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눈앞의 장애물을 뛰어넘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마약의 게임에서 목표 달성은 포식자가 피포식자를 손아귀에 넣는 일이다. 그 다음에 일어날 일을 추측하기란 식은 죽 먹기일 테니까. 
  그때까지도 소년이 아테나로부터 그것을 덥석 받지 않고 있었으나, 극도로 초조해진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거푸 마른 침을 삼켰다.  
  동영상을 분리해서 저장해야 내게 유리하게 경찰에 신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손가락을 달달 떨어가며 앨범(1)을 닫고 앨범(2)을 만들었다. 그때 맞은편에서 전조등을 밝힌 차가 다가와 급히 차선을 바꾸었다. 내 차를 뒤에서 박아버릴 것처럼 밀어붙이는 사이, 소년이 스케이트보드를 옆구리에 낀 채 달려 나갔다.  
  차에서 튀어나온 사내가 소년을 추적했다. 쇠줄이 절커덕거리는 소리가 어둠속에서 공포를 불러일으키며 들렸다. 나는 차문을 박차고 화살처럼 뛰어나갔다. 오랜 생활지도교사의 몸에 달라붙은 관성이 재빠르게 작동해 주었다. 나는 동영상을 찍으면서 그들을 추적했다. 앞에서 달리는 소년과 추적하는 사내가 파도처럼 출렁거리며 액정에 담기고 있었다. 미치광이 사내가 소년을 이삼 미터까지 따라붙었다. 그가 막 소년의 뒷덜미를 잡으려는 순간 나는 고함을 질렀다.  
  “그만두지 못해!” 
  뒤돌아선 사내의 얼굴은 달빛을 받아 파리했다. 사내가 어딘가에서 소년과 아테나를 감시하고 있었다면 나까지도 염탐했을 것이다. 나 외에 사람의 그림자라곤 찾아보기 힘든 곳이었으니까. 나는 재빠르게 휴대폰을 호주머니 집어넣었다. 아테나는 어디로 줄행랑을 놓아버린 것인지?
  헉헉거리며 다가온 사내의 입에서 허연 김이 뿜어져 나왔다. 대머리에 듬성듬성 자란 수염과 우람한 몸의 사내를 보고 악마와 한 판 싸우리라 각오를 했다. 그가 두 손을 마주 비벼대며, 찌푸린 표정으로 나를 향해 가소롭다는 듯이 희죽 희죽 웃었다. 곧추세운 눈썹을 실룩거리더니, 충혈이 된 눈알을 뒤집고 비명을 지르며 나를 향해 덮친 건 그 순간이었다.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고 바짝 조이며 내 주머니의 휴대폰을 빼앗아 콘크리트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의 발에 짓밟힌 기기가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다. 날아오는 사내의 주먹을 가까스로 피했으나 연이어 발길이 날아왔다. 무서운 힘이었다. 내 인생에 처음 경험해 보는 무지막지한 마약의 폭력에 나는 찍, 하고 길바닥에 넘어져 나뒹굴고 말았다.  
  내 두려움과 악마 사이엔 아무 방패막이도 없었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와 맞서다간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죽은 것처럼 엎드려 쓰러져 등짝을 짓밟거나 말거나 이를 악물고 견디었다. 신음을 토하며 꿈틀거리다가 무서운 한기를 느꼈고 곧 근육에 아무런 감각이 없어졌다. 
  어떻게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너덜너덜한 휴대폰을 주워들고 차를 몰고 집까지 올 수 있었는지? 그건 아직도 의문이다. 어떻게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정아나, 밥 묵었나? 밥 마이 묵어야 한데이! 
  윤선생이 딸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안방으로 들어왔다. 
  -아이고 정생, 이기 우찌된 일인교. 윤선생이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헷 참, 정생 날 원망하지 마이소. 사모님이 하도 한인들 없는데 점포를 얻어달라고 해서. 존덴 죄다 한인들이 차지하고 이서서 고만. 
  -아, 괜찮습니다.
  -아임더, 정생! 내가 바시면 그 가시나를 고마 팍 발바 문질러 부리실낀데. 
  -관심을 가진 제 잘못입니다. 
  -지 혼자 처묵고 콱 디져버리지. 지새끼한테 똥 파라라꼬 길가 내모는 문디새끼! 거기 인간인교.
  -제가 모른 척 했어야 하는데…….                           
  -금마들 파는 야기 어데서 온긴지 아는교. 마 배떼지에 새비너코 와가지고 똥구녕으로 배터낸 긴지도 우째 알겠는교. 아이머 여편네들 얼라집에 새비너코 와 피무치고 나온긴지. 더러번 김더. 헷 참. 
  아내가 도라지차를 들고 들어왔다. 
  -사모님, 이제 다 잘 될낌더. 심카드 경찰에게 넘기고 오는 길임더. 그새끼는 깜빵 갈 끼고, 그 가시나는 미성년자니까 훈계만 하고 보낼끼고요. 
  -아나 아빠가 살아서 돌아온 것이 기적입니다. 아내가 말했다. 
  -갸들 잔인한 거 말도 모탐더. 그 새끼 나오기 전에 점포를 한인들 마이 사는데 옴기야 될거 가심더.
  통증이 가라앉자 잠이 쏟아졌다. 진통제에 마약성분을 얼마나 강하게 처방했는지, 정신이 몽롱하더니 두 사람의 말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다 끊어졌다.  
 
  몸은 망가졌지만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운 느낌이었다. 전직교사가 뭔가를 해냈다는 자긍심에 헛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지역신문의 구석구석을 읽어본다든가, 목발을 짚고 경찰서 안을 기웃거린다든가, 정신의 힘으로 간신히 견디고 있었다. 제우스와 아테나는 경찰조사를 받는 것 같았다. 
  윤선생이 경찰에 넘겼다는 심카드의 동영상(1)과 동영상(2)는 기계의 특권인 사실을 똑똑하게 보여주었을 테니까. 거기다 아테나의 자백을 받아내면 제우스를 잡아 구속하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일 것이다.  
  이민을 온 후 처음으로 자랑스러운 일을 한 것 같았다. 아나를 잘 키우고 숍을 운영하며 평범한 이민생활을 하리라 다짐했다. 한국정부가 준 장학금으로 취득한 학위와 그리고 교사자리를 팽개치고, 무책임하게 이민을 온 것에 대한 죄의식도 조금이나마 반감되는 것 같았다. 
  길거리 청소년지도를 하다 붙잡은 학생이, 어린 마음에 어쩌다 불량한 일을 저질렀지만, 내 교훈 한 마디에 반성을 하고 행동에 변화를 보일 때면, 마치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마음이 아파서 상담실에 숨어서 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옛일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사건이 있던 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상처도 좀 가라앉은 것 같았고 침대에서 보내자니 답답해 환장할 지경이었다. 숍에 나가는 아내의 차에 올라탔다. 꼴이 말이 아니라 손님들 앞에 나가지도 못하고 창고에서 하루를 견디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거기에 가보고 싶다고 아내에게 억지를 부렸다. 범죄자가 현장을 확인하고 싶은 심정 같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날의 그 거리가 나를 잡아끌었다. 또 직접 내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성이 안 풀렸다.
  아내의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 밤에 겪은 고통의 쾌감이 되살아났다. 문득 낯설게만 느껴지는 거리에는 스케이트보드나 자전거를 타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한 편으론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자부심이 내부 깊숙한 곳에서 뜨겁게 달아올랐다. 길거리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마약(street drug), 한 번 손을 대게 되면 장기가 파괴되고 살이 썩고 뇌가 녹아버려도 끊지 못한다. 청소년을 보호하는 일이 특별히 나만의 일이야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한 행동이 전직의 책임감이든, 시민의 양심이든, 가족애든, 세상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어깨가 무거웠다.
  교육은 가장 높은 순간에서 판단해야하고 범죄자는 가장 낮은 순간에서 판단할 뿐이다, 생각을 하다 담배를 꺼내고 말았다. 찢어지는 아내의 눈길을 외면하며 불을 붙였다. 몸이 완쾌되면 아나를 데리고 그 거리에서 스케이트보드를 배워보고 싶다는 청소년 같은 꿈이 솟구쳤다. 아테나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제우스도 없었다. 그는 이미 구속이 되어 있을 터였다.   
  거리가 어둑어둑해지자 갑자기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날 밤도 그랬다. 밤이 되면 기이할 정도로 거리가 정적에 싸이는 지역이었다. 쥐구멍 같은 엘리자베스 서킷을 돌아 나오는데 무의식적으로 내 눈을 잡아끄는 끈끈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눈을 비볐다. 잘 못 본 것인가? 고개를 몇 번 흔들었다. 다시 응시했다. 아테나였다. 
  모르는 소년을 붙들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분명 아테나였다. 나는 아내의 휴대폰을 잡아채서 그 장면을 서너 번 찍으며 소리쳤다. 
  -빨리, 빨리……. 출발해, 빨리! 섬뜩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디서 제우스가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현기증이 일어났다. 그럼 그렇지! 아테나는 제우스의 마리오네트 인형이니까, 제우스와 끊을 수 없는 관계였다. 코너를 돌면서야 고개를 뒤로 빼보았다. 제우스라 착각했던 남성은 다행히 환영에 불과했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자정이 되도록 자반뒤집기를 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이 들었다가도 식은땀을 흘리며 몇 번이나 깨어났다. 온몸의 상처가 제우스에게 짓밟히던 날처럼 뒤틀리며 고통스러웠다.  
  전화벨이 울었다. 깊은 잠에 골아 떨어져 있던 아내가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안절부절 못하며 “예스, 예스.” 대답만 하다 급히 전화를 끊은 아내는 황급히 아나의 방문부터 열어보고 “쉬!” 하며 손가락을 입술에 세웠다. 추리닝에 다리를 끼워 넣느라  꼬꾸라지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은 아내는, 어딘가에 전화를 했다. 밖으로 나온 아내는 지갑과 휴대폰을 집어 들고 소 닭 보듯 힐끔 한 번 내게 눈길을 주었다. 
  -도대체 누구야? 그녀는 들은 척 만 척 했다. 
  잠시 후 택시가 도착했다. 그녀는 평소 밤눈이 어두웠다. 맨발에 잠옷 바람으로 목발을 짚으며 따라나서는 나를 아내가 밀쳐버렸지만, 치맛자락을 붙들고 택시에 탔다. 
  -어디 가는 거야? 몇 차례 물어도 아내는 꿀 먹은 벙어리 모양 묵비권을 행사했다. 
  소방차 한 대가 택시 뒤에서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왔다. 택시가 갓길로 빠져 길을 비켜주었다. 그때서야 불난 숍에 소방대원들이 거인의 오줌 줄기 같은 물총을 쏘아대며 불길을 잡고 있는 광경이 한 눈에 보였다.  
  숍 앞의 4차선 도로는 이미 물바다였다. 단층 슬레이트지붕을 뻥 뚫은 화마는 멋지게 타오르고 있었다. 일주일 새에 배가 볼록해진 달이 신나게 불구경 하는 것을 올려다보며 나는 껄 껄 껄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당신 미쳤어요? 아내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왜! 나는 웃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는 거요? 
 -누가 어디 웃지 말랬어요! 웃으려면 뭘 좀 알고나 웃어요. 이렇게! 이렇게요. 아내가 눈알을 희번덕거리더니 흰자위를 뒤집어서 헤실, 헤실 웃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웃음이 싹 달아났다. 섬뜩하고 오싹해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찰나, 아내의 모습에서 청소년 때 보았던 실성한 여자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그 미친 여자는 동네에 불이 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제일 먼저 나타나, 불길의 리듬에 맞추어서 덩실 덩실 춤을 추며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가려고 했다. 쫓아버려도 가지 않고 불꽃을 보고 헤실, 헤실 웃으며 환장을 하는 여자를 나무에 묶어 놓고서야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택시 기사가 입을 벌리고 뜨악하게 두 사람을 번갈아 흘겨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떠났다. 나는 아내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았다. 카메라를 클릭하고 동영상을 찍었다. 난생 처음 보는 아내의 기묘한 행동을 놓칠 수가 없었다. 
  아내가 불속으로 뛰어 들어 갈 것처럼 허적허적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목발을 짚고서 동영상을 찍으며 아내를 따라잡으려다 몇 번이나 넘어졌다. 미친 듯이 춤을 추며 타오르는 화마를 향해 빠르게 나아가는 아내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최대한으로 줌을 넓혀야 했다. 그녀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다 다시 넘어졌다. 넘어진 채 자욱한 잿빛 연기 속에서 아내의 어깨가 들썩거리는 액정 장면을 감상했다. 춤인지 오열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손가락을 떨어가며 동영상을 멈추지 않았다. 
  집을 떠난 새는, 두고 온 고향의 둥지를 그리워하느라 제 둥지가 불타고 있는데도 불구경에 미쳐서 날개를 훨훨 저어서 불길을 살린다더니, 저 여자가……. 나는 중얼 중얼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한 참을 신명나게 찍다가 내 눈가를 만져보니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연기 때문일까? 알 수 없었다. (끝)
  

테리사 리 소설가 
15회 재외동포 문학상 대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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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비단뱀 쿠니야의 비밀> <어제 오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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