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시작’ 시작시인선  

윤희경 시인의 첫 시집 ‘대티를 솔티라고 불렀다’

시드니에 거주하는 윤희경 시인의 첫 시집 『대티를 솔티라고 불렀다』가 한국에서 시작시인선 0392번으로 9월30일 출간됐다. 전남 나주 출생으로 1996년 시드니에 정착한 윤 시인은 2015년 『미네르바』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고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출판사인 (주)천년의시작은 서평에서 “시집 『대티를 솔티라고 불렀다』는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호주에서 살아온 이민자로서의 삶을 성찰하고 고백하는 양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시인의 존재론적 기원을 회상하는 미학적 결실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라고 소개했다.
 
그의 시에는 호주와 시인이 거주하는 시드니의 여러 지명과 호주와 연관된 주제가 종종 시에 등장한다. 한 예로 ‘호주 부시 파이어’는 2019-20년 호주 동부에서 여러 달 기승을 부렸던 큰 산불을 묘사했다. 

“.. 백만 홍위병이 밀려온 듯.. 화마가 쓸어간 수천의 피눈물..” 등 
당시를 기억하는 호주 동포들이 실감할 수 있다. 
 
시집의 제목 ‘대티를 솔티라고 불렀다’는 ‘대티고개’의 마지막 구절인 ‘대티를 솔티라고 부를 수밖에’에서 차용했다. 부산 과정을 회상하는 이 시에도 에핑로드, 카슬힐로드, 시인이 사는 동네인 글레노리가 나온다.  

시집 해설에서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존재론적 기원의 탐색’, ‘예술적 자의식을 토로하는 메타적 사유’란 항목 등으로 구분해 윤희경의 시를 해설하면서 “현재의 지층 속에 존재하는 과거 경험을 재현하면서 동시에 그때의 한순간을 예술적 자의식으로 생생하게 구성해 낸다. 자신의 실존을 가능케 한 언어예술로서의 시를 품고 살아간다.”라고 평했다. 

추천사를 쓴 장석주 시인은 “고도(孤島) 같은 외로운 실존의 소리 없는 비명”이라 평했으며, 남홍숙 수필 평론가는 “이민자로서 시를 짓는 자의 품이 광야를 넘어섰다.”라고 평했다. 

한호일보 고직순 기자 editor@hanhodaily.com

 

[출간 소감] “나의 문학은 생채기 문학”

“내일 인쇄 들어갑니다” 며칠 후면 서점에 책이 배포될 예정이라는 말을 들었던 한 달 전, 그날부터 오늘까지 얼굴이 계속 달아오른다. 책에 마침표를 찍고 출판사에 보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첫’ 시집, 환호작약만 할 수 없는 어떤 누름돌이 있었다.

지난 한 달 내내 모발 폰에 불이 났다. 출판사 서평에다 블로그에 대표 시와 첫 시집을 소개해주는 문우들과, 서점 레이아웃에서 책을 꺼내 찍어 보내준 지인들의 표지 사진, 열렬하게 보내준 문자 응원까지, 전화기를 열어보는 손바닥조차 후끈거렸다. ‘첫’이라는 말에 다소간 흥분해준 내 지인들과 독자에게 또다시 빚을 지고 만 셈이다.  

65편의 시를 시집보냈다. 그 집은 붉은 벽돌 색 대문이다. 그 집의 주춧돌은 이민이라는 낯설고 거친 돌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 돌은 딱딱했으나 말랑말랑했고 멀리 던져두었으나 내게 다시 돌아온 나 자신이었다. 고백과 이중주, 오랜 기억을 환기시키는 시적 회감, 탐색과 존재론적 기원, 지명과 풍물들로 얽히고 섞인 수많은 세포가 시냅스를 통해 한 개의 돌올한 바윗돌이 되는가 하면 여기저기 찢겨 발라진 채 낡은 깃발로 서 있는 바로 내 모습이었다.

 시인의 말에서 시인을 두고 생채기 공장이라고 했으며 나의 문학을 생채기 문학이라고 고백했다. 시를 쓰는 과정은 행복했으나 불편의 연속이었다. 셀 수 없는 불면의 밤과 고심을 통해 무두질이 되어가는 외피를 만져 볼 수 있었고 무너져 내리는 반성을 통해 내 속은 한 켜씩 비워져 나갔다. 굳이 말하자면 조금은 단단해졌고 넓어졌다. 이 시집은 내 상처 위에 바르는 연고와 같다. 내 안에 같이 살던 사랑의 내인들이 모퉁이 돌이 되어 나를 다시 살린 것이다. 사암으로 부서져 내렸던 이름조차 바닥의 틈을 단단하게 메꿔주었다. 

약속을 다시 드린다. 아직 발화되지 못한 씨앗들을 여기저기 숨겨두었다. 좋은 시인으로 좋은 글을 쓰는 것만이 내 시집을 펼쳐준 분들에게 갚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시드니 글레노리에서
윤희경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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