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필자는 새해 첫 시론에서 대체로 덕담과 신년 전망을 해왔던 것 같다. 그러나 올해는 그럴 상황이 아니다. 코로나 검사를 받으려고 더운 뙤약볕에서 4시간 이상 기다리는 끝도 없이 긴 줄, 슈퍼마켓 육류 진열대의 텅 빈 모습과 직원이 없어 문을 닫아야 하는 사업장 등을 보면서 연초부터 현실적인 문제의 심각성을 거론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연말연초는 모임과 파티, 이벤트 등이 많아지는 시기다.  선물 구입과 식당, 호텔, 여행지 방문으로 소비지출이 커지는 기간이다. 작년 후반 오랜 록다운으로 타격을 받은 호주 경제 회복에 바로 이런 시기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정부도 이런 소매경기 부흥을 간절히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연말과 올해초 여름 휴가기간은 예년과 많이  달랐고 완연하게 썰렁했다. 주변을 보면 상당수 호주인들과 동포들이 지인들의 감염 상황 소식을 접하며 집안에서 외출을 하지 못했거나 스스로 자제했다. 이유는 코로나에 감염됐거나 밀접접촉자로 격리 또는 검사(PCR 테스트) 결과를 대기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모임에도 이런 이유로 불참한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많은 동포 가정에서도 젊은층의 감염이 급증했다.  

요즘 전국적으로 하루 신규 감염이 10만명을 넘나들 정도이지만 종전처럼 주정부들이 록다운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런 반면 커뮤니티 안에서는 정부의 규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인들이 비공식(unofficial)적인, 스스로 규정한 록다운(self-imposed lockdown) 상황이 재연되고 있는  모양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이른바 '사실상의 봉쇄령(a de-facto lockdown)'을 실천하는 것이다.

일부 모임에서는 2차 백신 접종으로 부족해 신속항원검사(RAT) 결과에서 음성인 경우만 참석해달라고 요청한다. 또 아예 부스터샷 접종 후 만나자는 요구까지  등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장소를 회피하며 스스로 알아서 규제를 하는 양상이 확산되면서 친지 방문, 모임의 취소가 대폭 늘고 있다. 여행은 물론 일부에서는 식당 또는 극장 방문도 꺼린다. 실내 체육관에서 즐기던 운동도 다시 중단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많은 사업체들은 직원들의 감염이나 격리로 심각한 일손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특히 육가공업체들은  직원 부족으로 슈퍼마켓의 육류 진열대는 텅 빈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같은 인력 부족과 공급대란이 최소 2-3주 지속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지만 정부의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보건의료계에서도 수천명이 감염 또는 격리 상태에 있다. 

일부 사업자들은 지금 상황이 작년 후반기 시드니와 멜번의 장기 록다운 기간보다 더 악화됐다라고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고객들의 외출 공포감에 직원 부족, 공급난의 여파가 동시에 겹쳤기 때문이다. 이젠 정부의 코로나 팬데믹 보조금도 없다. 

지금 호주가 경험하며 당황하는 사태는 사실 유럽과 북미에서는 지난 2년의 팬데믹 기간 중 여러 번 반복됐다. 이런 상황을 ‘강 건너 불’인줄 알았다가 호주가 지금 겪고 있는 배경에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점을 지적한다. 

스콧 모리슨 총리는 오미크론 확산이 예상보다 너무 컸다고 말했는데 작년초 코로나 백신 공급 초기 때의 실수와 같은 양상이다. 다른 나라들이 백신 공급의 다변화를 추진했지만  호주는 미련하게도 아스트라제네카 공급에 올인했다가 백신 후유증 공포로 국민들이 기피하면서 곤욕을 치러야 했다.

호주 정부의 코로나 대응은 ‘문 닫아걸기’가 사실상 전부였다. 거의 2년간 국경폐쇄, 주/준주경계 봉쇄가 통했지만 폭발적인 전염력의 오미크론 확산에는 이런 봉쇄전략이 속수무책이 되면서 호주 의료체계마저 흔들리고 있다. 몇 주 후 NSW 근로자의 약 30%가 감염될 수 있다는 경고마저 나왔다. 

오미크론 대응에서도 호주 정부의 대응과 준비 부족은 낙제 수준이다. PCR 검사 폭증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인력과 시설, 자원 확보에 실패했고 많은 물량의 신속항원검사 진단 킷도 서둘러 확보하지 못했다. 작년 12월말까지 거의 무조건 PCR 검사만을 요구했다가 검사 한계를 벗어난 뒤 갑자기 RAT 검사로 대신하라고 촉구했지만 자가진단을 할 검사 킷이 일찌감치 동나 큰 차질을 빚고 있다. 2월초 초중고교 개학이 예정대로 진행될지 의문이다. 퀸즐랜드주는 이미 2주 연기했다. 준비가 돼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의료인력 부족은 만성적인 일이고 격리 전용 시설 확보도 연방-주정부 갈등으로 지연, 축소됐다. 신종 변이 확산 때마다 공립병원의 비응급수술 중단이 반복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신종 변이가 등장할 때마다 호주 정부의 준비 부족과 대응 미숙이 반복됐다. 경제적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남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국민들의 불안감과 피로도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이런 ‘공중보건 재앙(public jealth disaster)의 생활화’가 모리슨 정부가 의미하는 ‘코로나와 함께 사는(with COVID-19)’ 것이었을까? 5월 총선 때 유권자들이 정말 신중한 판단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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