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평생의 반을 밖에 나와 산 나로서는 한 고장에서 태어나 거기서 무덤으로 가는 사람이 부럽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자기 사회와 고유 문화에 대하여 무엇이 좋고 나쁜가를 잘 모르는 게 흠이다. 그에 대한 어떤 올바른 판단을 갖게 되는 것은 또 다른 사회와 문화를 접하고 난 후라고 생각한다.
 
이건 인류문화학 분야의 과제인데 우리 문화는 모두 나쁘고 남의 것은 모두 좋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균형 있는 사회관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아래는 해외의 한인들은 고국에서만 머물렀었던 동포들과는 다른 넓은 시야를 갖게 되고 그럼으로써 한국과 현지의 한민족공동체의 장래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최근 필자가 쓴 한 책의 말미이다. 우리 해외 동포들도 동감할까?
 
“직업에 귀천은 없다?”

 
우리는 개천에서 용(龍) 나는 입지전(立志傳) 이야기를 감명 깊게 읽고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게 관존민비(官尊民卑), 탐관오리(貪官汚吏), 가렴주구(苛斂誅求)와 같은 귀에 익은 말이 말해 주듯 권력과 금력에 의한 탄압과 착취 아래 신음하는 백성들이 다른 돌파구가 없어 그런 것이라면 결코 우리가 추켜세울 가치가 아닙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나 사람들을 오도하기 쉬운‘하면 된다 정신(Can Do Spirit)’이 바로 그런 것 아닌가요.
 
21세기 대명천지에 오직 용이 되기 위해서 대학 4년을 고시 공부에 매달리는 것도 부족하여 청춘을 고시촌에 바치고 그렇게 해서 나라의 동량재가 길러졌다면 그 나라가 건강할까요? 잘 살게 되었다지만 저렇게 시끄러운 고국의  사회정치문화의 뿌리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호주의 서민주의
 
저는 직위에 목매지 않아도 되는 백인사회의 가치와 호주의 서민주의(Egalitarianism)에 대하여 몇 번 썼습니다. 영국, 호주 등 영미국가와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같은 유럽 선진국에서는 재력이 넉넉하지 않다든가 학문에 대한 특별한 소질과 열정이 없다면 비싼 대학 진학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한국에서 보는 입시 지옥과 목숨을 거는 높은 자리다툼이나 협잡, 비리가 거의 없거나 드뭅니다. 그게 계속되는 한, 억울하고 한(恨) 많은 사람이 양산되기 마련입니다.
 
호주의 경우 매년 고등학교 최종 학년이 가까워지면 ‘School leavers’라고 불리는 많은 학생들이 직업 전선을 향하여 학교를 떠납니다. 대부분 기술 업종과 육체노동에 가까운 직업을 잡는데 보수가 의사같지는 않으나 과외로 더 일한다면 대학교수 못지 않습니다. 사람을 직업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 우리에 비하여 매우 서민주의, 평등주의 지향의 사회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장래 우리 사회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빈부격차와 기회의 불평등이 늘어나는 한, 국내적으로 구성원 간 반목과 갈등으로 안정과 평화는 없고, 국제적으로는 존경 받는 나라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김삼오(커뮤니케이션학박사,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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