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온이 말하는 한국적인 것의 절정은 ‘빨리 빨리’다. 쿠온은 한국 김치는 좋아하지만 행동은 아빠를 닮아 호주 스타일 ‘느리게 천천히’이다. 이 차이는 같이 여행할 때 잘 드러난다. 나는 하루에 많은 것을 하려고 일정을 꽉 채워 아침부터 서두른다. 남편과 쿠온의 모토는 ‘하루에 한 가지’씩 하는 여유 있는 여행이기 때문에 내 마음은 항상 한 발 앞서 달린다. 

   어쩌다 쿠온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앉는 순간부터 답답해진다. 출발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쿠온은 우선 좌석을 다시 조절하고 유리창도 한번 닦아준다. 그리고 휴대폰을 한참 스크롤한 후 음악을 고른다. 음악이 둥둥둥 나오면 조금 들어보다가 기분에 맞지 않으면 몇 번이고 바꾼다. 몸이 덩실되는 음악이 나오면 그제야 출발한다. 나는 운전석에 엉덩이가 닿으면서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하면서 음악을 고른다. 그래서 항상 마음이 바쁘다. 쿠온은 집에서 요리를 할 때도 음악을 준비하는 시간이 한참 걸린다. 야채를 썰 때 듣는 음악과 볶을 때 듣는 음악이 다르다. 내가 빨리 시작하라고 닦달해도 쿠온은 음악을 들으면서 요리를 하면 일의 기쁨이 2배가 된다며 선곡을 바꾼다. 내 속에서 불이 몇 번씩 붙었다 꺼질 즈음에 식사 준비가 끝난다. 요리는 입도 대기 전에 벌써 식어있다.
   
   호주인 남편과 쿠온이 싫어하는 나의 ‘빨리 빨리’는 우리를 곤경에서 구출해주었다. 아이슬랜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공항에서 우리는 얼어버렸다. 출구까지 늘어서있는 체크인 줄 때문이다. 시간 여유를 두고 출발했지만 렌트카를 돌려주는 데 오래 기다려야했다. 갑자기 불어 닥친 아이슬랜드 관광 붐 덕분에 작은 공항이 더 이상 컨트롤할 수 없는 지경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줄을 서서 기다렸지만 이대로 가다간 비행기를 놓칠게 뻔했다. 내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 남편과 쿠온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태연한 척하고 있었다. 이민국의 줄은 줄어들 줄 몰랐다. 내가 앞줄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양보해달라고 하자고하니 남편은 모두 바쁜 사람들이이니 차분하게 기다리자고 말했다. 얌전하게 기다리다가 비행기를 놓칠 판이었다. 아이슬랜드의 날씨도 예측불가지만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이 걱정되었다. 전날 폭풍우 때문에 공항에 갔다 비행기가 뜨지 못해 돌아온 여행자들을 식당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앞에 서있는 한 사람 한사람에게 내 비행기 시간을 말하며 먼저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보를 해주었다. 뒤에서 나를 모르는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서있는 두 사람에게 손짓에게 ‘빨리 빨리’ 앞으로 오라고 했다. 체면 불구하고 머리를 휘날리면서 앞서가는 나를 따라오던 그들은 세관을 통과할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날처럼 열심히 뛴 날은 내 생애에 없으리라. 다행히 비행기는 놓치지 않았다. 그 날 비행기를 놓쳤다면 비바람 부는 아이슬랜드로 다시 나가야 했을 것이다. 다음 비행기를 탈 때까지의 수고는 한국인 아줌마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덜어진 셈이다. 그 후에도 우리 가족은 몇 번이나 나의 재치 있는 ‘빨리 빨리’로 위기를 모면했다. 

   쿠온이 손에 꼽는 또 한 가지 한국 아줌마의 특성은 교육열이다. 한국 엄마들뿐만 아니라 아시아엄마들 공통의 특징이다. 호주 사회에서 혹독하게 자녀를 교육하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인 엄마를 ‘타이거 맘’이라 부른다. 넌 더 잘 할 수 있어, 넌 더 좋은 학교에 갈 수 있어, 더 나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어, 더 괜찮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어라며 더 잘하라고 자녀를 압박하는 게 아시아인 부모라는 통념이 아쉽고 부끄럽기도 하다. 이민자로서 그 사회의 주류에 진입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적을 잘 내는 방법밖에 없다는 이민자 부모의 심정에 공감하지만 공부만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교육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내 친구의 아들이 호주에서도 손꼽히는 기업체의 사장이 됐다는 소식을 쿠온에게 기쁜 마음으로 전했다. 
“엄마 친구 아들이 대기업의 CEO가 됐대.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야.”
아무 속뜻 없이 쿠온에게 한 말이다. 할아버지 무덤에 대고 맹세할 수 있다. 그러나 쿠온은 한국 아줌마들은 사회적인 성공으로 자식들을 평가한다며 빈정거렸다.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자리에 올라서는 남의 자식을 부러워한다는 것이다. 나는 다른 집 아이를 비교해서 자극시킬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쿠온에게는 부담스러운 말이었다. 내가 원했던 엄마의 이상은 코끼리 엄마처럼 옆에 서서 보호하고 격려해주는 동반자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쿠온에게 어떤 역할에 대한 기대를 내보였을 수도 있다. 쿠온이 어렸을 때는 음악학원도 열심히 데리고 다녔다.  그러나 얼마 후 쿠온은 확실하게 음악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혔다. 쿠온이 거절한 음악에서 내 인생의 한 페이지가 찢긴 기분이 들었을 때 나는 알았다. 자식을 통해 다시 살고 싶은 내 꿈이 보였던 것이다. 자식이 내 인생을 다시 살게 하기위해 나는 내 시간과 쿠온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남의 집에 들여놨던 한 발을 빼야했다. 엄마의 욕망을 위한 시간이 쿠온에게는 없었다. 그러니 한국에서 내 부모가 나에게 교육을 시키며 기대했던 은근한 보상감이 내게도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쿠온이 나를 한국적으로 규정하는 또 한 가지는 의사 표현이다. 자기 의사를 뚜렷이 표현하는 서양식 교육을 받은 쿠온은 나의 침묵을 이해하지 않는다. 서로 부딪치는 일이 생기면 바로 대화로 푸는 그로서는 감정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내가 답답할 수밖에 없다.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나는 입을 다물어버리기 때문이다. 말로 흘려버리지 않으면 감정이 정체되어 관계가 썩어버릴 수도 있다. 사실 나는 말을 많이 하는 것도,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내 경상도 한국 가족의 정체성은 말없음표이다. 그런 내가 인간관계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대화라고 생각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나는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그 자리에서 해결하는 것보다 머릿속 생각의 방구석에 앉아 화해의 시간을 기다렸다. 이제 생각은 함께 나누는 대화라는 것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내가 나서서 표현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사실 말을 해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말도 안하는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할 수 있을까. 눈빛만 봐도 아는 것이 절대 아니다. 돌려서 말해도 안 되고 자세히 말해야 조금 알게 된다. 조목조목 짚어가며 대화를 하면 오해도 풀리고 관계가 개선되기도 한다. 그래서 말을 더 많이 하는 가족 안에서 자란 아이들의 행복지수가 높다고 한다. 관계는 그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직도 배우는 중이다. 가족을 이룬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특히 바다를 건너 와서 만난 다른 인종 다른 나라 사람을 가족을 두는 일은 타고난 성격조차 바꾸어야만 가능하다. 

  쿠온의 친구 루카스의 엄마는 칠레인이고 아빠는 아르헨티나인이다. 자부심이 강한 아르헨티나인답게 루카스의 아빠는 떠나온 고국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 만날 때마다 강조한다. 호주와 비교되는 아르헨티나의 우월함을 열성적으로 토해낼 때마다 그가 왜 호주로 이민을 왔는지 궁금할 때가 있을 정도다. 몸만 호주에 있고 마음은 항상 고국에 살고 있다. 언젠가는 돌아갈 것이라고 하는 데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다. 자식이 성장하여 그만의 가정을 이루고 독립할 때, 아니면 고국에 돌아가 편안하게 먹고 살 정도의 경제적 풍요를 갖추었을 때일 수도 있다. 고국을 떠난 이민자들은 항상 돌아갈 곳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곳 고향이 그들의 자존심이며 가슴 깊숙이 남아있는 존엄함이다. 나의 선배들도 나이가 더 들면 남은 생을 한국에서 보내고 싶다는 사람이 많다. 양로원은 한국으로 가고 싶다는 것이다. 호주 양로원에서 매일 아침 빵과 버터를 먹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루카스의 부모는 호주에 삼십년 넘게 살고 있지만 남미에서 살던 방식 그대로 생활한다. 매일 고향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비디오 통화를 한다. 음식도 남미식이며 교류하는 친구들도 스페인어로만 말하는 남미사람들이다. 다양한 인종들의 조화로 우뚝 선 호주라는 큰 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지가 모두 따로 뻗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중국인들은 중국인끼리 모여 사는 동네로 모이고 한국인들 역시 그들만의 그룹을 이룬다. 중국인들이 이십오 퍼센트 이상이 되면 호주 백인들은 자연스럽게 그 동네를 떠나 백인들이 더 많은 동네나 아예 이민자들이 없는 시골 동네로 이사를 간다고 한다. 도서관이나 헬스클럽 같은 공공시설도 마찬가지다. 내가 다녔던 헬스클럽안의 줌바클래스에는 십 년 전만 해도 백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최근 중국 이민자들이 시드니의 집을 대거 구입하여 이민을 온 후 클래스에는 중국인들이 늘어났다. 중국인들이 사십 퍼센트 정도까지 클래스를 차지하게 되자 백인들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끼리끼리 모이는 민족 사회를 잘 섞어놓은 것이 다민족 사회이다. 동양인들만이 아니라 남미나 아프리카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만의 가지를 치고 산다. 다양한 길이와 두께의 가지들이 뻗은 큰 나무는 햇빛이 좋고 비가 잘 내리면 아무 문제없이 잘 자란다. 그렇지만 태풍이 불고 산불이라도 나면 흔들리고 꺾이고 떨어진다. 나 같은 이민자들에게 나뭇잎이 떨어져도 살짝 그늘이 질까하는 불안이 생긴다. 코비드19같은 불상사가 생기면 다른 인종을 의심하고 다른 지역에 책임을 전가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존재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던 벽이 서서히 형태를 드러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벽이 쉽게 금이 가거나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나무가 튼튼하기 때문일 것이다. 접촉이 편견을 없애듯이 상대를 잘 알게 되면 불신을 표현하기 전에 다시 생각하는 지혜가 생긴다. 호주에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고 알고 친해지면서 생긴 배려와 포용력이 내 편견을 대체했다.        
   
   루카스의 부모는 선천적으로 유쾌한 바이러스를 타고난 사람들이다. 그들과 어울리면 남미인 특유의 쾌활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나조차 정신을 잃을 정도로 즐거워진다. 쿠온과 마찬가지로 호주에서 태어난 루카스는 이런 부모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랜 세월을 호주 사회에 살면서 좀처럼 변하지 않는 부모를 보면서 답답해한다. 호주인 여자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서 루카스는 그의 부모에게 공식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루카스의 엄마는 아들의 불만을 세 가지로 요약해서 나에게 말해주었다. 첫째로 남미 사람들은 너무 말이 많고 시끄럽다. 다음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없어서 창피하다고 한다. 마지막 세 번째는 감사하다는 말을 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 번째 불만에 나는 앗 하는 동질감을 느꼈다. 쿠온이 한국인 엄마에게 했던 불만이기 때문이다. 남미도 한국처럼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문화는 아닌 듯하다. 호주 사람들은 내가 감사한 일도 자신들이 감사하다고 먼저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냥 쉬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 말이 ‘땡큐’이다. 내가 호주에 처음 정착했을 때 ‘땡큐’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쓰려고 노력했다. 서양사회의 에티켓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 생각만큼 자주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쿠온이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식탁에서 내가 떨어뜨린 나이프를 쿠온이 주워주었다. 무심코 받아들고 식사를 계속하는 내 얼굴을 빤히 보며 쿠온은 또박또박 말했다.
“엄마, 세이 땡큐!”  

‘세이 땡큐’는 내가 어린 쿠온에게 가르쳤던 말이다. 호주 부모들이 말을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항상 가르치는 말이라 내 입에 배었던 말이었는데, 정작 써야할 때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엄마가 된 셈이다. 어릴 때의 쿠온은 가게나 식당에서 내가 무의식적으로 땡큐라는 말을 하지 않고 돌아서면 옆에서 쿡쿡 찌르며 ‘세이 땡큐’라고 속삭여 나를 무안하게 했다. 남이 나를 위해 한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적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본다. 내가 떨어뜨린 젓가락을 셀 수 없을 만큼 주워주었던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감사한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깨닫게 된 지금 내 옆에는 엄마가 없다. 감사를 느낄 때 오는 충만한 행복감은 고맙다는 말로 표현될 때 더욱 커진다. 마음으로 감사하면서 말하지 않는 것은 마음에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감사하는 마음은 반드시 표현해야한다는 것을 아들에게 배웠다. 서양인 아들이 한국인 아줌마에게 해준 가장 감사한 말은 ‘세이 땡큐!’이다.
 

박지반(Jivan Khelli) 작가 소개
- 경주 출생, 95년 호주 이주. 
- 소설 ‘자전거를 타고 온 연인’ 출간, 
- 에세이집 ‘미안해 쿠온, 엄마 아빠는 히피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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