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비롯한 갖가지 질병이나 사고 등은 예고 없이 찾아와 우리의 일상을 흔들어 놓는다. 이민자들의 경우 호주의 복지 시스템에 익숙지 않아 어려운 일을 당하면 정부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거기에 언어 문제까지 겹쳐 더 어려움을 겪는다. 본 칼럼은 뜻하지 않게 만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전문 복지기관의 도움으로 이를 잘 극복한 사람들 그리고 사랑으로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이를 통해 호주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실제적인 도움을 제공함과 동시에 더 나아가 호주 사회로의 융합을 위한 의미 있는 길잡이가 되고자 하는 뜻에서 마련되었다. 특별히 이번 주에는 한인 어르신들을 위해 그동안 카스에서 진행해 왔던 줌(Zoom) 무료 세션에 참가, 줌을 통한 여러가지 활동을 하면서 이 어려운 시기를 지혜롭게 극복해나가고 있는 어느 참가자의 글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줌세션을 마친 윤 여사가 줌으로 오카리나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우리 세대는 오랜 세월 많은 일을 겪으며 살아왔다. 나 어릴 때 할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보다”. 그 말씀의 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

2020년 초 부터 온 지구를 혼란과 아픔으로 몰고 온 코로나-19. 개인적으로 나는 2차 대전과 한국 전쟁을 겪은 세대이고 오래 전부터 천재 지변과 인재로 인해 인류가 고통 받은 것을 지켜봐왔지만 이런 세상은 정말 처음 겪는 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묶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과 친지들을 그리 어렵지않게 만날 수 있었다. 비행기만 타면 그리운 사람도 만나고 아름다운 곳을 방문할 수도 있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이었던가!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우리는 모두 한 동안 불안하고 당혹감에 휩싸였고 무엇보다 만남과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니 너무나 답답했다. 

하늘 길과 땅 길이 막혀 먼 곳을 방문할 수도 없는데다가 격리되어 이웃도 만나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히다. 산책을 나가도 개들은 사람을 바라보고 다가오는데 우리는 서로 외면을 하고 등을 돌리는 이상한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천만 다행인 것은 세상이 발전해서 전화와 카톡, 거기다 줌으로 멀리 있는 사람들과 화상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가 이 전에 경험하지 못한 혼돈의 시대를 이렇게나마 살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나는 코로나로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중 우연히 교민 신문에서 카스의 ‘시니어를 위한 줌 무료 강좌’에 관한 기사를 읽고 웨스트 라이드 카스 사무실에 찾아가 줌 강좌 등록을 했다. 

다문화 사회복지 기관인 카스는 팬데믹으로 외출이 자유롭지 못한 우리 같은 노인들을 대상으로 줌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내가 잘 배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지만 수업 시간 강사와 자원 봉사자들이 친절하게 천천히 잘 가르쳐주어 강좌를 이수할 수 있었다. 이후 만나기 어려운 가족, 지인들과 영상으로 만날 수 있어 얼마나 숨통이 트였는지! 

또한 한국에 있는 딸 가족, 멜번에 있는 두 아들 가족과 줌으로 안부도 묻고 대화도 하고 이렇게 사람과의 만남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에 참으로 놀랍고 감사하고 있다. 80이 넘은 내가 젊은 사람이나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줌을 배워 영상으로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외부와 소통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뿌듯하다. 그리고 줌을 통해 직접 가지 않아도 문화교실에서 하는 인문학 클래식 음악 시간의 설명도 대면 수업과 똑같이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큰 기쁨 중의 하나다. 가끔은 회원들끼리 작은 음악회 형식으로 각자의 재능을 자랑하는 즐거운 시간도 갖는다. 하모니카 연주를 하는 이도 있고 함께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데 나는 오카리나로 연주 실력을 뽐낼 수 있었다.

카스에서 진행하는 무료 줌 교육 세션 모습.

작년부터 코비드-19 로 인해 고립되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늘어가는 가운데 고령의 노인들 중에는 이민 온지 30년이 넘었어도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언어 소통의 문제, 낯선 법과 문화 또 이 사회에서 나고 자란 자녀들과의 대화 단절, 이동의 어려움, 센터링크나 카운슬과 같은 정부 기관의 복잡한 절차 등 노인들이 겪는 문제는 정말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런만큼 답답함으로 인한 우울증도 늘어나 고통 또한 심하다. 줌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고립되고 외로웠을 것이지만 그런대로 이 어려운 세상을 잘 건뎌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울감도 떨쳐 버릴 수 있어 감사하며 이 기회가 오히려 나중에 좋은 추억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줌은 팩데믹이라는 이 혼란의 시대, 더 나아가 록다운 장기화로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소통의 아이콘’으로 떠올라 많은 사람들, 특히 어르신들에게 큰 위로와 기쁨을 주고 있다. 

어려운 시기 한 가운데 있을 때는 고통의 끝은 과연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한다. 하지만 인생을 돌아보면 어려운 시간들은 어느 덧 바람처럼, 구름처럼, 저만치 흘러가고 있는 것을 기억한다.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아름다운 세월이 곧 우리 모두에게 찾아올 것이다. 용기와 희망을 가져본다. 

줌 무료 강좌 문의 : 카스 라이드 사회복지 지원센터(9063 8808)

[문의 및 상담] 9718 8350(노인복지 전용 한국어 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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