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록다운이 길어지고 작년 첫 록다운 기간보다 다닐 수 있는 거리도 단축됐고 생필품 구입도 가구 당 한 사람으로 제한됐다. 일체의 가족 모임이 금지됐고 벌금이  크게 늘었다. 
집에만 있다보니 운동도 덜하고 체중이 늘고, 건강은 나빠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팬데믹으로 인한 록다운은 자유를 박탈 당하고 제한된 곳에서 필수적인 것이 아니면 거주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했던 유대인의 게토를 생각나게한다. 

고리대금업으로 인한 파문의 심판

1. 유대인의 게토
게토는 유럽 인구의 1/3이 죽은 중세의 흑사병과도 무관하지 않은 연관성이 있다. 수세기에 걸쳐 반복된 흑사병은 병의 원인을 발견하지 못해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하지 못하고 발병을 할 때마다 속수무책으로 죽어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 질병이 인간이 퍼뜨린 악의적인 질병(페스티스 마누팍타)이라는 의심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의 푸대접에 불만을 품은 유대인들이 가죽 자루 속에 독과 앙심의 혼합체를 만들어 베네치아 주변의 우물과 샘과 물웅덩이에 뿌렸다는 누명을 씌우게 되었다. 이러한 혐의로 잡혀간 유대인들은 고문을 못이기고 거짓 자백을 하고, 관계없는 랍비의 교시에 의해 일을 저질렀다거나, 기독교인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억압하며 수 많은 유대인을 죽였기 때문에 앙심을 품고, 우리도 지배자가 되고 싶어서 였다는 거짓 조서를 꾸미게 됐다. 그리고 그들은 거센 반유대주의의 물결에 휩싸이게 되고 후에 게토로 내몰리고 사회와 격리되어 더욱 심한 경계와 생활의 제약을 받게됐다.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의 유대인 무장 봉기가 1943년 1월 18일 일어났다.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는 유대인들. en.wikipedia.org

게토에서의 생활은 유대인들만의 문화와 전통을 보존할 수 있는 그들만의 공간이 되는 순기능이 있었지만 특별 세금을 내고 안전을 보장받는 경제적 부담이 뒤 따르는 것이었다. 이들은 낮에는 게토를 벗어나 일할 수 있지만 해가 지면 주거 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많은 수의 유대인이 한 아파트에 몰려 살아야 했고 비좁고 비위생적인 열악한 환경이었다.  하수구나 정화 시설이 파손되어 사람의 분뇨도 일반 쓰레기와 함께 그들의 주거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유대인들은 구걸을 하거나 도둑질을 해서 연명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 났다. 겨울이 되면 추위와 굶주림으로 동사하거나 매일 고아가 발생하고 조금의 양식으로 자유를 박탈당한 차별과 고립된 삶의 악순환이, 나폴레옹이 이를 폐쇄할 때 까지 약 300여년간 지속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고난이 그들이 생존을 위해 경제적인 기술과 방법에 더 깊이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게토인 유덴가세의 1868년 모습. 위키피디아.

2. 경제 인식의 변화
베네치아의 주재 대사였던 지오반니 안토니오 파키네티는 베네치아가 터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게 된 것은 유대인들이 경제적인 부를 창출하는 것은 좋지만 궁극적으로 그들이 가진 기독교와 다른 사상을 근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베네치아의 상권을 잠식해 가기 시작한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이 죄악시하는 고리대금업에 깊이 관여하고 그들이 벤치(Banko)에서 탁자를 펴고 상담하며 사업을 하던 것이 발전해 추후 은행(Bank)으로 발전하는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영원한 안전지대 없이, 예기치 않은 상황에 민첩하게 이주해야하는 환경은 이들 공동체가 교권주의를 거부하고 지성에 기반을 둔 사상과 그로 인해 독자적인 회당 공동체 제도를 선택하게 됐다. 회당을 중심으로 부를 축척해야하는 상술과 방법을 체득하고 살아야하는 실존의 사상으로 자리잡게 된 것으로 평가한다. 

영국의 중앙 은행-잉글랜드 은행

17세기 중반 유대인 변증가인 므낫세 벤 이스라엘은 “세상에서 누군가 우리를 박해하면 다른 이들은 우리를 정중하고 친절하게 받아주었다. 한 군주가 우리를 추방하면 이탈리아의 제후들과 덴마크의 왕과 니사의 사보이 왕가의 군주는 우리에게 특권을 부여하며 특별한 대우를 해 주었다”고 유대인들이 가진 경제적 능력이 생존의 중요한 방책이었음을 기술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돈과 관련하여 동족과 이방인들에 대해 이중 잣대를 사용하고 있었다. 현대에도 유대계 은행들이 유대인들에게 대출을 할 때는 유대교의 율법을 따를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방인들에게는 이자를 부과 함으로 무상으로 유대인들에게 제공하는 것과 차이를 두고 있다. 16세기 아비뇽의 저명한 랍비 아브라함 파리손은 유대인 경제 지도자 회의에서, 성경시대 이후로 만물이 변화 했으며 돈은 단순한 생활의 도구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이 말은 유대인의 경제 활동은 율법으로 인해 제한될 것이 아니라, 적극 장려하고 보호 받아야 한다는 유대인의 생각의 변환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16세기 초에 출간된 신명기서의 주석을 쓴 신학자이며 랍비인 이자키 아브라바넬은 “이자가 무가치한 것이아니라.. 정확하고 정상적인 사업 방식이다..”라고 확고한 해석을 제시했다.

로스차일드 가문 창업자의 집(1869)

탈무드는 이런 유대인의 경제 인식을 이렇게 대변힌다. “가진 것이 없을 때, 부의 고마움을 가장 잘 알 수 있다. 의인의 눈에 아름답고 세상의 눈에 아름다운 것이 일곱가지가 있다. 그 중의 하나는 부다.”라고 강조했다. 

유대인의 ‘할라카’는 “정당하게 이루어진 경제 거래는 엄격한 윤리에 완전히 합치할 뿐만 아니라, 더욱 체계인 자선사업을 가능케하는 덕이 높은 행위”라며 경제 인식을 격상시켰다. 유대인이 함께 했던 왕조와 군주들이 발전하고 부흥했던 것은 많은 역사적 사료들로 잘 알려져 있다. 
기독교에서 사도 바울이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근원”이라고 터부시 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랍비 중심의 유대교는 이미 중세 시대부터 경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통해 세계 경제 성장에 선구적인 역할을 자처하게 되됐다. 나라가 없고 주권이 없는 나그네 민족의 설움과 반유대주의의 혹독한 고난이 오히려 그들을 더욱 강하고 실존의 능력을 배양하는 결과를 낳게한 것이다. 

코로나 록다운은 분명 고통스럽지만 실존의 필수에 눈뜨게 하는 특수 과외의 시간이기도 하다. 샬롬!   

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
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 
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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