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컬럼을 쓴지 좀 된다. 2년 전 47번째 글에 이런 제목을 붙였었다. “코로나바이러스, 곧 끝납니다”. 틀렸다. 내가 틀렸다. 코로나는 변종에 변종을 거듭하여 굳건하게 살아 있다. 2년 전에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지난 12일 하루 감염자 수 92,264명!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전혀 몰랐다. 그렇게 사람의 내일 일은 예측할 수도 없고, 예측해봤자 대부분 틀린다. 

1. <멀티+메타> 버스

영화 스파이더맨을 봤다. 역대 시리즈 중 가장 재미있다는 평가 때문에 안 볼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 시대를 살핀다. 시대를 앞서가려는 선구자들이 어떤 곳에 열정과 돈을 쓰는지를. 내가 발라낸 주제는 ‘멀티버스(다중 우주)’. 양자역학의 발달과 함께 구체적으로 발전되고 있는 물리학 가설로서, 고대근동과 이집트, 인도의 ‘사후세계 혹은 윤회사상’에서 발전된 이론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가 아니고, 같은 세상이 또 다른 시공간에 존재한다는 생각. 그래서 영화에서는 3명의 스파이더맨이 등장한다. 이전의 두 영화 (2017, 2019년)에 나왔던 스파이더맨들이 동시에 출연하여 힘을 합한다. 이 시대의 문제를 이 시대가 해결할 수 없다면, 다른 세계의 영웅들을 끌어들여서라도 해결해야 한다는 창조적 발상이다.

‘멀티버스’와 함께 등장하는 개념은 ‘메타버스’다. 2009년에 나온 영화 ‘아바타’는 충격적이었다. 장애자가 된 주인공은 잠자듯 누워있는데, <또 다른 그>는 천연고무보다 더 탄력 있는 몸 속에 들어가, 신비한 세상 속을 누비고 다닌다. 그 아바타는 발전을 거듭해서, 이 시대의 최대 캐시카우(Cash Cow 수익창출원)가 되었다. 나의 아바타가 여행, 회의는 물론 설교도 할 수 있고, 다른 아바타와 깊은 관계도 맺는다. 

그 ‘다가오는 미래’를 선점하기 위해, 세계 최고의 SNS 기업이 회사 이름을 아예 ‘메타’로 바꿔 버렸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인터넷게임의 지존 액티비전을 거금 미화 687억 달러에 인수해 버렸다. 영화 ‘아바타’를 제작/감독했던 제임스 카메론 역시 4개의 속편을 더 만들기로 해서, 2편이 이번에 나온다.

2. 센트럴코스트

몇일 전 NSW의 센트럴코스트를 다녀왔다. 내 사는 곳에서 1시간 거리다. 작년에는 퀸스랜드의 선샤인코스트에 다녀왔는데, 그 쪽에서는 자기들 사는 곳이 센트럴코스트라고 했다. 잘못하면 서로 딴 곳 이야기를 하게 된다. 호주적 멀티버스다. 하여튼 긴 록다운에서 해방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야외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는 여전히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사람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밝은 태양, 시원한 바람, 탁 트인 바다는 코비드 세상을 오히려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사는 곳이 중요하다.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 

주민인지 방문자인지 모를 그들을 뒤로하고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한적한 해변에 도착했다. 본다이비치 반쯤 되는 크기인데, 방문객은 10명도 채 안 된다. 그늘을 찾아 잠시 누웠다. 파도 소리가 너무 좋다. 여기까지 오느라고 수고했던 몸의 피로를 완전히 풀어 냈다. 그러나 그곳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는 노릇. 주차한 현실세계로 돌아가야 했다. 구글지도를 보니 55분. 지름길을 찾았다. 40여분짜리가 떴다. 그 길로 결정했다. 30분 동안 계속되는 오르막길이었다. 내내 후회했다. 온 길로 돌아갈 걸. 그러면서 메타버스를 생각했다. 이렇게 땀나고 고달픈 일은, 아바타 시키면 좋을 텐데. 

3. 가면무도회

그러나 그런 세상은 허망하다. 내가 하기 싫다고 다른 사람 몸을 빌리고, 다른 세상 속에 숨어 버리는 일은 현실도피다. 내 인생 짐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공간에서, 내가 책임져야한다. 멀티+메타 세상은 인간의 창조력이 만들어낸 가상세계일 뿐이다. 물론 나는 인간의 과학적 창조성과 실현성을 끝까지 존중한다. 지동설을 억지로 억누르던 천동설의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페니실린과 코비드백신을 발견한 과학자들의 노고에 진정 감사한다. 인류의 기아문제와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헌신적인 활동가들을 존중한다. 그러니 <멀티+메타>버스를 최대한 활용하고, 즐기고, 돈도 벌라. 

그러나 사람은 사람일 뿐이다. 사람은 내일 일을 모른다. 인간이 상상하는 모든 것들이, 인간이 예측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 생각으로 만들어 나가는 모든 일들의 결국은 비인간화+비윤리적이다. 600만명을 학살하고도, 법정에 나와 ‘내가 뭘 잘못했나요? 난 그냥 조직이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에요!”라고 항변하는 조직의 근원을 찾아 올라가 보면, 결국 광기에 사로잡혀 자살한 히틀러라는 인간이 나온다. 

아바타 세상은 가면무도회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하고 싶은 짓을 마구 해 대는 가면무도회. 그곳이 좋다고 열정을 다해 즐기다 보면, 코가 길쭉하게 나온 ‘역병방지 가면’을 쓴 사람들 만이 돌아다니는 ‘팬데믹 무도회’가 된다.

고대 이집트 왕족들은 사후세계를 믿었다. 그래서 왕위에 오르자마자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축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재위기간은 죽음을 위한 준비 기간. 때가 오면 그들의 시신은 방부제 처리를 해서 피라미드 가장 깊숙한 밀실에 보관되었다. 미이라 주위에는 총천연색 벽화가 그려졌고, 내세 여행을 위한 부장품들이 함께 안치되었다. 사후세계로 건너가는 배, 토기로 만든 시종들, 음식 그릇, 빵 등. 과연 그들이 믿던 사후세계에 도착했을까? 나는 모른다. 단지 내가 지금 볼 수 있는 것은 박물관에 안치되어 있는 3천년 넘은 미이라들이다. 그 안에는 수분이 완전히 빠져버려 쪼그라든 시체 밖에 없다. 오히려 썩어져 없어졌다면 좋았을 터. 신비한 세계를 향해 내 상상력이 가동되는 것은 오히려 ‘빈 무덤’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내 눈 앞에 있는 미이라들은, <인간 노력의 허망함 + 헛된 신앙의 잔재들>을 증언할 뿐이다.

4. <현실> 버스

센트럴코스트의 워킹 트랙을 거닐며 생각했다. 지상천국 같은 이곳에서, 아침 저녁으로 바다건너 팜비치 등대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은 행복할까? 함께 걷던 사람에게 그 질문을 했다. ‘아니요! 한국식품점이 너무 멀어요. 직장도 멀고요!’ 각 사람은 각자 살아야 할 곳이 있다. 내가 살아야 할 곳은 지금 이곳이다. 내가 살아야 할 곳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오늘의 나를 만든다. 멀티버스와 메타버스 모두는 인터넷이 만든 가상 세계다. 우리는 그 날이 오기까지, 그날이 오지 않는 것 같이, 이 현실세계에 충실해야 한다. ‘그 날’은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다. 그 동안 가상세계에 너무 많은 생각과 돈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 세상 사는 것이 힘들다고, 가상의 아바타를 돌리다 보면 결국 우주 미아가 된다. 진실하게 오늘에 충실하라! 당신이 타야 할 <버스>가 있다. 당신의 가족과 동료들이 함께 타고 가야할 <현실 버스>. 그 <버스>에 다시 올라타라. 그 안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다 보면 ‘참기름 향내’ 같은 ‘영원의 향기’가 스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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