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성적 괴롭힘’ ,  51% 왕따 경험
“과민반응 소문, 경력 손상 우려해 신고 기피”
‘폭력과 침묵’ 관행 고착, 피해자 11%만 문제 제기

세계 9위의 민주주의 국가이자 세계에서 8번째로 자유로운 국가인 호주 연방 의회의 민낯은 ‘권력 남용’과 ‘성 불평등’이었다. 캔버라의 랜드마크인 연방 의회의 직원들은 성희롱과 성추행, 따돌림과 괴롭힘이 있어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게 관행이었다. 문제를 발설한 직원에게 돌아갈 불이익(해고, 좌천 등) 때문에 입을 다무는 조직 문화가 습관화됐다. 이같은 한심한 상황을 호주인권위원회의 케이트 젠킨스(Kate Jenkins) 성차별위원장이 8개월 동안 의회의 직장 문화를 조사한 결과다. 

자유당 장관의 전 비서 브리타니 히긴스가 의사당내 성폭행을 폭로하면서 실태 조사의 단초를 제공했다

올초에 터져나온 의사당내 성폭행 의혹에 대한 연쇄적인 폭로 후, 젠킨스 위원장은 직장 문화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전현직 직원 490명을 인터뷰했고 302건의 제출 문건을 검토했다.  935건의 설문응답을 조사했다. 1,723명의 개인과 33개 기관을 조사했다.

그 결과는 창피스러웠다. 의회에서 직장 내 폭력과 억압이 만연해 있었다. 의회 직원 2명 중 1명(51%)은 다음의 세 가지 폭력 형태 중 하나를 적어도 한 차례 이상 겪은 적이 있었다. 직장 내 왕따(bullying), 성적 괴롭힘(sexual harassment), 성폭행(sexual assault) 또는 성폭행 미수. 이러한 폭력 행위를  경험했거나 목격 또는 소문을 접한 직원은 77%였다.

직원 37%는 직장 내 괴롭힘을, 33%는 성적 괴롭힘을 경험했다. 한 조사 참가자는 남성 정치인이 몸을 만지거나, 아래쪽(하체)을 쓰다듬거나, 외모를 평가하거나 하는 등의 행동들을 허용하는 문화가 의회에 존재했었다고 보고했다.

1%는 실제로 성폭행을 당했거나, 성폭행을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조사 과정에서 한 피해 당사자는 “내 옆에 하원의원이 앉아있었다. 그가 내게 할 말이 있다고 생각해 몸을 숙였다. 그는 나를 붙잡고, 내 목구멍에 그의 혀를 찔러 넣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역겹고 수치스러웠다.” 라고  말했다.

스콧 모리슨 총리가 실태보고서에 대해 실망감을 나타냈다

여성이 남성보다 이러한 폭력 행위들을 경험한 비율이 높았다. 성소수자(LGBTIQ+)라고 밝힌 사람들은 이성애자로 자신을 확인했거나 성적 기호를 언급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높은 비율로 성적 괴롭힘을 겪었다.

직장 내 왕따, 성적 괴롭힘 등에 대한 가해자는 상급자(senior)일 가능성이 컸다. 왕따 가해자는 여성이, 성적 괴롭힘 가해자는 남성일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일들은 직원들의 정신 건강에도 영향을 미쳤다. 다른 동료들의 소식을 전한 한 참가자는 “한 명은 자살을 시도했고, 다른 한 명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내가 알고 있는 (연방의회에서 일했던) 세 여성은 아직 심리학자들과 만나고 있다. 한 명은 결혼이 파탄났고, 한 명은 하원의원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자녀들과 완전히 틀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를 보고(report)를 하거나 불만(complaint)을 제기할 방법을 아는 사람은 관련자들의 절반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방법을 안다고 해도 그러한 절차를 밟지 않겠다고 했다.

성적 괴롭힘 피해 당사자가 이를 보고한 비율은 겨우 11%였다. ‘과잉대응’이라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서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직원이 이를 보고한 비율도 32% 에 그쳤다. 직장 안에서 트러블 메이커로 평판과 경력에 흠이 잡힐까 봐 우려했기 때문이다. 

한 참가자는 조사에서 “하원의원들은 해임될 위험이나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행동에 책임져야 할 위험이 없다. 그래서 그들이 한 나쁜 행동에 대한 결과는 없다”라고 지적했다.

실태보고서를 발표한 케이트 젠킨스 성차별 위원장

보고서는 “권력 불균형, 성 불평등, 책임성의 부족이 의회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 행위의 원동력이 됐다”고 진단했다. 젠킨스 위원장은 28개의 개혁 권고안을 제시하면서 의회의 저질 직장 문화가 변화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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