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당제가 오래 정착된 호주 정계에서 노동당은 복지 지출에 관대한 편으로 예산 적자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보수 성향인 자유-국민 연립은 지출을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경제 관리(economic management)'에서 우월성을 인정받아 왔다. 연립은 총선 켐페인에서 항상 이점을 강조하며 유권자들의 표심을 끌어모으는 전략을 구사한다. 

11일 발표된 2021/22년 예산안은 이런 종전 개념을 완전히 흔들어 놓았다. 2021/22년 예상되는 예산적자가 GDP의 5%를 점유할 정도가 됐다. 2025년경 예산적자와 정부의 순부채를 더하면 거의 1조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규모 정부 지출로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에 대처해야한다는 점은 모두 인정한다. 이런 막대한 재정지출은 실업률이 8~10% 선으로 크게 악화됐을 때 나오는 비상 대책인데 현재(4월) 실업률은 5.6%선이다. 
모리슨 정부는 실업률을 5% 미만으로 더 낮출 계획이다. 이번 예산안의 주요 지출 항목도 고용 증진과 연관됐다.
 
따라서 이처럼 과도한 재정 지출을 감수하는 이유는 1년 후로 예상되는 연방 총선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으로 지적된다.

중견 이코노미스트 주디스 슬로안(Judith Sloan)은 디 오스트레일리안지 기고에서 “예산안에는 경제는 거의 없고 대부분 정치(Plan mostly politics with little economics)”라고 혹평했다. 
      
실제 GDP성장률과 잠재적 GDP성장률의 오차인 산출 갭(output gap, 아웃풋 갭)이 크면 경제 계획이 실패했다는 의미다. 이 아웃풋 갭은 민간부문의 경제 활성화로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호주 재무부는 공공 지출(public spending) 확대를 통한 오차 줄이기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개념은 종전의 보수 정당이 배격해 왔던 논리였다. 
  
이번 예산안의 특징을 전형적인 선거용 대비책이라고 지적하는 이유에는 중저소득층 감세, 예정된 세율 인상 연기. 사업체 업무용 설비 즉시 비용공제(instant asset write-offs) 연장, 첫 내집매입자 혜택 확대, 작년 발표된 전국 주요 인프라스트럭쳐 다시 발표 등 유권자를 겨냥한 정책이 많기 때문이다. 프라이든버그 재무장관은 “모두 성공적인 정책이며 정부는 이를 지속하기를 원한다”고 분명히했다. 

여기에 한가지 더 - 실업률을 5% 미만으로 대폭 개선해 내년 총선 켐페인 때 야당(노동당)을 공격하는 주무기로 활용하겠다는 복안까지 담겨있다. 그런 연유에서 경제학자들은 ‘문제 개선 예산(fix-it budget)’으로 부른다.

프라이든버그 재무장관은 11일 저녁 의회에서 예산안을 발표하며 “호주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Australia is coming back)”고 외쳤다. 이에는 막대한 지출 공세로 지난 몇 달동안 곤경에 빠진 스콧 모리슨 정부가 주도권을 잡을 것이란 기대감도 담겨있다.

대규모 예산 지출에  필요한 재원은 어디에서 나올까? 부분적으로 새 영주권자들의 복지 혜택을 4년 연기해 5년동안 7억 달러를 절감할 예정이다.(1년 톱 기사 참조) 
이런 경비 절감보다 중요한 점은 세수 증대 요인이 커졌다는 점이다. 최근 광산 붐, 특히 철광석의 수출 가격 급등은 놀랄만한 수준이다. 

작년 프라이든버그 장관은 철광석 수출 가격을 톤당 미화 $55로 예상했다. 라이벌 수출국인 브라질의 공급 문제로 국제 공급이 차질을 빚으며 철광석은 지난 몇 주 사이 미화 $230까지 치솟았다. 톤당 미화 $10이 오르면 호주 정부의 세수가 약 20억 달러 증가한다. $US55에서 $US185로 상승하면서 300억 달러의 세수 증액이 예상됐다. 불과 5개월 전보다 예산 적자를 약 500억 달러가량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바로 이 막대한 추가 세수는 호주 재무장관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횡재였다. 이 추가 세수의 상당 부분이 중국의 수입에서 나온다. 

광물 자원이 코로나 사태를 벗어나는 호주를 다시 ‘운 좋은 나라(The Lucky Country)’로 만드는 조짐이 보인다. 1년 동안 관리를 잘하고 국제적으로 큰 변수나 위기가 없다면 2022년 총선에서 모리슨 정부가 우세할 수 있다. 최근 보건 위기 기간 중 거행된 주/준주 선거에서 모두 집권당이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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