언제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은 설날에 찾아온다. 가물거리는 호롱불에 바늘을 가까이에 갖다 대고 바늘 귀에 실을 꿰면 그 때부터 동심은 밤잠을 설친다. 

집집마다 새 옷을 마련하는 다듬이 방망이 소리가 골목으로 새어 나오면 그 땐 어린이들은 메뚜기처럼 폴짝폴짝 뛰면서 설날을 기다렸다. 새 이불을 마련하는 그 중간에 뒹굴면서 정말로 손가락을 꼽으면서 설날을 기다린다. 그 동심엔 기쁨과 희망이 함께 녹아 있다. 우선은 설이 되면 새 옷이나 새 신발을 가질 수 있다. 그 다음은 쌀이 좀 더 많이 섞인 밥과 두부나 생선 등 좋은 반찬이나 떡 등을 먹을 수가 있고 또 세뱃돈으로 또래들과 화투 놀이를 해서 눈깔 사탕을 맛볼 수가 있는데다 6일 동안은 나무해오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없으니 그보다 더 좋은 신나는 일이 있을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생존의 기본 조건인 의식주 3 건이 좀 더 좋아지고 쉬게 되는 때가 바로 설날이기에 그렇게 기다렸지 싶다. 반면에 어른들은 새해가 오기 전에 그 해에 진 빚은 반드시 갚아야 된다는 책임감 같은 것이 있었다. 당시엔 빚이라야 쌀 몇 말이거나 얼마 안 되는 금전이었다. 

우리 친구 아버지는 남의 집 일을 도맡아 하였는데 내년 일 삯을 먼저 받아서 빚을 갚고 새해를 맞이할 정도였다. 꼬마들은 무작정 희망을 얻기 위한 날이 설이었고 어른들은 진 빚은 갚고 새롭게 출발하려는 자기 다짐의 날이 바로 설날이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그럴듯한 인사와 멋지게 그려진 예쁜 그림만 카톡으로 전해올 뿐 새해를 맞이한 우리들의 마음은 모래알처럼 건조하다. 
각계 각층에서 희망이 없는 사회가 되었다고 아우성이다. 그 원인과 분석, 해결책은 무수하게 쏟아진다. 그럴수록 답답하고 불안함은 더 가중되고 있으니 그야말로 모순이다. 
문제는 이론과 관념은 넉넉한 반면 그를 받쳐주는 실천력이 빈곤하기 때문이며 그 밑바탕엔 탐욕이 극성을 부리기에 그렇다. 그 탐욕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진리를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야기된다. 진리적 삶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지는가? 선종(禪宗)의 대가 6조 혜능선사(慧能禪師)는 이렇게 말했다. 진리를 완력으로 빼앗으려고 그를 쫓아온 군인 출신의 승려 도명(道明)존자에게 ‘불사선 불사악(不思善 不思惡)’하라고 일렀다. 선도 악도 마음에 두지 말라고 했다. 

일반적으론 선은 숭상하여 기르고 악은 멀리해서 자라나지 않도록 하라고 하는 것이 사회의 규범이다 하지만 온전한 진리의 본체인 참 마음을 깨달아서 무상(無常)속에서 영원의 삶을 노래함에는 선악의 상대성은 미흡하다는 뜻이리라. 선악의 양단에 매몰되지 않고 그들을 함께 용해시켜서 현실적 삶에 적용시킬 수 있는 지혜로운 몸짓과 마음가짐, 그것이야 말로 우리 사회가 역동적 희망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 가장 이상적인 세계라고 혜능은 강하게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 역시 하나의 희망이 남아 있다면 그런 진리적인 삶의 모습을 구현하고 싶은 것이다. 머리맡에 없던 건강 기능 식품의 숫자가 늘어나고 운동량은 점점 줄어진 이때에 옳고 그름의 두 극단을 하나로 용해시켜서 그 에너지를 현재적 상황으로 승화시켜 보고 싶은 것이다. 

현재는 과거의 적집(積集)이며 미래는 현재의 연장이다. 한호일보를 구독하는 우리 모두는 올해엔 좀 더 희망이 이뤄지는 새해가 되었으면 참으로 좋겠다. 지나친 물질적 추구는 언제나 그것에 대한 목마름을 촉발시킬 수가 있다. 그것을 바라보며 생활에 응용해가는 우리들의 마음이 없음에도 주눅들지 않고 있다고 으스대지 않을 수 있는 지혜로운 진리적인 삶의 처신이 희망을 기르는 원천이 될 것이다.

기후 스님(시드니 정법사 회주)  info@hanho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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