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모아 대학 진학 5년 계획 세워”
구독자 1만3200명 유튜브 채널 <Dianry_다이앤리> 운영 
‘오페어’통해 호주 가정 체험    

“스무 살은 모든 것이 가능한 나이인 것 같다. 이제 막 시작된 20대를 넓은 세상 속에서 스스로 즐기면서 꽉 채워나가 보고 싶다.” 

브리즈번에서 ‘포크리프트(forklift) 기사’로 일하는 한국인 워킹홀리데이비자 소지자(이하 워홀러) 윤다영(20)씨는 ‘스무 살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갓 스무 살이 된 아시아 여성이 새벽같이 출근해서 중년의 남성 동료 포크리프트 기사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MZ 세대인 윤 씨는 “특별할 것 없는 호주 워홀러 중 한 명인데 이렇게 한호일보에서 인터뷰를 하게 돼 감개무량하다. 현재 퀸즐랜드 코튼진에서 포크리프트 오퍼레이터로 근무 중인 00년생 윤다영”이라고 소개했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호주에서 20대를 보내고 있는 윤 씨는 “여성 포크리프트 오퍼레이터로 지내는 것에 일단 만족한다. 물론 아침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루 12시간을 온전히 근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앉아서 장시간 운전을 하지만 틈틈이 스트레칭도 하고 휴식시간으로 하루에 20분씩 2번, 점심시간이 30분 주어진다. 그 시간에 회사에서 제공되는 식음료를 마시면서 쉬기도 한다.”

“호주 직장에서는 급여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회사와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시급이 높고 클럭 인 앤드 아웃(clock in and out) 시스템으로 출퇴근 및 오버타임, 주말 수당까지 정확하게 체크된다.” 

윤 씨는 동료들과의 직장 분위기에 대해 엄지를 추켜세웠다. “함께 근무하는 호주인들의 뛰어난 유머 감각과 친절함으로 하루도 웃지 않는 날이 없다. 하루는 몸이 아파 결근을 했는데, 동료인 호주인 아저씨가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너의 호주 부모(Australian parents)가 되어 줄게’라고 말해줬다. 그리곤 저녁 초대를 받아 식사대접을 받고 가족과 함께 피아노도 치고 처음으로 아코디언도 불어보며 행복한 저녁을 보냈던 따뜻한 기억이 있다.” 

스무살 한국 여성이 포크리프트기사 자격증을 땄다고 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아직 현실을 잘 모르나 봐요, 그런 곳은 여자 안 써요.”였다. 틀에 박힌 사고방식에 반문하듯이 윤 씨는 5개월째 포크리프트기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관련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하며 현재 1만3200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채널 <Dianry_다이앤리>의 운영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와서 레스토랑과 같은 곳에 이력서를 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 3주차쯤 우연하게 유튜브에서 포크리프트 기사 라이센스를 따고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 영상을 보고서는 바로 라이센스 학원을 등록했고 면허를 취득했다.” 

2주의 시간을 투자해 라이센스를 취득할 수 있으며 그녀는 $500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 
‘거주 지역명 + Forklift licence’로 검색하면 다양한 학원들이 나오니 비교해보고 선택하면 된다. 

하루 12시간 현장에서 근무하면서도 일상을 촬영하여 유튜브에 올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일상을 보고 있으면 행복한 기운이 영상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다. 고등학생부터 워킹홀리데이를 꿈꿔왔던 윤 씨는 당시 많은 유튜브 영상들을 통해서 정보를 수집했다. 언젠가 워킹홀리데이를 가게 되면 해외에서 보내는 소중한 일상과 경험을 생생하게 간직하기 위해서 유튜버가 되리라 다짐했다. 

“채널을 운영하면서 생각보다 워킹홀리데이를 계획하고 꿈꾸는 고등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댓글이 달리는데, 자신이 10년 전에 왔던 워킹홀리데이의 추억을 회상하며, 본인이 경험했던 호주의 따뜻했던 기억들을 공유하고, 응원까지 해 주는 댓글들에 마음이 자주 녹아 내렸다. 가끔 비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나를 굉장히 오만하고 유난 떠는 사람으로 보는 댓글도 보이지만, 응원의 댓글에 마음을 둔다. 현재 내 일상은 굉장히 만족스럽고,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고 자부했다. 

윤 씨의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대학은 정말 배우고 싶은게 생겼을 때 가면 되는 것이니 대학에 얽매이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라”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가치관으로 인해서 대학 진학이 아닌 해외 생활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영어를 좋아하게 됐고, 영어권 국가로 진출하겠다는 구체적인 꿈이 있었다. 잠들기 전 5년 후 나는 어떤 나라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상상하는 밤들이 있었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행복, 시간관리, 경험은 인생을 살아갈 때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일상 속의 작은 행복들을 누리며 생산적으로 시간을 관리하는 것. 특히 아무 생각 없이 SNS를 스크롤 하는 행동을 의식적으로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 시간에 책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배우거나, 악기를 배우는 등 나를 발전시키는 활동을 선호하고 그것들이 값진 경험으로 돌아온다고 믿는다.”

그는 호주에서 여러가지 일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오페어(au pair)’다. 외국인 가정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아이들을 돌보아 주는 대가로 숙식과 일정량의 급여를 받고, 자유 시간에는 어학공부를 하고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일종의 문화교류 프로그램으로 어떤 호스트 가족을 만나느냐에 따라 만족도는 크게 달라진다. 

“나는 정말 사랑스러운 호주 가족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다. 취미로 피아노와 기타를 연주하고, 교회 주일학교에서 교사 경험을 어필했다. 그 덕에 호스트 아빠는 기타를, 6살 여자아이는 피아노를 배울 수 있었다. 오페어 생활은 꽤나 평화로웠다. 급여는 많지 않았지만 호주 현지 가정의 문화를 알아가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다른 워홀러들에게 ‘포크리프트 기사’라는 직업을 추천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여성 워홀러뿐만 아니라 모든 워홀러들이 한 번쯤 도전해봐도 좋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어떤 목표와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돈 절약이 주목적인 워홀러라면 시급이 높기 때문에 적극 추천한다. 생각보다 여러 방면에서 포크리프트 라이센스는 사용되기 때문에 유용하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그는 “저축을 더 많이 해서 호주에서 대학을 다니는 것이 앞으로의 5년 계획이다. 호주 이민법이 까다로워지고 있긴 하지만 영주권을 목표로 학업을 진행하는 것이 현재의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유튜브의 영상 속에서 비춰지는 윤 씨의 밝고 당차면서 진취적인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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