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의 고민, 불안, 그리움이 시 창작의 원천”

2017년 <문학나무>로 등단한 호주 동포 문인 김인옥 시인이 최근 한국에서 첫 시집 ‘햇간장 달이는 시간’을 실천문학 시인선 47권으로 출간했다. 강원도 속초 출생인 김 시인은 1996년 호주로 이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고 있다. 2020년 재외동포문학상을 수상했다.

최근 호주 동포 문인들 중 한국내 유명 출판사에서 시집을 발간한 사례가 늘고 있다.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실천문학은 시인이면 누구나 시집 출간을 원할 정도의 명성을 갖고 있다. 시인선 명단에 여러 유명 시인들이 포함됐다. 

시드니의 윤희경 시인이 (주)천년의시작에서 최근 첫 시집을 출간했다. 유금란 시인은 6회 동주문학상 해외신인상을 수상했다. 호주 동포 입장에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인옥 시인은 30대 초반의 나이에 한국을 떠나 이제 중년의 나이에 이른다. 25년 호주 이민 생활을 통해 세월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시 약 60편을 묶어 한 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김인옥 시집의 시적 배경은 대체로 호주라는 점에서 호주 동포들에게 친숙한 지명(마운트 윌슨, 롱비치, 파라마타강, 팜비치, 아나베이, 맹그로브 등)과 풍경(쿠카부라, 센터링크, 남십자성, 그라피티, 호주와 강원도 사북 탄광, 호주 산불, 빌라우드 등)이 등장한다. 선데이마켓, 역송금, 이스트우드 북경 오리, 뿌리에서는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 노동 현장도 묘사됐다. 또 코로나 사태 초기의 사회 모습도 담겼다. 

특히 ‘뿌리’ 시에서 황 씨는 동해 오징어잡이 배에서 서호주의 광산을 거쳐 시드니 빌라우드(불법체류자 수용소)로 서글픈 인생 유전이 담겼다. 호주 한인사회에서 비슷한 체험담이 많이 들렸던 안타까운 시절이 연상됐다.

그런가하면 ‘시네마 천국 - 장자연을 추모하며’에서는 한국 사회 특권층의 부조리를 섬뜩하게, 직선적으로 고발했다. 시인의 풍자와 고발은 이 사건을 보도한 어느 신문기사보다 서늘했다. 다른 시에서도 사회의 곪아터진 구석을 보는 시인의 눈에 칼날이 섰다. 

 

시네마 천국 
- 장자연을 추모하며

(중략)

안 되겠다
쉬어가며 하자

쉬어가자는 놈마다
소주 맥주 위스키 수정방
하나같이 밀어 넣기만 한다 
사방 갇혀서 피를 흘린다

스피드를 내자

이봐 다리 좀 찢어 아니 한 쪽만 걸쳐
악착같이 파고드는 꽃 대궁 속
붉은 얼룩

필사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짧은 거래
별이 되었다 

 

시집 전반에 잔잔해 보이면서 툭툭 던지는 시어가 놀라움을 선사한다. 그런 강인함과 비틂이 어디에서 나올까.. 

이승하 시인(중앙대교수)은 ‘호주의 하늘 아래서 그리는 고향’이란 제목의 시집 해설에서 “삶은 영어를 해야지만 영위할 수 있는데 꿈은 한글로 꾸고, 그 꿈을 한글로 옮겨 쓰고 있으니 이런 모순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바로 이 모순이 이민자의 문학을 살찌우고 있다. 김인옥 시인의 시는 이렇게 해서 태어났다. 경계에 서 있는 자의 고민과 불안감, 온갖 갈등과 혼란, 엄청난 그리움 같은 것들이 시를 쓰는 원천이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시집 추천사에서 박덕규 교수(시인.문학평론가)는 “고향과 현지, 옛 시절과 오늘의 시간, 그 시공을 넘나드는 폭이 크고, 솜씨 또한 발랄하다. 나고 자란 곳과 살고 살아갈 곳의 차이를 모국어 쓰임의 형상으로 감각화하고 있다. 김 시인이 태어난 고향 강원도와 현재 살고 있는 시드니에서의 보고 느낀 삶의 일상들을 정제된 시어로 잘 형상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드니에 거주하는 김오 시인의 추천사는 더욱 구체적이다. “툭하면 카메라를 들고 출사(?)를 간다는 시인. 그 발걸음이 아나 베이, 팜비치로 나가 ‘설악산 소총 산장 은하수’와 ‘태극 운수의 안개등’을 건져오는 치유의 길이란 걸 나중에야 알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더하여 ‘고향을 그리워하기보다는 고향을 끌어다 놓은’ ‘뿌리 내리고 사는 곳이 고향’이라는 주체적 이민 문학관과 조우하게 된다고 했다.

【김인옥 시인의 말】

불행이 거침없이 밀려들었을 때
뜬금없이 이제 모든 것이 잘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물 열차의 짐이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에겐 얼마나 소중한지 
동이 트는 사이로 기적소리가 보였다. 

2021년 8월 
시드니에서 김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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