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혼

정예지


지붕 없는 학교에 입학한 
반쪽은 턱시도 반쪽은 웨딩드레스 

처음엔 꼬신내만 나더니  

날벼락 칠 때엔 못질 소리
화창한 날엔 장어 굽는 냄새
안개 심한 날이면 시계 초침 말소리만 들리는 요상한 학교

해 뜨면 짹짹거리고 
달 뜨면 아지랑이 피어오른다 

거울 없는 이곳에선 서로를 비추며 표정만 따라할 뿐 
자신 이름 잊은 채 다른 이름 불린다

누굴 위한 쾌거였을까 
깊게 패인 주름으로 학년 새기고 
전우애로 단단해진 등을 맞대며 통과한 시험들  

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만 가르치던 선생님이 
숨쉬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살아가고
꿈속이 꿈 속인 줄 모르고 
사랑하는지도 모르면서 머뭇거리는 그를 
헛똑똑이라며 깨진 유리 건넸다 
   
유리 파편 속 낯선 민낯이 초점이 맞춰져 빛난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졸업장 들고 갈라지는 바람  
동쪽으로 서쪽으로 
따로 종종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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