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세운 아빠가 차 문을 밀었으나 운전석 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쾅쾅 두드려도 소용이 없었다. 아빠는 엄마가 앉은 조수석 위를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빠가 엄마에게 안기다시피 내렸다.
 “내가 먼저 내릴게요.”
 엄마가 서둘렀다.
 “안 돼. 위험할지도...”
 아빠가 제지를 했다.
 ‘흐, 과장님도 이럴 땐 제법 기사도 정신이 투철하시군.’
 너는 종알거렸다.
 “안 돼. 저 놈이 어떤 놈일지. 일단 기다렸다 나중에 내리든가.”
 아빠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열이 났는지 온몸의 피가 솟구친 것 같았다.
 아빠가 내린 후 잠잠하던 트럭 문도 열렸다. 흙으로 범벅된 바지가 보이더니 이윽고 수숫대 같이 헝클어진 머리가 밖으로 나왔다. 고개를 푹 숙인 허름한 옷차림의 아저씨였다.
 아빠는 너희가 탄 차를 가리키며 계속 손가락질을 해댔다. 아저씨는 허리를 굽힌 채 계속 굽실댔다. 아빠가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 듯하자 개들이 으르렁거리며 짖어대기 시작했다. 밖을 바라보며 너희는 숨을 죽였다. 아저씨가 꼼짝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형아, 저 저기 트럭에!”
 동생이 뭔가를 눈치 챈 듯 트럭을 가리켰다. 너희는 아예 돌아앉아 뒤 창문에 달라붙었다. 트럭 앞자리에서 너희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꼭 좀비 같았다. 갑자기 네 가슴 한쪽에 셋바람이 파고든 듯 으시시해졌다.
 트럭 운전석 옆에 앉은 푸석한 아줌마가 멍하니 너희를 바라보고 있었던 거다. 어쩌면 꼭 유령 같기도 했다. 너희와 눈이 마주치자 아줌마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푹 엎드렸다. 그 어깨가 가끔씩 들썩였다. 바로 그때 뒷좌석에서 얼굴 두 개가 쏙 나왔다. 깜짝 놀란 동생과 너는 동시에 손을 잡았다. 여자애 둘이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너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가슴이 턱 막히도록 맑은 눈빛이었다.
 “형아, 쟤들은 왜 개 도둑 차에 타고 있을까?”
 “아빠가 개 도둑이니까.”
 “아빠가 도둑이면 딸도 도둑인 거야?” 
“시끄럽네. 너희 아빤 과장님이시라 너는 과장님 아드님이세요.”
 “쟤네는 아빠 자식 안해도 되지 않을까?”
 “쳇, 지가 영재라고 또 영재 티네요!”
 너희는 온몸을 다 일으키다시피 돌아서서 그 여자애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눈치 챈 여자애들도 뒷좌석에서 고개를 들었다. 너희는 서로를 한참 바라보았다.
 “형, 쟤네들은 얼굴이 깨끗해.”
 “개 도둑도 지 자식은 잘 씻기나보지 뭐.”
 너는 햇빛 가리개를 쾅 내렸다.
 “그만 봐. 그런 애들 자꾸 보면 과장님 아들 눈 버린다!”
 동생은 자꾸 트럭 애들을 보고 싶어 했다. 너는 동생 머리를 눌러 좌석에 뭉개 앉혔다.
 “야, 영재 동생. 자존심 좀 지키셔.”
 갑자기 트럭 뒤에서 개들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들끼리 싸움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철창이 흔들릴 때마다 한쪽으로 기운 트럭 번호판이 부서져 내릴 것만 같았다. 트럭을 사각으로 둘러싼 엉긴 철망이 옆으로 쏟아질 듯했다. 개들이 조금만 더 힘을 쓰면 철창이 뜯어지고 들개 떼가 몰려나올 것만 같았다. 개들은 누렁이부터 말티스, 점박이, 멍멍이, 시추 등 이름도 없는, 아니 족보도 없을 듯 꾀죄죄한 개들로 가득했다. 모두 비비고 으르렁거리다 서로 잡아먹기라도 할 듯 울부짖다 몰려 짖어대곤 했다.
 “형, 저 개들을 도둑질한 거야?”
 동생이 물었다.
 “몰라. 그럴 수도. 아닐 수도.”
 “형아, 저 잡힌 개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걸 몰라서 묻냐? 영재치고는!”
 그러나 너도 더 이상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유기견으로 헤매다 굶어죽느니 저게 더 나을지도 몰라. 누군가의 일용할 양식으로. 짧고 굵게 말이다.’

 바로 그때였다. 
 아빠가 개장수 아저씨의 멱살을 잡는 게 보였다. 동생이 울상을 하며 너에게 물었다.
 “형아, 아빠가 저 아저씨를 용서해주면 안될까?”
 “너 미쳤냐? 우리 차를 이렇게 치고 도망간 도둑놈을 과장님이 가만 두겠어?”
 네 고함소리에 동생은 입을 다물었다. 
 아빠가 다시 아저씨 멱살을 잡고 너희 차 쪽으로 끌고 오는 게 보였다. 마음 한구석엔 창문을 내리고 뛰쳐나가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용기도 없는 위인이다, 너는. 너희는 바깥만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아빠가 뭔가를 보여주려는 모양이었다. 아빠는 너희 차 운전석 옆 자리를 열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차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다시 엄마가 탔던 조수석 차문을 두드려댔다. 그쪽도 우그러든 게 틀림없었다. 아까 상당히 심한 충격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거 보라는 듯 아빠가 차를 가리키며 팔짱을 꼈다. 난감한 얼굴로 아저씨가 고개를 들었다. 순간 너는 옆구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갈빗대가 찡해졌다. 그는 금방 땅굴이라도 파다 나온 사람 같았다. 얼굴은 구정물이 꼬지지하고 더러웠다. 벌겋게 달아오른 데다 온통 주름이 자글거렸다. 언젠가 동네 쓰레기통을 어슬렁거리던 유기견 꼬락서니와 너무 똑같았다. 
 아빠가 아저씨 멱살을 놓자 아저씨는 목 뒷덜미를 자구 문질러댔다. 이번에는 아빠가 개들을 가리키며 뭐라고 했다. 아저씨는 자꾸만 두 손을 비비며 아빠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는 아저씨 손은 튼 데다가 손톱은 시커먼 땟국 천지였다, 
 “형아, 저 아저씨 불쌍해.”
 “시끄럽다!”
 동생은 네 눈치를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우리 집 가보 1호가 날아갈 뻔했다고!”
 갑자기 우리 차는 족보 있는 차라고 항상 노래를 부르던 아빠 말이 생각났다. 미국 유학시절, 아빠가 이 차를 사고 나서 박사가 되었다고, 그리고 영재 동생을 낳았다고, 엄마 아빠가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너희집 재산 1호였다. 오래되기는 했어도 개성 만점의 차였다.
 미국에서까지 한국 수입차를 사서 쓰다 다시 한국으로 가져왔다. 과장님만한 애국자가 없다고 사람들이 칭찬을 했다. 미국에서 차 운송료를 내고도 이익이 남으니까 가져왔을 거라며 너는 콧방귀를 뀌었다. 앉으면 자동으로 착 걸리는 안전벨트까지 있어 희한하다며 너도 나도 한 번씩 다 들여다보곤 하던 자랑스러운 너희 집안의 가보였다. 
 애국자 아빠는 유학시절 헌 차만 타다 이 차를 장만했다며 마르고 닳도록 이 차를 쓰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개 도둑이 감히 그런 차를 망쳐놓다니 말이 되느냐 말이다.
 밖을 보니 여전히 아빠와 실랑이를 하는 아저씨가 보였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다 비틀거리기를 반복했다. 정말 취한 건지 어쩌면 원래 흔들거리는 병이 있는 건지 아리송했다. 너는 슬그머니 옆 창문을 내렸다. 염탐꾼이라도 된 것처럼.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당신 술 취한 게 분명해.”
 “아, 아뇨. 술 먹지 않았는데요.”
 “안 먹긴 뭐가 안 먹어. 내가 가만 안 놓아둘 거야.”
 “죄, 죄송합니다.”
 “그리고 저 개는 뭐야?”
 “....”
 “당신 거짓말하면 벌 받아. 절도에 뺑소니에!”
 “죄, 죄송합니다. 그런 게 아니라.”
 “아예 내 앞에서 거짓말 할 생각도 하지 마.”
 아빠는 팔짱을 낀 채 매달리는 아저씨를 뿌리쳤다.
 “어쨌든 경찰에 신고했으니까 곧 경찰이 올 거요. 그때 해결합시다.”
 아저씨는 두 손을 비비며 또 아빠에게 매달렸다. 아빠가 세차게 머리를 흔드는 게 보였다. 얼마 후 아저씨가 트럭에 대고 뭔가 손짓을 하는 게 보였다. 아줌마가 뭔가를 두 손에 안은 채 허겁지겁 차에서 내렸다. 울먹이면서 아저씨를 향해 다가가 뭔가를 건네주었다. 
 “뭐하는 거야?”
 너는 뭔가 냄새를 맡은 형사처럼 눈을 번득였다. 그때 안에서 두 여자애가 엄마! 라고 울부짖으며 달려 나왔다. 차에서 내려오다 작은 애가 차 턱에 걸려 꼬꾸라졌다. 아이의 엄마가 허겁지겁 아이에게 달려갔다.
 “형아, 저 애 우리 반 소망이랑 너무 비슷하다!”
 동생이 햇빛 가리개를 올리며 소리쳤다.
 “멍청하기는. 저런 애가 어떻게 우리 동네에 산다고?”
 엄마가 알면 기절초풍할 일이다. 엄마는 너희 동네가 대한민국 제2의 멋진 도시 부산에서 제일 수준 높은 학군인 걸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 큰일 날 소리 하지를 마라. 동생이 좋아하는 애가 같은 반 소망이인 걸 너도 알고 있었다. 쳇, 어린 것이 여자애 꽁무니나 쫓아다닌단 말이야.

“이마리 선생님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차별 없는 
사회에서 행복하기를 염원하는 작가입니다.”

이마리 선생님은 생각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소설가입니다. 지금은 호주에서 청소년 역사 소설 시리즈를 집필하고 있으며, 한글학교 선생님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조선후기 청소년의 삶을 ‘대장간 소녀’에 담았다면, 동학운동과 관련된 소설에서는 ‘동학 소년’을 그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소년 독립군, 촛불 소녀 등의 연작 시리즈로 독자들과 만날 것입니다. 

 

- 추천도서 선정(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
2015년 『버니입 호주 원정대』
2016년 『구다이 코돌이』
2017년 『코나의 여름』
* 청소년소설 <대장간 소녀와 수상한 추격자들>
이스트우드 북랜드에 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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