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바의 태양은 저녁 시간인데도 놀이에 빠져 집에 갈 시간을 잊은 소년처럼 천지를 붉게 물들이며 뒹굴어댔다. 팔레트의 붉은 물감이 오래토록 지워지지 않을 것처럼 파란 하늘을 자두 빛에서 라벤더 색깔로 바꾸어가며 화려한 유희를 벌이기도 했다. 
코바 캠퍼장의 무인 코티지에 도착한 우리는 이미 시든 상추가 되어 일몰을 카메라에 담을 여유도 없이 허겁지겁 짐을 풀었다. 제발 더위라는 악마의 그늘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5박 6일의 여정에 4인분의 식량과 옷가지 등의 짐은 사륜구동의 천정에 올라가 있으니 차 지붕에서 트렁크 짐을 내리기 바쁘다. 사막에서 만약을 대비하여 시드니에서 구비한 25리터의 기름통 두 개와 생수통이 차 트렁크를 점령해야만 했기에. 
코티지는 삐걱거리는 낡은 침대와 손바닥만 한 남루한 공간이었지만 온종일 사막의 땡볕에서 허우적거리던 허약한 동굴 인들에게는 천상낙원이었다. 이 오지에 있는 건물이라고는 오로지 이 캠프 사이트뿐이라 시드니에서 아예 6일간 4인분의 식량을 장전하고 온 게 천만다행이었다. 4인의 먹보들은 서로 자기가 준비한 식품을 나열하며 생색내기 바쁘다. 원래 식성 좋은 4인방이 오지에서 굶기라도 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야지랑을 떤다.
“인간은 빵으로만 사는 게 아니야!”
“와, 안 먹어도 헛배 부른 자, 그대는 굶는 게 어때?”
남편이 내 숟가락을 빼앗고 빼앗기지 않으려는 잠시의 실랑이 중에 남은 2인방이 열심히 비빔밥을 축낸다. 
“아차, 저런 게 어부지리이것다.”
우리 2인방도 달려들어 허겁지겁 비빔밥을 흡입한다. 만나가 따로 있나? 점심으로 먹고 남은 음식을 모아 만든 비빔밥 한 끼가 바로 천상에서 내려온 만나려니. 벌게진 얼굴로 숟가락질하는 아귀 같은 게걸스러움에 우리는 마침내 깔깔거리고 만다. 아무리 먹보귀신들이라도 무사 운전을 축하하며 와인 축배 드는 것을 놓칠 수는 없지. 오지에서 맛보는 와인 맛이 꿀맛이다. 40도 이상 되는 길을 온종일 달린 터라 아껴 홀짝거리는 와인 한 잔에 벌써 반쯤 눈이 감긴다. 소박한 행복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다.
온종일 달구어진 샤워 물은 천연 온수가 되어 40도는 넘을 듯 뜨겁다. 물론 물이 귀한 이곳은 집집마다 우기에 빗물을 모아 빗물 통에서 나오는 이 물이 생명수다. 당연히 설거지도 작은 그릇에 모아 그릇을 함께 통 목욕시킨다. 낡은 에어컨이 있긴 하지만 양철지붕을 식힐 정도는 아니라 온열 에어컨이 돌아가는 듯 4인방의 얼굴 모두 벌겋게 달아올랐다. 열이 높은지 에어컨이 노인의 가래기침처럼 길길 거린다. 
남편이 걸터앉은 낡은 이층 침대의 난간이 위태롭게 덜렁거린다. 살을 좀 더 뺄걸 그랬다며 침대보다는 자신을 탓하는 남자가 갑자기 존경스럽다. 오지에 있어 준 이 집의 낡고 작은 물건 하나에도 소중함과 감사함이 넘쳐나니 광야에서 도를 닦던 성자들의 고충이 생각난다. 불만장이인 나도 오지에 남아 꿀과 메뚜기를 먹고 살면 좀 착해지려나.
잠자기 전 밖을 보니 언제 들어왔는지 우리 차 주위로 온통 캠퍼 밴들이 가득하다. 나도 호주 캠퍼 밴 방랑객들처럼 달랑 캠퍼 밴 한 대에 몸을 밑기고  길 아닌 길을 헤매는 환상에 빠져 든다. 동화작가 폴 제닝스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꿈꾸면서. 
‘그때 ‘물 소녀’가 자신의 몸인 물을 한 방울씩 먹여 사막에 온 소년을 살리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스토리가 전개되던 사막은 넓고 황량하기 그지없었지. 지금 이곳 코바처럼.’

리빙 데저트, 사막은 살아 있었어.

죽음 같은 반 건조 사막.
다음날 아침 새벽부터 더위가 푹푹 익어가고 있었다. 코바 구경을 하고 최종 목적지 브로큰힐을 향해 떠나야한다. 더워지기 전에 먼 길을 달려야하기 때문이다. 코바는 브로큰힐의 명성을 잇는 주변 도시로, 석탄 실은 기차가 그곳에서부터 동부 시드니까지 달렸던 거다. 지금은 쇠락한 시골 사막지대지만 호주의 거대한 탄광지대였던 명성답게 붉은 황토 흙에 철제장식으로 된 낡은 기차 전시물이 성황이었던 당시를 말해주고 있었다. 이런 오지까지 진출한 인간의 선각자 정신이 오늘을 이루게 한 게 아닐까?

코바를 뒤로 하고 차는 최종 목적지인 브로큰힐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브로큰힐은 호주 최초의 광산 도시로 1800년대 유럽, 특히 독일, 영국 등 심지어는 필리핀에서까지 원정 온 노동자들이 개발한 광산촌으로, 아니 큰 도시가 될 정도로 한 때는 번영을 누리던 곳이었다. 이곳이 오지가 끝나는 지역이다. 그러니 브로큰힐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끊어진 언덕, 부러진 언덕, 고장 난 언덕, 부서진 언덕...등 적당한 어휘를 생각해 보시라.
호주는 어디를 가나 낡은 전통을 귀히 여겨 앤티크가 즐비하며 그것을 즐기는 게 관광의 제일 큰 목적이기도 하다. 때로는 과거를 알아야 발전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에 너무 큰 비중을 두어 가끔씩 정체되는 현상을  보게 된다. 내 개인적인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중 하나가 어느 동네를 가나 전국적인 체인으로 운영하는 비니스(Vinnies)라는 자선 목적의 중고 가게다. 물건이 값도 싸고 품질도 좋을뿐더러 물건을 사주면 기부하는 셈이니 꿩 먹고 알 먹는 셈이다. 
브로큰힐 비니스에는 엔티크 제품들, 특히 영제 중고 그릇이 가득한 걸 보니 역시 브로큰힐이 과거 풍요로웠던 광산 붐의 도시임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나도 그때 득템한 작은 소스 그릇 다섯 개가 브로큰힐을 기억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 있는 애장품으로 남았다. 
호주를 여행하는 분이라면 도시마다 마을마다 있는 비니스를 들러볼 것을 권한다. 그곳에 가면 한 눈에 그 마을의 수준을 알 수 있기에 다른 정보가 필요치 않더라는 것이다. 참고로 동서가 ‘비니스회장’이라 멤버로 가입하려면 사전에 그분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ㅋㅋ 비니스 마니아라서 여행 때 꼭 들려야한대서 우리가 여행 중 붙여준 호칭). 
브로큰힐이 가까워오자 펼쳐진 광야에 ‘The Living Desert’ 라는 간판이 보였다. 완전 죽은 사막 같은 곳이 살아있는 사막이라니 의아할 수밖에. 그러나 중간에 멈추어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을 때야 ‘살아있는 사막’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한 길 앞을 모르는 이 우둔한 인간이여!

생태계 사슬이 이어지는 사막은 죽은 듯 살아있더라.
어디서 무엇을 먹고 사는지 모를 파리 떼의 습격이라니! 손톱 크기 정도는 되는 왕파리 떼의 습격 때문에 보초를 서서 쫓아주기 전에는 도저히 라면을 먹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청바지까지 뚫고 들어와 물어대는 아픔이란! 발을 동동 구르고 한 사람은 연신 파리를 쫓아주어야만 한 사람이라도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우리는 라면을 흡입하고 도망치듯 다시 차로 올랐다. 
그런데 일행 중 누군가가 이야기하다가 대형파리를 흡입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단백질 섭취라고 신나는 체하면서 은근히 주눅이 든  당사자는 캑캑거리며 죽을 지경이니 나조차 위속에 파리라도 들어간 듯 속이 거북했다. 이 파리 녀석들 때문에 호주 오지 노인들은 입을 작게 벌려 우물거리며 말해 영어가 제대로 발음되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났다. 우리 팀도 되도록 대화를 삼가고 눈짓 손짓으로 대화를 했다. 
그 큰 파리를 흡입하면 오지에서 온전히 살아 돌아가지 못할 듯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나마 벌레방지 스프레이로 무장을 했기에 망정이지. 오지 규칙 제 1호. 남편은 놓고 가도 벌레방지 스프레이는 꼭 가져가라.
도대체 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저 사막에서 어떻게 파리가 번식하는 것일까? 달리는 내내 의심은 계속된다. 그러고 보니 죽은 듯만 보이는 건초가 무수한 생명을 살리고 있음을 실감했다. 위성지도를 보니 부연 은하수처럼 보이는 길. 그것 때문에 생명이 살 수 있는 것이다. 바짝 마른 건초 속에 우기의 수분을 숨겨두고 최소한의 수분만을 쓰고 있는 거다. 
‘저게 ’와디‘야!, 황토 흙 사이로 난 희미한 색의 골은 우기에 물이 흘렀던 거야!’
나는 갑자기 아는 척 호들갑을 떨었다. 브로큰힐에 갈 때 배웠던 걸 벌써 돌아오는 길에 써먹었으니. 이제야 조금씩 의문이 풀린다. 고양이만큼 큰 시꺼먼 까마귀 떼가 모인 곳엔 여지없이 죽은 동물의 창자를 벌여놓은 채 까마귀 떼가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남기고간 그 찌꺼기를 먹는 왕벌만한 쉬파리 떼들. 길에 흐르는 피딱지 위로 정신없이 오가는 개미떼. 
‘사막은 나름 신비하게도 공생하며 엄연히 살아있었다.’
우주의 광활한 질서 속에서 약육강식이라는 생존 사이클을 돌리는 활발한 공생 공장이었다. 
‘서로 먹히고 내어주는 사슬 속에서.’
점점 어린왕자에서 아름다운 사막이라던 말에 공감이 가는 순간이었다.

작가소개 :
그림 작가 백경선생은 청산에 묻혀 그림이 일상이고 일상이 예술인 자유로운 영혼. 이마리 작가와 호주의 붉은 흙을 좋아하는 성향이 맞아 3 회로 연재될 브로큰힐 여행 글에 그림으로 살아있는 자연의 혼을 불어 넣어주기로 단합하다. 
센트럴코스트에 묻혀 사는 이마리 작가는 청소년 역사소설 <대장간소녀와 수상한 추격자들><동학소년과 녹두꽃>에 이어 삼대 째 이어지는 독립군이야기 집필에 열을 쏟고 있으니 멋진 독립군의 탄생이 목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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