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만에 너는 창틀 가리개를 끼운 채 다시 밖을 보았다. 아저씨는 계속 절을 하고 아빠는 팔짱을 낀 채 꿈쩍도 않고 서 있었다. 그때 경찰차 경적소리가 좁은 시골길에 울려 퍼졌다. 드문드문 지나가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너희를 바라보며 멈추어 섰다. 이윽고 경찰차가 멈추고 경찰 아저씨가 내렸다.
“신고하신 분이 여기 아주머니신가요?”
엄마를 향해 달싹거리는 경찰의 입모양으로 묻는 게 짐작이 갔다. 다시 무슨 말인가를 하는데 그 후는 알아챌 수 없었다. 경찰이 드디어 너희 차로 다가와 밖에서 운전석 문을 열어보려 애썼다. 그러나 차는 끔쩍도 하지 않았다. 조수석의 우그러진 부분도 만져보며 펜을 꺼내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얼마 후 아빠가 경찰아저씨에게 잘 해결되었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경찰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차에 탔다. 
‘쳇, 저렇게 그냥 가려면 왜 여기까지 왔어? 한국 경찰의 현주소!’
‘또 엄마는 왜 신고는 한 거야? 싱겁기는.’
너는 아까운 현장을 놓친 것처럼 허망했다.
경찰 아저씨가 차를 몰고 떠나려다 다시 차 창문을 내리더니 소리쳤다.
“쌍방에 합의를 잘 보면 그게 더 나아요. 그런데 거기 개 트럭 아저씨, 다시 한 번 나한테 걸리면 그때는 국물도 없을 줄 아쇼!”
아저씨가 경찰차를 향해 숙인 고개를 더 푹 떨어뜨렸다. 아빠가 드디어 엄마를 앞세우고 차로 들어왔다. 계속 트럭 아저씨와 아줌마는 너희 차에 대고 인사를 했다. 옆에 여자 애 둘이 엄마 손을 잡아끌어도 트럭 부부는 꼼짝도 안하고 서 있었다. 
네 머릿속에 정말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너는 갑자기 차문을 밀었다. 그러나 이미 아빠는 시동을 걸고 있었다. 엄마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미쳤니? 왜 내리려고?” 
네가 허둥댔다. 
“아빠, 왜 그냥 가세요? 참 인자하기도 하시네요?” 
차 쫓을 때는 완전 레이서 걸 같던 엄마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래도 애들이 불쌍하잖아.” 
동생도 질까봐 네 말에 한 마디 거들었다. 엄마 아빠는 앞만 보고 달렸다. 너는 씩씩거리다 울퉁불퉁 흔들리는 시골길에 리듬을 탔다. 어느새 마음속에서 개 트럭 철창을 한 개씩 무너뜨리고 있었다. 
‘다 도망가라!’ 
개들이 미친 듯 트럭에서 뛰어내려 들판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마침내 열셋을 다 세고 나서 너는 엄청난 자유를 느꼈다. 너도 개를 따라 숲으로 달려갔다. 개와 너. 둘 다  숨이 가빠 헉헉거렸다. 
‘헉헉!’ 
“형아, 왜 그래?” 
동생이 놀라 너를 깨웠다. 너는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챙겼다. 주위를 돌아보니 아직 흔들리는 차안이었다. 벌써 주위는 어둑해지고 밖에는 꼬리를 문 전조등의 행렬만 보였다. 피곤한 밤이었다. 너는 다시 깊은 잠 속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길길이 날뛰던 엄마는 조용해졌다. 그날 밤 집에 도착해 엄마 아빠는 짐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엄마는 그날 밤 더 이상의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빠가 일찍 출근을 하며 현관을 나가고 있었다. 
“당신, 화장대 위에 핸드폰 좀.” 
엄마는 또 자동적으로 너를 불렀다. 
“큰 아들!” 
너는 학교에 일찍 가기 싫어 얼쩡거리던 참이었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홀로서기 안 되는 가장, 내가 이 집 머슴인가?” 
너는 투덜거리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핸드폰을 집는 순간 생뚱맞은 물건이 네 눈에 들어왔다. 싸구려 파마머리처럼 푸수수한 낡은 돈뭉치였다. 뭔가 머리통을 찌르듯 예리한 통증이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노랑 고무줄로 둘둘 묶인 돈다발은 낡고 헤져 옆에 놓인 성경책만큼 두툼했다. 떨리는 손으로 너는 배춧잎 돈을 눌러보았다. 그 돈다발 아래 몇 장의 구겨진 돈이 숨겨지듯 놓여 있었다. 
가슴속에서 기차소리가 났다. 쉭쉭 소리가 점점 크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위에 ‘13. 30만원’이라는 번진 글자가 보였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배춧잎을 재빨리 세어보았다. 
‘28, 29, 30 . . . ’ 
“핸드폰 삶아먹니? 빨리 가져오지 않고!”
“아, 갑니다!”
엄마 고함소리에 너는 정신이 돌아왔다. 핸드폰을 집은 채 비틀거리며 급히 나갔다. 동생이 방문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소리쳤다. 
“아빠, 우리 차 고치려면 돈 많이 들겠지?” 
핸드폰을 받으며 곤혹스러워하는 아빠의 표정을 너는 놓치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를 배웅하러 집 밖까지 따라 나갔다. 차가 얼마나 망가졌나 한 번 더 봐야겠다면서. 
안방으로 달려간 너는 배춧잎을 노려보며 눈을 감았다. 꾀죄죄한 털을 한 개들이 퍼런 배춧잎 위로 어른거렸다. 이어 누렁이의 슬픈 눈동자와 세종대왕 얼굴이 겹쳐졌다. 거래. 도둑. 밀매라는 단어들이 머릿속에 어지럽게 흩어졌다. 세종대왕이 인자하게 웃고 있었다. 너는 눈을 꼭 감아버렸다. 어차피 숫자 밑에 희미하게 지워진 날짜를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13장. 30만원’
이제야 알겠다. 
‘난 정말 뇌섹남이다!’
신이 난 너는 계산을 시작했다. 그러나 30 나누기 13의 계산이 자꾸 흔들렸다. 아무리 암산을 해도 나누어떨어지지를 않았다. 에잇, 나눗셈 더럽게 어렵다.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배불뚝이 트럭 아줌마가 떠올랐다. 가슴에 뭔가를 안은 채 트럭에서 내리는데 배가 남산 만하게 불러 있었다. 그 뒤로 엄마를 부르며 달려가던 두 명의 여자애들이 빠른 화면으로 스쳐갔다. 너는 머리를 세차게 휘저으며 네 방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엄마 아빠 방에서 새어나오는 한숨소리가 들렸다. 
“왜 그걸 받았는지 모르겠어.”
“우리가 너무 화가 났었나 봐요.”
“어쨌든 그 녀석 우리가 신고한 대로 뒀으면 뺑소니, 음주운전, 개 도둑, 그리고 불법 도살 견 운반 죄로 감방 살게 분명해.”
“그럼 우리가 구제해준 셈으로 생각합시다.”
“그래도 어쩐지 찝찝하다. 오늘 견적 받아봤지. 생각보다 차 수리비가 적게 나온 것 같아. 좀 그거 내 눈에서 안 보이게 치워버려. 자기가 알아서 쓰던가.”
“한 다발만 받을 뻔 했나 봐요. 그 여편네가 안겨주기에 그냥.”
엄마는 씁쓸한 듯 뒷말을 흐렸다.

그 후 며칠 동안 그 돈은 화장대 위에 짱 박혀 있었다. 너는 오며가며 일부러 안방 문을 힐끗거렸다. 단지 돈뭉치의 위치만 맨 옆 구석으로 옮겨졌을 뿐 그대로였다. 동생에게 한 번 물어봐야겠다. 혹시 그 여자애가 같은 반인가를. 그럴 리도 없겠지만 만약 그렇다 해도 이제 와서 네가 어쩌겠다는 것이지? 
너는 더 네 방에 틀어박혔다. 화장대 위의 걸레 같은 돈다발을 잊자고 애썼다. 그러면 그럴수록 자꾸 숫자가 맴돌았다. 30만 나누기 13이니 핸드폰에 넣어야겠지만 마리 당 2만원은 넘는다.
머리를 조아리며 병자처럼 비틀거리던 아저씨, 울먹이며 가슴을 싸안고 나오던 배불뚝이 아줌마, 엄마를 따라 달려가던 놀란 소녀들 눈빛이 천장에 맴돌았다. 그래, 그 아저씨는 그냥 개 운반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아저씨의 인생이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다. 어쨌든 도둑은 도둑이니까.
그러나 그걸 눈감아주고 양심을 판 건 도둑이 아닐까? 아냐, 경찰에 넘기지 않은 것만 해도 한 인간을 살려준 건지도 모른다. 개 도둑. 더러운 배춧잎. 30만 나누기 13에 훔친 개를 사들인 돈. 그 더러운 돈의 대가로 음주운전과 뺑소니를 눈감아 준 과장님. 너는 갑자기 돈다발을 집어 들고 옥상으로 달려갔다. 
“에이 씨!”
너는 돈다발을 40층 옥상에서 뿌렸다. 공중에 햇빛을 받은 배춧잎들이 자유를 찾은 개떼처럼 흩어졌다. 너도 배춧잎을 따라 고삐 풀린 개가 되어 어디론가 달아나고 있었다. 사람 없는 들판에서 자유의 냄새가 풍풍 풍겨왔다. 끝없는 해방감이 코끝을 톡 쏘며 상쾌하게 밀려왔다.
그런데 달리면서도 또 걱정이 생겼다. 돈이 땅에 닿는 순간 사람들의 반응이 말이다. 모른 척 주위 눈치를 보며 틀림없이 발 앞의 돈을 자기 것처럼 끌어들일 게 뻔했다. 오! 온갖 기발한 도둑들로 흥청거리는 세상. 너는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빙빙 돌았다. 개가 된 너는 도둑님들 발을 노려보며 왕왕 짖어댔다. 아차, 하면 물고 늘어질 기세로. 그때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큰 아들, 어서 내려. 공부하느라 피곤해서 그리 잠만 퍼 주무시는지 쯧쯧.”
“집에 다 왔어!”
동생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허겁지겁 차에서 내리다 보니 밖은 이미 어둠이 가득했다. 어둠 속에서도 아빠 차가 우그러진 곳이 선명히 보였다. 너는 가만히 머리를 흔들었다. 아직은 개가 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도둑들을 물었으면 또 한 바탕 소동이 날 뻔했는데. 어디서부터 꿈이었는지는 나중에 조용히 생각해봐야할 일이다. 아니, 선견지명이 있는 너는 미리 미래의 꿈을 꾼 것인지도 모른다.

 

 “이마리 선생님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차별 없는 
사회에서 행복하기를 염원하는 작가입니다.”

이마리 선생님은 생각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소설가입니다. 지금은 호주에서 청소년 역사 소설 시리즈를 집필하고 있으며, 한글학교 선생님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조선후기 청소년의 삶을 ‘대장간 소녀’에 담았다면, 동학운동과 관련된 소설에서는 ‘동학 소년’을 그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소년 독립군, 촛불 소녀 등의 연작 시리즈로 독자들과 만날 것입니다. 

 

- 추천도서 선정(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
2015년 『버니입 호주 원정대』
2016년 『구다이 코돌이』
2017년 『코나의 여름』
* 청소년소설 <대장간 소녀와 수상한 추격자들>
이스트우드 북랜드에 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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