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글 제목을 얼른 보고 여기 한인들에게는 무관한 학술 이야기인가 할 사람이 있겠다. 학술 관련이고 학자가 많은 한국에 더 해당하는 건 맞으나 해외 한인사회와 동떨어진 탁상공론은 아니다. 균형 있고 건전한 고국의 발전에 기여하자면  해외 한인들도 고국의 동포 못지않게 깊은 사회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기에 그렇다.  

Jack of all trades, but master of none. 배운 영미인, 특히 미국인들이 잘 쓰는 말이다. 아는 건 많으나 한 가지도 똑똑하게 알거나 잘하는 게 없는 친구란  뜻이다.  한국 말에도 비슷한 게 있다. “열두 가지 재주 가진 놈 끼니가 간 데 없다”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격언도 쉽게 해석을 해버리면 안 된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라면  대개  맞는 말이다. 예컨대  전기 기술자가  평소 전기도 하고 배관공과 벽돌 쌓기도 겸한다면 전문성이 전기만 전업으로 하는 자만 못 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인문사회  분야라면 다르다.

인문사회학의 대상이 되는 사회 현상은 모든 분야가 밀접하게 연계가 되어 있다. 그러므로 편의상 연구와 교육과 훈련은 영역을 좁게 나눠서 해야 하지만, 그 전문성이 사회발전에 최대로 기여할 수 있으려면 궁극적으로는  다른 전문성과 융합 및 통합을 이뤄야 한다. 
아리송하게 들릴 것이다.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써보면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는 오늘의 한국의 발전 전략이 인문분야의 경우 각자 한 가지 전문성에 한정된 학자들, 특히 경제학자와 국제정치학자들에 의하여 독점되어 있기 때문에 균형있는 사회발전이 어렵고 자원의 낭비가 크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과 국제정치학 
먹고 사는 건 어느 나라에서나 국가정책의 우선순위 No 1이지만, 북한과의 생사결단 체제 경쟁을 경제와 안보를 가지고 벌여야 하는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학자와 그 분야 전문가, 그리고 같은 이유로 한반도 전문가(말고는 과학기술과 군사 전문가)들이 최고 우대 받는 나라가 되어왔다.

이게 필요 없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그러나 이 두 분야는 아무리 잘해도 그것만 가지고는 한계에 와 닿게 되어 있다. 먼저 경제를 보자. 한 시점에서 경제발전을 결정하는 변수는 부지기수이며 서로 연계가 되어 있다. 쉽게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경제에 풍선효과가 꼭 일어나는 이유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불거져 나오는 효과 말이다. 물가를 억제하면 소비와 투자가 준다. 반대로 소비와 투자를 늘리면 물가가 오른다. 많은 경제정책의 효과가 ‘시소우 게임(seesaw game, 널뛰기)'이다.

유능한 경제학자의 자문에 따라 추진한 문대통령의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실패한 이유도 그것이다. 하나만 말고 둘은 알지 못한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영향권 아래 발전한 나라라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미국 유학파다. 그 자체에 잘못은 없다. 문제는 성장론이 중심인 케인즈(M. Keynes) 경제학 하나로 빈부격차와 같은  우리의 심각한 경제 문제를 더 이상 풀 수 없다는 사실이다. 경제학에 나오는 분배 정책으로도 안 된다. 더불어 살려는 사람들의 마음, 인간성이 중요하다. 이를 위하여는 교육학자, 사회심리학자, 종교학, 인류학자, 역사학자와 그 외 많은 분야의 전문가의 지식과 참여가 필요하다.
 
퉁일 문제에 대하여도 똑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대북정책을 논하는 미국이나 한국의 국제정치학자와 전문가들은  이 분야의 원조인 모겐소(H. Morgenthau) 교수의 국제관계 이론을 아직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그런 이론으로는 소용이 없는 선택이 없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당연히 우리에게도 선택이 없다. 북한과 공존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길은 인권은 어찌 되든 백두혈통이 영원히 권좌를 누리게 돕는 것이다. 그 많은 국제정치 전문가, 북한 학자, 외교 담당자가 대북정책을 논하지만 현재로서는 그건 일희일비의 재원 낭비일 뿐이다.

통일에 대한 나의 전망은 이러하다. 앞으로 북한에 대한 남한의 체제우위가 GNP 크기 50배로 우리가 쉽게 자랑하는  물질 뿐만 아니라 국민통합과 올바른 정신면에서도 50배 절대적일 때 올 것이다. 그 방안과 길은 어느 특정 분야 학자나 전문가에게 맡겨 될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건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퍼져나간 한민족에게  주어진 책임이다.   

유태인 어머니 
전문성이라며 한 가지 지식만 가지고 정책을 논하는 건 모든 분야에 걸쳐 우리에게 익숙한  습성이다. 교육만해도 그렇다.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며 유태인 어머니(Jewish Mother)를 우상화하고,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며 중고등학교에 윤리 교사를 늘릴 것을 건의하는 건 이해가 가지만 결국 사람을 만드는 것은 어느 하나가 아니고 전체 사회 풍토다. 모든 분야의 지식과 경륜을 총괄해서 사회와 인간을 분석할 수 있는 인간행태학자가 필요하다.
이런 변화의 필요성은 미국과 호주 등 서방 사회에서 인식되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많은 대학에서 새로운 연구 방법론으로 다학문적(Multi-disciplinary approach 또는  우산처럼 넓은 분야를 아우른다는 뜻으로  Overarching) 접근을 표방하는 대학이 있어 커리큘럼을 좁은 필수과목 중심이 아니라 학생이 자신의 공부 목적과 필요에 맞게  디자인할 수 있는 학과가 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삼오(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skim193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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