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 주변 도로에는 정지(Stop) 와 서행(Slow)이라고 쓰인 표지판을 들고 차량 운행을 통제하는 교통 정리원(Lollipop Worker)이 있다. 아파트 건축 현장앞 도로를 지나려는데  두 청년이 그 표지판을 들고 한 라인만을 통해  양쪽의  차량들이 안전하게 오갈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반대편 차량들이 천천이 통과 할 동안에 나는 정지 표지앞에 멈춰 기다려야만 했다. 그 표지판을 든 젊은이를 보며 문득  한 교우와 그 아들 사이에 오갔다던 대화가 생각나 혼자 미소를 지었다.
그 분은 당시 10학년 이었던 아들 때문에 걱정이라고 푸념한 적이 있었다. 그 아들은 덩치만 크지 철부지고,  공부는 관심없고 놀기만 좋아한다고 했다. 하루는 그 아들에게 나중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묻자 모르겠다고 했다. 생각해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라고 했더니,  잠시 인터넷 탐색을 하더니 공사장의 교통  정리원도 괜찮겠다고 말했다. 왜 그런 일이냐고 물으니, 일이 쉽고 임금도 높아서라고 답했다. 비싼 학비 내고 사립학교에 보내고 있는데 녀석의 생뚱맞은 대답에 기가 막혀 그 분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그 분에게 대충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아들이 부족함 없는 가정 환경에서 자라 세상을 너무 모를수 있지만, 앞으로 조금씩 배워갈 것이다. 그 나이에 어떤 일을 하기 원하는지,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 솔직한 대답일 수도 있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준비하는 또래의 학생도 있지만, 자주 바뀌거나 이룰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지금 예민한 사춘기에 느긋하고  밝은 성격으로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으로 감사하자,  염려를 멈추고 천천히 기다려 보자고 권면했다. 
그 분의 아들이 금년에 대학생이 되었다. 의학과 법학 두 분야를 함께 공부하고 있다. 법학은 흥미가 없었지만, 첫 과제를 하면서 재미있었고 성적도 높게 나왔다고 한다. 요즘은 금, 토요일 저녁에 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그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한번 그 식당에 함께 가서 아들 일하는 것도 보고  식사를 하자고 초청했다.

‘정지와 서행’ 은 안전한 차량 운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삶을 위한 지혜다. 다만 우리 스스로가 분별하고 선택해야 한다. 가령 분노에 휩싸였을 때, 일단 행동을 멈추고, 의식적으로 말을 천천히 하는 것이 유익이다. 그 감정대로 행동하고, 말을 쏟아낸 후에는 큰 댓가를 치러야 한다. 내 자신의 경험이다. 또한 멈춤으로 볼 수 있는 소중한 것들, 천천히  갈 때에 경험할 수 있는 행복이 있지 않는가. 
어떤 일 중독자는 수면 시간이 아깝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잠자는 시간에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재충전된다. 그런 멈춤은 일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부모와 자녀,  아니 부부 사이의  관계에도  ‘멈춤과 천천히 기다림’의 요령이 필요하다.
이 세대는 멈춤이 없는 질주, 그것도 점점 더 빠르게 행동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것이 목표요, 가치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너무 바쁜 사람들 중에 마음이 공허하고 아픈 사람들이 많다. 그런 분들은 잠시 멈춰도 괜찮다. 아니 멈춰야한다고 말하고 싶다. 
멈춤과 천천히 가기를 몰라, 세계가 이처럼 큰 갈등과 문제가운데 있다.미국 아틀랜타의 총격 사건의 범인은 수사관에게 성중독의 충동, 반아시아 및 여성 혐오증을 멈출 수 없어서라고 했다. 미얀마 군인들이 시민들을 향해  총격을 가하는 비극의  근원에는 소수의  군 지도자들이 권력에의 탐욕을 멈추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인 줄 안다.
‘정지와 서행’ 의 표지판을 들고 개인과 각 나라의 삶을 통제해 주는 그런 교통정리원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동화같은 상상을 해 본다. 
호기심에서  교통 정리원의 임금을 검색해 보았다. 소규모 공사장의 일용직은 현재 시간당$30 수준이다. 그러나 퀸즐랜드주의 새로운 정책제안은 연간 18만 달러이다. 간호사나 교사들 임금의 3배 정도의  높은 수준이다. 그만큼 이 직종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다만 일반 전문직들과의 임금격차가 커서 최종 결정이 어찌될지 궁굼하다. 
어쨋든10학년생의 눈높이에서 하고 싶은 일로 선택했던 그분 아들의 말에 공감이 간다. 그래서 한번 더 나를 미소짖게 했다.

성큼 가을이 다가왔다. 낮에는 햇살이 눈부시고 쾌적하지만  아침의 체감온도는 제법 쌀쌀하다. 이른  아침에 습관대로 반바지 반팔 소매로 책상 앞에 앉아 있었더니, 콧물이 나오고 목이 조금 아팠다. 그런 상태로 세 시간 줌 강의를 마치고 나니, 목감기에 걸린 것처럼  머리가 아프고 음식 먹기가 불편하고 말하기도 힘들었다. 아내는 내가 옷도 제대로 갈아 입지 못하는 둔감한 사람이라고 핀잔을 준다. 그건 사실이지만,  진짜 이유는 지난 며칠간의 내 생활의 리듬과 마음상태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랩톱이 고장 나서  이를 고치기 위해  이틀에 걸쳐 두군데의 수선소를 가야 했다. 마이크로웨이브가 갑자기 작동을 안해 워런티 서비스 예약을 하고 기다리는 과정 등이 너무 느려서 짜증이 났다. 둘다 기계적인 문제가 아니고 단순히  전자 작동 체계의 오류여서 수선은 싱겁게 해결됐다. 둘 다 매일 사용하는 것으로 수선이 급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를 위한 조급함 때문에 허둥대며 신경쓰다 보니 내 마음의 균형이 흐뜨러지고  면역력이 떨어지게 된 것 같다.

채근담에 나오는 정중동(靜中動 )과 동중정(動中靜 )의 대조적인 두 단어가 생각난다. 나의 지난 며칠이, 겉으로는 바쁘게 애쓰며 움직인 것 같았으나 정작 내가 한 일은 없다. 무기력하고 정체된 ‘동중정’의  시간이었다. 집의 꽃들은  겉으로 보면, 다른 움직임이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으나 계속 새로운 꽃송이들을 피우고 있다. 그 꽃들에게서, 보이지 않으나 중요한 일들을 하는 ’정중동’의 모습을 본다. 나도 그런 꽃들처럼  ‘정중동’의 삶을 살고 싶다. 이를 위해서 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멈추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또 무엇을 향해 천천이 가야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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