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카란다

한국에 벚꽃이 있다면 여기는 자카란다가 있다. 4개월의 록다운이 풀리고 집 밖에 나와보니, 온통 자카란다 세상. 이토록 경이롭게 흐드러진 자줏빛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 갑자기 나타난 것은 사실 나였다.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집안에 갇힌 새였다. 아무 데도 가지 말라는 정부 방침에 철저히 순응하고 있었다. 마치 누에처럼, 집이라는 고치에 틀어박혀 생각의 실만 뽑아내고 있었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새장에 갇힌 새는 문 열어 놔도 날아가질 않아.’ 그렇게 갇혀 있다 보니 산책하러 나가기도 싫었다. 처음에는 집 주변을 걸었지만 5킬로미터 안에서는 갈 곳이 뻔했다. 그 진부한 지루함 때문에 실내 운동으로 바꾼 터였다, 주일예배도 집 안에서 영상녹화 편집하여 인터넷에 올려 버리면 끝이었다. 그렇게 자가 칩거하던 내 주변에 봄기운이 돌았다. 두텁게 입었던 옷들이 하나씩 벗어 던져졌다. 계절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그러다가 해방의 날을 맞아 뛰쳐나온 바깥세상은 온통 자줏빛의 봄이었다. 

2. 인생 방랑자

한국영화제가 열리고 있었다. 사위가 건네 준 두 장의 티켓이 있었다. 지난주 마지막 날 밖에 시간이 없어 ‘밥정(방랑 식객)’을 택했다. 시내로 나가는 기차를 타기에는 좀 망설여져서, 차를 운전해서 타운홀 뒤 빌딩에 주차했다. 주말이라 주차요금은 낼 만했다. 밖으로 나오니 사람 천지다. 적어도 시드니 시내는 코비드가 끝났다.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써야 하고, 코비드 안전 체크인을 해야 했지만, 사람들은 매우 익숙하게 자신의 정보를 공개했다. 2년 동안 생명을 담보삼아 길들여진 결과다. 대부분 젊은이들이었고, 구경 나온 내국인들이었다. 나 역시 그들 중에 끼어서 타운홀 빌딩에 어우러진 자카란다를 향해 사진 셔터를 눌렀다. 시간이 좀 남았기에 피트스트리트몰까지 걸어가 봤다. 
아내가 물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사방을 두리번거려요?”
당연했다. 코비드 2년의 위험을 살아남은 자의 특별한 권리였고, 다른 사람들도 인정하는 듯했다. 그동안 코비드로 인해 세상 떠난 사람이 5백만 명, 호주는 나라 문을 꼭꼭 닫아건 결과 1,448명으로 대단한 선방을 했다. 건강하게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 자부할 만하다. 
시간이 되어 들어간 영화관은 다시 겨울이었다. 밀폐된 홀에 떠도는 코비드 균을 냉동시켜 다 흡입해 버리려는지 에어컨을 완전 가동하고 있었다. 덜덜 떨면서 영화를 봤다. 주인공 임지호는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셰프다. 세계 정상들과 최고 셰프들이 모인 곳에서, 한국산 자연재료를 가지고 제철음식을 만들어냈던 그는, 매우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3명의 엄마가 있었다. 낳아준 엄마와 키워준 엄마. 그 엄마들과 생이별할 수밖에 없었고, 나중에 만났어도 감사한 줄을 몰랐다. 그러다가 두 엄마가 다 세상 떠난 후에야 엄마를 그리워하며 지리산을 헤매다가 또 한 엄마를 만난다. ‘길 위의 엄마’다. 깊은 산골에 사는 그 엄마를 10년 동안 찾아가 맛난 밥을 지어 드렸다. 그러다가 그 엄마마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에 3일 동안 108가지 음식을 만들어 바친다. 세 엄마를 향한 최고의 밥을 드린다는 마음이었을까? 비 오는 날 쪽마루에 차려진 음식들을 보니 통닭은 물론 멜론 한 덩어리도 보인다. 동서양의 퓨전이라는 생각에 다운언더에 사는 내게도 공감이 일었다. 그는 그렇게 살다가 4개월 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나보다 2살이 어리다.

3. 단풍

나의 엄마는 자카란다가 항시 피어 있는 곳으로 먼저 가셨다. 문뜩문뜩 생각날 때면,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가를 회상한다. 먼저 보내 드린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절절한 후회의 아쉬움이다. 그 아쉬움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향한 아쉬움을 상쇄시킨다. 사랑의 운명은 ‘내리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제 철이 조금 들어 그 사랑을 깨닫게 되는 지금, 나는 갈 곳이 있다. 한국에 각각 홀로 계시는 아버지와 장모님을 찾아 뵈는 일이다. 한국과의 록다운도 풀려나가는 것 같으니, 빨리 가서 뵙고 싶다. 나의 무뚝뚝함을 깨고, 이 한마디만은 하고 싶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잘 살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용기 내어 그 말을 하고는 짙어져 가는 단풍을 함께 바라보고 싶다. 지리산은 못 가도 설악산 정도는 가서.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