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넓게만 보였던 학교 운동장은 커서 보니 손바닥만 하고 친구들과 시끄럽게 축구하던 골목은 이제 자동차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아 보입니다. 편안히 드나들던 대문은 고개를 숙여야 가능하지요. 

안식일에 예수님은 고향의 회당에서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듣고 놀라며 못마땅해 합니다. 예수님의 옛 모습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에게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마르 6, 2)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고향에 왔습니다. 3년만의 방문이지요. 목수였던 청년 예수님이 회당에서 가르침을 전합니다. 그 지혜와 기적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을 보고 미움과 시기와 질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들은 지혜와 능력 속에서 움직이는 거룩한 힘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잘 알고 믿을만한 사람의 능력에 흥미가 없다면, 그것은 그렇게 보는 이의 선입견입니다. 선입견은 미움의 씨앗이고 또 미움은 지옥의 뿌리가 됩니다. 천국이 사랑이면, 미움은 지옥이기 때문이지요. 눈앞에 그런 미움의 씨앗들 곧 선입견으로 지옥은 만들어 집니다. 천국은 처음처럼 살고 지옥은 미움으로 삽니다.

구약성경은 가족, 민족, 국가의 발전을, 복음서는 완벽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전합니다. 조직과 단체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온전히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성장 속에 선입견과 미움의 씨앗을 심는 것이 됩니다.

좋은 고등학교와 유명 사립대학을 졸업한 20대 중반의 어떤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를 신문기사를 통해 보았습니다. 그 기사는 필자에게 아주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하면서 직장의 폐쇄적인 조직문화로 인해 자신감이 점점 떨어져서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폐쇄적인 조직문화란 새내기 직장인으로서 일을 창의적으로 시도하려고 하면, 상사나 동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곤 하였답니다. 
“그거 해보나 마난데, 새로운 거 하려고 그러지 말고 하던 데로 하세요!”,“당신 말고 일할 사람 많으니까...” 

그가 직장을 그만두고 새롭게  일을 찾은 것은 도배사입니다. 직장을 그만둔 그 순간에는 도배하는 일을 도피처로 찾았지만 지금은 그에게 아주 소중하고 적성에 맞는 행복한 일이 되었답니다.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을 하면서 몸무게도 빠지고 몸도 여기저기 아프지만, 조용히 혼자서 일을 하면서도 자신을 돌아보니 하는 일도 재미있다고 합니다. 그의 희망은 아파트 한 채를 온전히 맡아서 자기 스스로 구상하며 꾸미는 도배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또한 여행도 좋아하고 해서 그에게 꿈은 마련한 집에 어울리는 도배를 하고 방은 아름다운 인테리어로 꾸며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있는 하우스를 운영하고 싶어 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의 기사였습니다. 소위 MZ세대(밀레니움 제네레이션)의 젊은이들다운 생각입니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말처럼,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오해를 하고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가족의 위로 한 마디는 어느 누구의 칭찬과 격려보다 아주 힘찬 응원과 위로가 되지요. 가까운 가족끼리 천국을 자주 건설해 보세요. 미움이 만드는 지옥은 얼씬도 하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공동체 속에 있는 사람을 온전하게 만나는 힘은 색안경을 벗은 있는 그대로 사람을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선입견이란?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어도 약하면 서로를 잘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코로나-19 그것도 델타 변이로 전 세계가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이 바로 오늘의 예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오히려 따뜻한 말 한 마디는 놀라운 치유가 일어나게 합니다. 코로나-19에 답이 백신인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이해와 믿음 그리고 사랑과 신뢰는 외로움과 고독을 이겨내는 ‘영적인 백신’입니다.  

곽승룡 비오 신부 (시드니대교구 한인성당 주임 신부)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