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국제무대에서 화두 중 하나는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오커스(AUJUS)' 안보동맹 출범으로 호주-프랑스 잠수함 건조계약(900억 달러) 파기를 놓고 누가 거짓말을 했는가라는 공방전과 향후 후유증이었다. 
 
G20, COP26(유엔 기후변화총회) 등 세계적 관심이 모인 국제 이벤트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모리슨 총리에게 거짓말을 했다라고 공격했다. 모리슨은 이를 거부하며 증빙이란 듯 마크롱 대통령과 주고받은 텍스트 문자를 호주 언론에 유출하며 반박하고 나섰다.
 
모리슨은 이제 이 문제에서 벗어나자(move on)고 주장하지만 의도성이 다분한 유출로 인해 사태가 더 꼬이고 있다.

주호주 프랑스 대사까지 모리슨-마크롱 설전에 개입했다. 정상간 주고받은 사적인 대회 내용을 유출하는 행위는 국제관계에서 신뢰 상실이라고 호주측을 강력 비난했다. 그는 프랑스가 맹주인 EU가 호주의 기후변화 행동 부재를 강력 질타하며 압박할 것이고 EU-호주 FTA 협상에서도 호주가 하드타임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논쟁에 호주 정치인들도 개입하고 있다. 특히 말콤 턴불 전 총리는 “모리슨은 내게도 여러번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 오커스 출범과 관련해 국제관계 신뢰 추락으로 호주의 국가 명성을 손상했다”라고 강력 비난했다.

호주 현직 총리가 우방국 대통령과 전임자로부터 거짓말장이라는 공격을 받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COP26 총회에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2030년 목표를 상향 조정한데 비해 호주는 이를 조정하지 않을 것이며 6년 전 정한 목표를 유지할 계획이다. 2050 넷제로도 적극적인 산업별 감축 계획이 아닌 테크놀로지 개발을 통한 자발적 감축이란 애매모호한 계획으로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비웃음거리가 됐다.

또 호주는 100개국 이상이 서명한 글로벌 메탄 서약(Global Methane Pledge)에 대한 지지를 거부했다. COP26에서 주최국인 영국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공식 출범시킨 이 메탄서약의 이니셔티브는  2030년까지 메탄가스 배출의 30% 감축을 추진하는 것이다. 
서약을 지지하는 나라들은 총 배출의 절반을 차지한다. 서약을 거부한 나라들은 중국, 러시아, 인도, 호주 등이다. 

모리슨 총리와 동행한 앵거스 테일러 호주 에너지 및 배출 감축 장관은 “호주의 초점은 특정 분야의 목표가 아닌 경제 전반의 넷제로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러고 밝혔다. 참으로 초라하고 궁색한 답변이 아닐 수 없다. 

호주가 서명을 거부한 이유는 농업에 대한 영향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서약을 주도하는 미국도 호주와 비슷한 농업과 축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총리와 에너지 주무 장관의 이런 입장으로 G20와 COP26에서 호주는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실망감을 반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놓쳤다. 이런 방식으로는 호주가 이 아젠다에 대해 어떤 새로운 주장을 해도 설득력을 얻기 힘들 것으로 우려된다.   

석탄과 가스 산업 보호를 위해 2030년 탄소배출 감축 목표 상향 조정을 거부한 것과 농촌을 위해 메탄가스서약을 거부하면서 모리슨 총리는 ‘전가의 보도인양’ 국익을 앞세웠다. 그러나 실상은 이런 보호를 해준 대가로 화석연료 산업과 농촌의 지지를 받는 것은 일종의 정치 거래일 뿐이다.

모리슨 총리는 재무장관 시절 석탄 덩어리를 들고 의회 답변에 나서 야당 공방에 맞선 정치인이다. 이번엔 정상간 사적 대화의 의도적 유출로 곤경을 벗어나려는 행태를 취했다. 방어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페니 웡 야당 외교담당 의원은 4일 의회에서 “정상간 사적 대화의 고의 유출은 일종의 만행(vandalism)”이라고 규탄했다. 그는 모리슨의 행동을 국제 외교 관계에서 관행을 무시한 도널드 트럼프에 비유하며 “모리슨은 파트너십과 연대를 손상시켰다. 보다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대처해야한다”라고 훈계했다. 지난 30년 사이 국제무대에서 호주 총리가 이처럼 실망스럽고 초라해 보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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