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회당

유대인들의 오랜 역사 동안 일년 중 가장 슬퍼하는 공식적인 날을 꼽는다면, Tisha B’Av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티샤 바브는 유대인들의 자존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예루살렘 성전이 이방의 침공으로 파괴된 날이다. 이 날은 공교롭게도 솔로몬이 세운 제1성전과 바벨론 유수 이후 세운 2성전이 파괴된 동일한 날이다. 지금도 까만 옷을 입고 까만 모자를 쓴 정통 유대인들을 종종 발견하게 되는데, 그들이 성전 잃은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장례복을 입고자 했던 것에 기인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회당의 모습

1. 예루살렘 성전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며, 선왕인 다윗 왕의 염원이었던 성전이 예루살렘에 세워지고, 예루살렘은 명실 상부하게 세계 어느 큰 도시와 비교할 수 없는 창조주의 존엄과 영광이 임재하는 특별한 신적 권위와 유대인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곳에서 매일 제사와 예배가 올려지고 여느 미신적 신당과 비교할 수 없는 영적 권위를 자랑하는 신의 도성이 되었다. 하지만 BC 586년, 바벨론의 침공으로 유대인은 땅을 빼앗기고 주권도 상실하는 국가적 수치를 경험했을 뿐 아니라, 성전이 무너지며 영적 자부심과 소망 자체를 잃게 되는 총체적인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때 유대인들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기록들이 여럿 남아 있지만 시편에 절절히 그들의 심경이 표출되있다. 아마도 시편 137편이 대표적일 것이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편137:1)”

출애굽과 유대인의 장막

그 시대의 선지자 에스겔은 시온으로 돌아 가고자 하는 열망과 비전을 선포하는 인물이었다. 랍비들은 그를 통한 하나님의 뜻은 나중에 새로운 혁신적 기관인  Beit Knessset 이 세워지게 되었고 이는 현대로까지 이어져 지금 회당(Synagogue)의 기원이 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에스겔 11:16은 “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 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기록하고 있다. 중심된 성전이 사라지는 대신 작은 성전들이 여럿 생기게 된 것이다. 

성막

2. 회당의 등장
랍비들은 이 회당을 ‘아래로부터 오는 경각심’ 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말씀 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요청한 것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평가한다. 구약성경에서는 회당이라는 말을 찾아 볼 수 없다. 철학자이며 교수인 M Stern은 “ 회당이 세워진 것은 유대교에 있어 종교와 사회적 역사 안에 가장 획기적인 변환이며, 과거 어느 곳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총체적인 새로운 신적 임재의 환경으로 등장했다” 고 강조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유대 역사학자로 알려진 살로 바론같은 인물은 “회당은 예배의 장소적 강조로부터 예배자들의 모임과 회중의 회합으로 중심의 전환이 이루어 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탈무드 학자들은 신은 세상의 어느 곳에도 존재하고 그의 창조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예배할 수 있도록 망명지의 예루살렘으로 재탄생할 수 있게 된 역사와 시대성을 강조한다. 이들은 마음을 신에게로 향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신적 임재가 이루어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출애굽 때, 광야에서 임재한 ‘움직이는 장막’에 주목한다. 
장막은 임시적인 구조물 이었지만 지속적인 영향력이 주어졌고, 반면에 성전은 영원할 것을 의도했지만 오히려 일시적인 것이 되었으며, 장막은 형이상학적인 영향력이 다신교적인 21세기 세상에 더욱 이해하기 쉬운 이동식 성전의 개념을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애초부터 하나님은 어는 곳에서든 마음에 순전함을 가진 자들에게 언제나 찾아 가고자 하는 분 이었음을 상기 시키는 말이다. 유한한 장소에 무한 존재가 임재한다는 것은 논리의 모순이 처음부터 존재할 수 있다. 

성전과 법궤

3. 신의 임재
하지만 탈무드의 현자들은 출애굽기 25장이 “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라는 구절이 영어로는, "Then have them make a sanctuary for me, and I will dwell in them.” 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원래 장소가 강조 되어야 했다면 in it, ‘그 곳’ 이라고 기록해야 하지만 토라는 인칭 대명사를 사용해, 사람들 가운데(in them) 임재할 것이라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결국, 신의 임재는 성전 자체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건물이 아니라 건물을 지으려는 사람에게, 어느 곳에든 마음을 신에게로 향하려고 한다면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 하는 영원한 장소가 된다고 가르친다. 이 개념은 ‘아직도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구원을 이루려 한다’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비판이, 마음에 신을 모시려는 것을 수천년 동안 가르쳐온 탈무드의 가르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시작된 오해임을 발견하게 한다. 이러한 생각의 전환이, 지난 수 천년 동안 성전이 없이 광야를 떠돌던 나그네 같은 유대인들이 21세기까지 생존 할 수 있었던 지속성의 원천이 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탈무드는, 신은 인간에게 매일 영원으로부터 새로운 하루를 쏟아 낸다고 가르친다. 이 말은 비록 어제, 실패와 시행착오가 있었어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매일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상황은 비록 절망과 파괴로 어지럽지만, 영원에 속한 신적 평화와, 전지전능한 창조주의 능력은 장소에 상관없이 신의 도움을 찾고자 하는 순전한 마음에 언제든 임재 할 수 있음을 조언하고 있다. 다만 성급한 세상에 휘둘리지 않으려는, 잠시의 멈춤이 우리에게 필요할 뿐이다. 샬롬! 

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
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 
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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