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고국 정치 이야기다. 내 1차 관심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지적과 비판인데 내가 사는 여기 한인사회에 대하여는 과거 많이 썼었다. 달라진 건 없고 친구만 잃었다. 호주사회에 대하여 호주 미디어에 쓰고 싶은 게 많지만 시간 낭비로 끝날 수 있어 못한다. 아래 쓰는 내용은 고국에서 잘 듣지 못하는 이야기다. 

고국의 정치권 일각에서 흘러나온 소식에 따르면 여권이 이번 대선에서 야당이 승리할 경우를 대비해서 이원제 내각제 정부를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을 몰래 추진하고 있단다. 막강한 대통령의 권력을 대폭 축소하고 현 집권 세력의 보호막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장면 국무총리  
장면 국무총리  

해외에 사는 아웃사이더로서 그 진위에 대하여 할 말이  없다. 그러나 평소 내각책임제 옹호론자로서 정계에서 심심하면 약방의 감초처럼 거론되는 헌법 개정을 이왕 하겠다면 역사가 길고 이미 실효가 증명된 영국식 내각책임제를 도입하기 위하여 했으면 좋겠다.

만약 우리 정치제도가 그거였더라면 이명박과 박근혜 대통령이 감방에 갈 리도 없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의 친북정책도 없었을지 모른다.

나는 반세기도 훨씬 전에 대학 정치학과를 다니면서 웨스트민스터시스템(런던 탬스강변에 우뚝 선 웅장한 영국의 국회의사당(The Palace of Westminster)에서 나온 말)으로도 불리는 이 제도를 배워 안다.

영국의 웨스터민스터 의사당 
영국의 웨스터민스터 의사당 

그리고 우연이지만 영국을 모국으로 부르고 그 나라 정치와 사회제도를 그대로 따라 하는 호주에서 반평생을 살면서 막내가 가 있는 그 나라도 여러 번 가 지내 봤다. 알다시피 캐나다와 뉴질랜드 역시 그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임기 없는 통치자

우리와는 다르게 사회가 매우 안정적이다. 총선거가 아주 조용히 치러진다. 우리와 다른 변수로서 지정학적 여건과 좋은 전통을 가꾸고 따르는 앵글로 색슨류의 국민성을  고려해야겠지만 제도 자체에 장점이 많다고 믿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도 그 정치다.

앞서 네 명의 전직 대통령과 관련, 말해본 가정법은 내각책임제 아래 최고통치자인 총리(영국과 몇 개 다른 유럽 국가의 경우는 국가 원수로서 왕이 있지만 그건 상징적 자리다)에게는 임기(任期)라는 게 없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현직 총리로서 인기가 떨어지면  코커스(Caucus, 나라마다 명칭이 다르나)라고도 불리는 소속 당내 수뇌부 안 지도자 경쟁(Leadership challenge)이라는 과정을 거쳐 수시로 자리를 내놓아야 하기도 하고, 큰 정책 수행이 국민의 반대에 봉착하여 어려워질 때는 내각을 해산하고 재신임을 묻는 총선거를 거쳐 그 자리를 유지하거나 물러나야 하니 통치자가 탄핵을 받거나 법정에 설 때까지 기다릴 일이 안 생긴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도 그렇다. 비판론자들에 따르면 그간 많은 실책을 하였다는건데 내각책임제에서라면 그는 벌써 물러 앉아 5년의 임기를 채우느라 나라에 오래 누를 끼치지  않았을 것 아닌가. 북한과의 평화체제 구축이라며 외교적으로 낭비한 막대한 돈과 시간은 어떤가.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한탄한 노무현 대통령도 내각제에서라면 그런 비참한 말로로 가기 전 그만 두었을 것 아닌가 싶다.

지금의 대선 정국을 보면 누가 청와대에 입성하든 정치적 불안정은 계속될 것 같다. 내각제의 교과서적 단점은 잦은 정권교체로정치와 사회가 불안하다는 건데 중요한 건  국민의 수준일 것 같다.  

11개월 간의 내각제 실험

유진오 전 고려대학 총장이 기초한 대한민국 초대 헌법안은 바로 내각책임제로 되어있었다. 이걸 북한의 공산 정권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막강한 정부가  필요하다며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비토해버린 것이다.

3대째 이 자리를 지킨 이 대통령은 독재와 부정 선거의 원성 속에서 일어난 1960년 4.19 학생 운동으로 하야(下野)해야 했고, 그 해 6월 15일부터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다음해 5월 16일까지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총리 체제의 웨스트민스터 시스템이 한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실시되었었다.

그러나 두 정치인 간의 알력과 남북협상을 부르짖으며 거리에 쏟아져 나온  학생들로 사회가 불안했고, 이를 빌미로 일어난 이른바 5.16 군사혁명으로 이 정치 실험은 11개월이란 짧은 기간으로 끝나고 말았다. 아쉽다. 너무 성급한 국민성, 민족성 말이다. 조금 참고 더 오래 해봤으면 한국의 정치와 사회는 지금보다 더 안정되지 않았을까?

내가 기억하는 그때 정치인, 학자, 지식인들은 지금과는 달리 훨씬 순수하고 양심적인 인물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때야말로 강력한 미국의 핵우산 아래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방위 태세에 있던 남한을 북한이 감히 밀고 내려왔겠는가.

김삼오(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skim193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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