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야에서 살다

박기현

마트를 나온 나는 당신의 시야에서 걷네
기지바지에 마른 발목이 그림자를 지우고
밤이 소금처럼 돋아 눈이 시리지만
풍경속에 발을 맡기는 법을 알아
하현달에 보폭을 맞추면 바람이 등을 밀어주지
계절이 없는 골드코스트는 신발만 늙어 낡은 걸음을 옮기네

마크다운 1달러 빵을 쥐고 
하루살이의 마지막 한 시간을 지나는 중
혼자 간 적은 있어도 저 홀로 걷던 일은 없는 길
나는 존
나는 리차드
나는 재임스
나는 이 세상 모든 사내의 이름
어쩌면 당신은 바람이 깍아 놓은 나의 어깨 너머
익숙한 생의 얼굴을 보기도 하겠네

그러므로 생은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맞추어 가는 것
당신의 다리가 당신의 바지에 맞추어 질 때
마침내 가슴에 차오르는 노을을 품을 수 있겠네
밤을 걷던 계절이 오긋하게 피어나는 것을 보기도 하겠네

단 하루를 더 얻기 위해 바람의 거리에 닿으면
강력분이 이스트로 부풀던 시간을 두고
엄마의 골반같은 방에 앉아 예수의 떡을 먹겠네
그렇게 당신의 시야에서 나는 잠시 살았을 뿐

우리는 누군가의 시야에서 살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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