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마리 정환
그림 백경

다음날도 어제처럼 달린다. 길 따라 끝없이 쳐진 철조망 줄이 이 황무지에 누구의 작업일까 궁금했다. 옆 정보자의 말, 평생 사막에서 텐트치고 먹고 자고 다음날도 철조망을 치는 직업이 있단다. 야생짐승과 차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외롭고 힘든 작업이겠지만 임금이 어마어마하다니 황야의 무법자처럼 도전해보실 분이 계실지. 몇 달씩 길을 따라 오지에서 쇠줄만 치는 작업이며, 인간이라고는 접할 수 없는 사막에서 텐트생활을 하며 눈뜨면 반복되는 고독한 싸움을 해야 하는 방랑자의 삶이다. 그 직업의 고독함을 즐길 줄 모르는 자는 절대 도전할 수 없는 일. 사막의 외로움을 벗 삼고 뱀이나 야생동물, 그리고 개미 등과도 친해야만 버틸 수 있는 작업이다. 
개미 이야기가 나오니 떠오르는 게 있다. 이상한 점은 퀸즐랜드까지 여행할 때는 웅장한 터마이트(흰개미) 집 천지였으나 이곳 브로큰힐에서는 터마이트 집은 한 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아마 지층 형성 상 브로큰힐이 18억 년 전 해저의 마그마 분출로 어마어마한 용암이 흘러나와 이룬 해저 퇴적층이 현재로 굳은 언덕으로 되어 그럴지 모르겠다는 개인적인 상상도 해본다. 
달리고 달려 남 호주 국경과 브로큰힐의 사막 서쪽 끝에 이를 즈음 실버톤에 도착한다. 이곳은 예술가들의 열망과 영화제작자들의 아웃 백을 담기 위한 열정, 그리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닿던 곳으로, 그런 애착이 없었더라면 유령마을이 될 뻔한 곳이었다. 한 때는 광산 도시로 융성했던 도로의 흔적과 대여섯 개의 갤러리, 그리고 펍도 있다. 실버톤은 영화 Razorback, Mission Impossible ll, Mad Max 2 and Priscilla, Queen of the Desert의 배경이 된 진정한 오지이다.
석양 무렵에 문디 문디 룩아웃(Mundi Mundi)에서 오지를 즐기는 이국적인 매력을 즐기실 분은 꼭 한 번 찾으시기를. 어쨌든 이 오지까지 조형물을 설치한 예술가의 노력은 인간의 위대함을 말해주고도 남는다. 돈 안 되는 이곳에 자신의 조형물 설치를 위해 헌신하신 미술가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드린다.
조금 가다 붉은 황톳길 위에 겨우 발을 붙인 조그만 녹슨 양철집에 모두 놀란다. 이런 황무지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인간일지 귀신일지 궁금해 다가가니 ‘존 디논의 갤러리’라는 간판까지 보인다. 사막의 무법자도 아니고 사막이 끝나는 마지막 점에 외로이 서 있는 화랑이라니!

도시에서 생각하듯 멋진 화랑을 상상하면 큰 오산이다. 이곳뿐만 아니라 호주는 곳곳에 정말 작고 초라해 이게 화랑인가 싶을 정도의 초라하지만 진정 그림을 좋아하는 예술가들의 화랑이 많이 있다. 손수 만든 몇 가지 그림과 소품만을 늘어놓고 느린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림이 팔려도 그만 안 팔려도 그만, 욕심 없는 느긋한 그들의 삶이 진정 부럽기조차 하다. 
‘존 디논 갤러리’로 달려 들어가니 인간 존 디논이 야생화를 그리며 서 있다. 화려한 야생화를 그리고 있는 예술가는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 아저씨다. 그는 어쩌다 양철로 만든 집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을까? 며칠씩 지나가는 길손도 못 보는 이곳에서 그리는 그림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도대체 왜 이런 고독한 삶을 선택했을까? 
인간 이상으로 아니 성자처럼 보이는 평범한 아저씨로 보이지만 그는 진정 고독한 사막의 예술가이다. 그의 작품 가격 또한 만만치 않은 게 그림 값에 외로움을 견디는 값까지 추가해야 할 것만 같았다. 사는 사람, 파는 사람도 신경을 쓰지 않는 고독한 공간에 흐르는 고독이 그리 고독해보이지 않는 미묘함은 왜일까. 쓸쓸한 예술가를 위하여 사진 한 컷을! 순순히 응하는 존 디논을 가운데 두고 동양 여자 둘이 포즈를 잡았다. 싫지 않은 듯 반가운 얼굴로 순순히 응하는 사막의 순진한 미술가의 눈이 참으로 맑았다. 
브로큰힐의 숙소로 돌아갈 즈음 불타는 낙조가 천지를 황홀하게 물들였다. 어린 손자가 빨강 김칫국 같아 무서워 싫다던 말이 떠오른다. 오지의 낙조는 공기가 맑아 끓어오르는 황혼이 붉다 못해 지옥 불 같았다. 내 카메라로는 아름답다 못해 처절한 낙조를 담을 자신이 없었다. 오지에 와서 자연의 괴기스러운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점점 검붉게 타는 동내를 뒤로 하고 우리는 달린다. 오지여 안녕!!
돌아오는 길에 잠깐 들른 윌케니아,라는 작은 마을은 애버리진들을 강제로 모아 살게 한 곳이다. 먼지가 푸석거리는 누렇고 벌건 사막 속의 윌케니아는 온통 애버리진만 기거하는 동네였다. 푸른 시드니 쪽에서 터전을 빼앗기고 허접한 오지로 밀려온 그들을 보니 몰락한 자들의 막연한 슬픔이 엄습해왔다. 잠깐 주유소가 나타나니 사람 사는 곳이라 반가워 차를 멈추었다. 이 동네에서 내려 시골 좀 둘러보려는 요량으로. 삽시간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애버리진 아이들은 우리 차를 향해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괴성을 질러댔다. 반갑다는 소리인 듯 얼굴은 천진해보였다. 어쨌거나 그 아이들은 피폐한 오지에서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묘한 존재였다. 우리  중 누군가가 말했다.
“별로 기분이 안 좋아요. 문 열지 말고 빨리 가요.”
문명에서 소외된 원시성이 풍기는 그 마을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서둘러 그곳을 지났다. 그들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을 대신한 미안함의 발로였을까? 아니다, 사실 그들과 가까이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그들의 삶을 엿보고 싶긴 하나 오지 여행 중 그런 기회는 나에게 오지 않았다. 나는 이론적으로만 그들의 처우에 대해 분개하고 흥분하며 그들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비겁하고 옹졸한 내 능력으로 가끔 눈에 뜨이는 그들에게 쉽사리 접근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본 동양 족에게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폴짝거리며 쫓아오는 그들을 뒤로 한 채 우리 차는 비실거리며 도망쳤다. 지금도 가끔 그 때의 일이 부끄러움으로 남아있다. 

최상급 고기는 더보(Dubbo), 최고급 포도주는 머지(Mudgee)에서

시드니로 오는 길에 꼭 들려야 할 곳은 더보와 머지. NSW 주의 최상급 육질이라더니 소문처럼 더보의 고기는 신선하고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지 머물게 된 숙소에서 고기를 앞에 놓고 분석하기 바빴다. 결론은 소, 양들이 무공해의 푸르른 목초지대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채식 주의자에게 한 방 맞을 소리인지도 모르겠지만  더보 주위의 대목장 지대의 광활한 풍요로움은 호주 최대라고 해도 좋을 듯했다. 고기 맛을 다시 언급하면 소들 화내며 떼로 몰려올지도 모르니 이쯤 해두자.
또 하나 이 지역에서 꼭 들려야할 곳은 더보 NSW 주 최대 ‘더보 동물원’이다. 해리왕자와 메건이 하필 왜 이 더운 더보에 갔을까 의아스러웠다. 역시 호주에서 가장 아프리카적인 곳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더보 동물원엔 사파리가 있어 버스를 타고 구경하는 것 외에도 전동카트를 타고 동물원을 돌거나 개인차를 가지고 동물원을 돌만큼 광활하다. 또한 동물과 친하고 싶은 분을 위해 숙소인 방갈로가 동물원 안에 있어 그곳에서 숙식을 하며 새벽에는 동물 밥 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숙소가 값이 엄청 비싸다는 것쯤은 참고하시길, 더보에서 별보기 등 프로그램도 있다. 단 미리 신청해야한다. 코비드 때문에 숫자를 철저히 제한하고 있다. 밤별을 보고 사파리 동물구경을 하라 권하고 싶다. 여기서 석회암동굴이 있는 웰링턴이라는 곳도 강추한다. 예술가라면 그곳에서 <가시나무새>로 유명한 콜린 맥컬로우의 기를 받아보시는 것도 권한다.
더보에서 1시간 반 정도 달려 도착한 머지(Mudgee)에서 시드니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밤을 지내기로 했다. 문명세계와 가까워진다는 또 다른 즐거움과 더불어 귀가하기 전 머지 와인 산지에서의 하룻밤은 상큼한 유혹이었다. 머지 와인과 더보의 쇠고기, 양고기 바비큐로  머지 펜션에서의 정찬은 평생 잊을 수 없을 황홀하고 멋진 추억이 되었다. 고생과 긴장 속에 호주 오지를 돌고 온 문명인(?)에게 고기 한 점 와인 한 방울, 머지 베이커리의 곡식 빵은 신의 물방울이자 목동들의 노력의 축제였다.
오지를 다녀오니 만사가 감사할 따름이라며 여자 둘이 신이 났다. 게다가 돌아갈 집이 있으니 더욱 행복했다. 오지에서 한 방울씩 아껴 씻던 뜨거운 샤워물의 짜릿한 행복감은 내 인생의 퍼즐에서 제일 큰 조각이 될 것이다. 

머지에서 시드니로 들어서며 막연한 그리움과 즐거움을 주는 예술품에 반해 빙그레 미소 짓는다. 사열 받는 프랑스 장난감 병정처럼 늘어선 각양각색의 기쁨이 가득한 우편함들이다. 빨 노 파 초록색으로 단장한 채 누군가를 기다리며 모여선 꼬마병정들의 사랑스러움에 넋을 놓는다. 사람 냄새가 퐁퐁 솟는 우편함이 늘어선 걸 보며 우리는 행복해 한다. 역시 인간이 사는 곳은 아기자기 아름답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접촉을 바라는 마음에 인간사회의 포근함과 따듯함이 절로 솟아난다. 
제주도에 갔을 때 어느 폐교에서 우편함을 설치해놓고 느리게 가는 손 편지를 쓰는 운동을 벌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날로그시대의 종말을 아쉬워하며 그들은 아직도 손 편지를 기다리고 손 편지를 넣으며 과거를 체험하고 있었다. 한국에선 이미 다 사라진 우편함이, 여기 호주에선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며 회상에 잠긴다. 왜 이렇게 모여 있는 걸까? 그렇지, 농장 사이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에 이 우편함 덕분에 집배원 아저씨는 수십 마일씩 달려야하는 수고를 면제받는다. 느림을 맛보고 살았던 시절의 여유로움과 낭만을 시드니 외곽에서 느낀다. 아직 이런 오지의 고립된 삶을 즐기는 자연인들이 많은 호주가 그저 놀랍고 신기하기만 하다.
아름다운 바다도 많은데 하필이면 왜 오지를 가느냐고 사람들은 물었다. 나 자신도 반신반의하면서 떠났던 브로큰힐, 언덕이 깨어져나간 듯 줄지어 서 있는 곳. 죽은 듯 보이는 오지 사막에서 치열하게 생명이 살아 숨 쉼을 체험한 순간은 놀랍고 경이로웠다. 그 사막의 거친 마른 나무, 거친 돌, 누런 풀, 마른 흙 속에서도 삶의 향기가 꼬물거리며 용솟음치고 있었다. 누런 풀 속에 보호색으로 변장하고 치열하게 숨어사는 산양이랑 캥거루의 강인한 생명력이 감동스럽고 존경스러웠다. 마른 흙과 돌덩이도 제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존재하는 지구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래, 사막은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리고 영원히 살아 지구상에 공존할 것이다. 인간이 사막을 황폐시키지 않는 한,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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