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문명의 잔재
마야 문명의 잔재

공교롭게도 제1성전이라 불리는 솔로몬 성전과 제2성전인 헤롯 성전이 무너진 날이 유대력 니산월(태양력3-4월) 9일로 동일하다. 유대인들의 종교, 문화,민족적 상징성을 모두 담고 있는 성전이 무너진 것은, 포로로 잡혀가거나 나라없이 나그네가 되어 세계를 떠 다니게 된 수치스런 고난의 역사를 의미한다. 이는 또한 국민과 주권과 영토의 상실로 인한 국가의 소멸을 말한다. 어느 국가든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 역사의 이치이지만, 2000년동안 없어졌던 나라가 다시 세워지고 그들의 문화와 언어가 존속된 것은 세계사에 드문 일로 유대 민족의 지속성을 손 꼽는다. 이 민족은 오랜세월, 나라없는 설움과 핍박과 대량살상 속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 남게 되었을까라는 궁금증을 갖게 한다. 

미스테리의 마야문명
미스테리의 마야문명

1. 사라진 문명들

인류 학자들은 어느 문명이든 인식적 한계점에 도달하고 거대한 문화를 창출하지만 현재를 미래에 연결하지 못할 때 소멸돼 왔다고 지적한다. 남미의 마야 문명은 웅장하고 앞선 문명의 흔적을 남기고 있지만, 현대에서 종족을 감추고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BCE 2600년부터 CE900여년까지 약3500여년 동안 존속했던 남미의 거대 문명이다. 그들은 그릇과 자기, 직물, 건축과 농업, 심지어 복잡미묘한 원형의 달력체계와 천문학, 기상에 대한 발전된  문명을 창출하였다. 자신들만의 문자와 수학적인 시스템도 갖추었다.  더 나아가 그들은 농경을 유지할 저수지와 댐과 운하와 제방도 건설해 두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의 위대한 문명은 하루 아침에 역사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많은 설들이 있지만 역사 학자들은 8-9세기 사이에 마야인들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고 입을 모은다. 오랫동안의 가뭄과 인구과잉이나 서로를 죽이거나 전염병 또는 기근 등의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을 하지만 지금까지 분명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채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35세기동안 오랫동안 존속된 문화였지만 결국 실패하고 소멸된 것이다. 

폼페이의 화려한 문화 흔적
폼페이의 화려한 문화 흔적

BCE 63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없어진 폼페이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경관과 로마 귀족들의 별장으로 화려하고 고급스러우면서도 타락한 성적 지향적 상업과 문화를 담고 있던 곳이지만 소멸되었다. 강하고 화려했던 로마 제국의 멸망처럼, 13세기의 캄보디아의 크메르 문명도 사회 속의 내재한 여러 난제를 풀지 못하고 인지적 과부하와 사회 시스템의 붕괴로 무너져 버렸다. 현실의 난제는 늘상 존재하고, 흔히 일상이라 간주된 문제는 다음 세대로 해결 방안을 미루고, 이양된 문제로 급급하는 것이 반복된 역사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크메르 문명의 잔재
크메르 문명의 잔재

2. 미래를 위한 선택

크메르와 마야 문명역시 신을 숭배하는 제사를 지냈다. 고고학자들은 끔찍한 인간 희생 제물에 대한 방대한 증거를 발견했는데, 이들은 인간의 삶의 문제에 대한 합리적 결과를 도출해 내지 못하고 성난 신을 근근히 달래는 정도에 급급해 오고 있었다. 유대인들에게도 2차 성전파괴가 있기전 이미 폼페이의 파괴 등과 같은 재해와 바르코바의 세력이 로마 제국의 권력에 저항하는 누적된 시대적 문제가 있었다. 그저 일상의 일들로 누군가 맡아하리라는 막연한 사고를 하는 그룹이 있었지만, 반면에, 현재를 지탱하는 미봉책이 아니라, 민족 생존의 급박한 위기가 다가 올 때, 희생 제사를 대신할 인식적 변화를 추구하는 집단이 있었다. 바리새인의 후손인 라반 요나안 자카이는 유대인들이 제사 없이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에 고심하였다. 그는 성전을 잃고 멸망하고 나라없이 살길을 찾아 나그네처럼 흩어지는 유대인들에게 여섯가지의 속죄의 방안을 제시하였다. 

유대인의 자선
유대인의 자선

먼저, 그는  호세아 선지자가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구절에서 인애 곧, ‘친절’은 속죄의 대안이 된다고 보았다. 둘째, 말라기1:11절에서 모든 이방에서 드리는 모든 제물이 나의 이름으로 찬양될 것이라는 구절에서 학자들의 토라 연구(미나홋100a)도 역시 제물로 속죄를 얻게 할 것(타닛 27b)이라고 보았다. 세째는, 호세아14:2 절의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라는 구절로 기도가 순순한 봉헌제물이라고 보았다(Y. Berakhot 8d). 네번째는, 시편59:19에서 “하나님의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는 구절에서 회개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을 짓고 토라에 안수해 제단에 드리는 제물(레위기 Rabba7:2)로 간주했다. 다섯번째는 금식이다. 사람이 금식하는 것은 지방을 태우고 피를 쏟는 것과 같으므로 (버락홋17a) 속죄제물로 여겼다. 여섯번째는 환대를 꼽았다. 성전이 있는 한, 제단은 이스라엘을 속죄하고, 이제 타인을 위해 베푸는 상은 스스로를 속죄(버락홋55a)한다고 가르쳤다. 

놀라운 것은 과거의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요나안 자카이 같은 인물은 과감하게 최악의 미래에 대비한 사고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대안에 대해 “ 왜 처음부터 이런 제사가 제시되지 않았는가” 하는 것과 한편, 제사가 곧 이스라엘의 종교적 중심인데, 어떻게 유대교가 그것없이 존속할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이다. 거기에 대한 탈무드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유대인의 토라 공부
유대인의 토라 공부

3. 인식의 변환

선지자와 현자들과 중세의 유대인 지성들은 “제사는 마음과 심령의 상징적 행동의 표출이고 이는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 이라고 간주했다. 그래서 기도와 성경 묵상과 기부와 친절과 남을 대접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과 속죄의 의미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라고 인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범 유대인들의 인식의 변화는 과거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성전대신 회당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성경 연구와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켜갈 수 있는 학교가 세워질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하게 되었다. 탈무드는, 이것이 거대한 문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비극에 대해, 미래의 문제를 오늘 해결한 위대한 업적이라고 칭송한다. 이는 급급하게 현재의 피난처를 찾기보다 드러나지 않고, 내실있는 인식의 변화로 미래를 건축한 현자들의 지혜가, 제사를 대신하는 속죄 방안을 창출했고, 이는 오랜 핍박과 고난의 세월동안 유대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끝내 국가와 민족과 언어를 회복하는 역사를 이루어 낸 것이라 읽혀진다. 

유대인의 기도
유대인의 기도

여전히 세상은 전쟁과 전염병과 홍수와 같은 재난으로 뒤 덮여 있지만,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 하는 우리의 조국도 현실적인 난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더욱 멋진 미래를 창출해 가는 현자들의 지혜가 왕성한 새로운 도약이 되면 좋겠다. 샬롬!

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

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 

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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