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 환경도 보호하지 않으면 결국 멸종”
반달가슴곰 귀와 ‘ㅂ’ 너무 흡사해 그림 시작 
‘한글 아름다움과 동물 사랑하는 마음’ 작품에 담아 
‘환경보전 작은 도움’ 사명감 갖고 콘텐츠 제작

2019년 4월, 서울대공원에서 한 남자가 비버를 보며 친구들에게 자신있게 말했다. “저게 수달인데 외래종이어서 우리가 다 먹어 없애야 되는거야.”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깨끗한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천연기념물 제330호 수달은 현재 멸종 위기에 놓였다. 이날 목격한 ‘잘못된 주장’은  아이러니칼하게도 훗날 작가 진관우를 탄생시킨 계기가 됐다.  진 작가는 한글이 갖는 고유의 아름다움으로 동물 일러스트를 제작해 한글과 동물을 접목한 작품을 발표하면서 멸종위기에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작업인  ‘숨탄것들’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숨탄것들 프로젝트 진관우 작가

“합성어 ‘숨탄것’은 들이마시는 ‘숨’, 어떤 능력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뜻의 ‘-타다’. 그리고 명사 ‘것’이 합쳐져 숨을 타고난 것. 즉, 여러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순우리말이다. 복수 형태로 ‘들’이란 조사를 붙여 프로젝트명이 탄생했다. 쉽게 말하면 ‘동물들’이라는 뜻이다.”

너구리를 닮은 숨탄것들 로고

진 작가가 동물을 각별히 사랑하는 마음을 품게된 것은  할머니가 5살 생일선물로 사 준 동물 모형이 시작이었다.

“그후 각양각색의 동물 친구들에게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기억들로 자연스럽게 대학생 시절 활동을 하는 계기가 됐다. ’SOIL 천연기념물 지킴이단’, ‘멸종 위기 동물보호 소모임 the라온하제’, 국립공원공단 주관 보호 지역아카데미 등에서 환경과 동물들 위해 열심히 활동했다.” 

2년 전 서울대공원에서 목격한 일을 계기로 진 작가는 잘못된 지식이 더 많은 동물을 멸종 위기로 몰아넣는다는 생각하면서 그때부터 동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동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각종 위험에 처한 동물을 그림으로 알리고 그들이 우리의 삶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SNS를 통해서 홍보하고 있다.

가장 호응이 좋았던 쿼카

심심해서 그리던 반달가슴곰의 귀와 한글 ‘ㅂ’이 매우 닮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정말 우연이었다. 그때 반달가슴곰과 한글을 함께 그리고 나서 ‘이것을 작품 활동의 정체성으로 잡고 그림을 그리면 개성있는 작품들이 나올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동물을 알리는 동시에 한글의 심미적 기능까지 느낄 수 있게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림을 그릴수록 세계의 더 많은 동물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현재는 전 세계의 동물들로 확장해서 그리고 있다. 특히, 산불로 인해 멸종 위기에 놓였던 호주의 코알라, 쿼카 등의 작품은 유독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았다.” 

가장 처음 그린 한글동물 - 반달가슴곰

진 작가의 본업은 바이오환경과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미술전공자도 아니고,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다. ‘기록할 수 있다는 점’이 그림을 좋아하게 된 이유이다. 기록하면 기억할 수 있다는 말처럼.. 선사시대 선조들도 모두 그림으로 그들의 이야기와 상황을 알렸다. 그 그림이 남아서 시대상을 알려주듯이 지금 나의 그림도 누군가의 기억에서 잊혀진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상기시켜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나의 기록도 하나의 작은 기억 또는 역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완성된 작품들은 모두 휴대폰을 사용해서 작업했다. 

“평소에는 컴퓨터를 사용해서 마우스로만 그림을 그렸었는데, 지금은 개인적인 상황으로 휴대폰을 활용해서 작업을 하고 있다. 보통 일러스트 툴로 작업을 할 때는 동물 한 마리당 최소 2시간씩  걸렸다. 그림을 그리고 직접 내부를 채우는 작업이 있다보니 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지금은 갤럭시 노트20와 S펜을 이용해 그리고 있는데, 펜으로 그리니 훨씬 편하긴 하다. 하지만 픽셀 단위의 문제로 인해 일러스트만의 깔끔함이 없는 것은 아쉬움이다.”

마우스로 그린 코알라(왼쪽), S펜으로 그린 코알라(오른쪽)

“한글은 음절 하나하나가 
초성, 중성, 종성으로 분리될 수 있어 
하나의 단어로 읽을 수 있으며 
자연스럽고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 가능하다”

한글의 분리와 생동감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접근이다. 하지만 진 작가는 한글이 가진 과학적이고 예술적인 원리를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활용한 기법을 작품에 녹여냈다.

 “한글의 구성을 분리해서 경계를 표현하고, 펜으로 그릴 때는 최대한 동물들의 털의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한다. 한글의 정말 좋은 점은 음절 하나하나가 초성, 중성, 종성으로 분리될 수 있어서 다른 언어들과 비교할 때, 경계선을 나타내기에 글씨체가 다양해져도 유추를 통해 쉽게 단어로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혼획과 해양쓰레기로 멸종위기에 처한 한국 토종 고래 상괭이

“이를 활용해 색이 나뉘는 부분이나 명암이 필요한 부분 등 보다 자연스러운 동물의 모습을 표현해 내는 방법을 터득했다. 수염이나 가시가 있는 동물을 그릴 때는 직선이 있는 자음과 모음을 이용해 나타내기도 하고, 눈의 경우 대부분 ‘ㅇ’,’ㅎ’,’ㅁ’,’ㅂ’,’ㅍ’ 등 가운데가 비어있는 글자가 위치하게끔 글자들을 배치한다. 이렇게 하면 조금 더 생생한 눈을 보여줄 수 있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동물로 보이지만, 가까이 보면 그 동물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있는 진 작가의 그림을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우리가 이 동물들의 이름을 많이 기억하고 불러주고, 알아줘야 이 친구들이 우리 곁에 남아있을 수 있다. 한국어의 음소는 단어의 의미를 구별하는 가장 작은 단위이다. 하지만 그중 하나라도 사라지면 단어를 체계화할 수 없고 의미가 바뀌게 된다. 자연에서도 같은 맥락의 일이 일어난다. 만약 커다란 생태계에서 생물들이 하나씩 사라진다면 ‘멸종’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돌보고 보호하지 않는다면 결국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한국에서 멸종된 ‘강치’

덧붙여 진 작가는 그림을 보는 구독자들에게 호소했다. 
“지금도 생물 다양성은 점점 더 감소하고 있고, 다양한 위협들이 많은 숨들을 앗아가고 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 적어도 우리 곁에 있는 이 동물들에 더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깊은 마음에서는 나의 그림으로 행동적인 변화가 일어났으면하는 바람이 있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가장 큰 소망은 이 그림과 글을 보고 여러분의 일상 속,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작게나마 이들을 기억하고 이야기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내가 그린 동물들이 남아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의 작품에는 아름답도록 놀라운 한글과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잘 녹아있다. 진 작가는 ‘그림이 예쁘네요.’, ‘정말 잘 그렸어요.’라는 댓글보다 ‘반성하게 됩니다.’,’몰랐던 사실이에요.’라는 댓글에서 큰 힘을 얻는다.

“그런 댓글들은 내가 그린 동물들에 대한 정보와 피해 상황에 대한 글을 다 읽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 동물을 알리기 위해 공을 들이고, 노력해서 그린 그림이 결국 누군가에게 한 번쯤은 생각하게끔 만들어줬다는 것에 큰 보람과 뿌듯함을 느낀다. 항상 찾아와서 댓글을 달아주는 분들,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감명을 전달해준 분들 그리고 꾸준히 제 행보를 지켜봐 주는 지인들의 응원 덕에 더 힘을 낼 수 있다. 이제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환경보전의 의무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숨탄것들 프로젝트’ 그리고 3가지 목표
“’숨탄것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생긴 3가지 목표가 있다. 첫 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제품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보호해야 할 동물들이 많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결국 개개인이 인지해야 동물들을 지켜야 된다는 마음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일상 곳곳에서 이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품들과 콜라보레이션 활동을 해보고 싶다. 두 번째로 나와 같은 마음으로 동물들을 보호,보전하고자 하는 곳에 실제로 가서 그림과 자체 제작한 어패럴(apparel, 의복)을 기부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그동안의 비영리단체 활동을 통해 꾸준히 1년에 한 동물을 타겟으로 알리고 보호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생물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께 감사의 표시를 드리기 위한 작은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멸종 위기 동물에 관한 책을 발간하고 싶다. 지금까지 그렸던 동물을 직접 찾아가는 내용을 담아, 실제로는 어떤 위협가운데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보다 생생한 경험을 담아 대중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