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쉬 프라이든버그 연방 재무는 위기 상황에서 국가 경제의 진행 방향을 설정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정치인이다. 2020년 3월 전대미문의 코로나 팬데믹 충격이 닥쳤을 때, 서방 세계 중 가장 과감하고 관대한 지원책인 ‘잡키퍼(일자리보조금)’를 도입했다. 

통상 ‘작은 행정부(small Government)'를 지향해온 보수 성향의 자유당이 진보 성향 정당도 놀랄 정도로 큰 규모로 또 장기간 지원 정책을 펼쳤다. 호주 경제는 팬데믹 이전  2019년 수준으로 복귀 중이다.

2022-23년 예산안 편성과 관련해, 스콧 모리슨 정부는 생계비 경감책을 최우선으로 앞세웠다. 그 배경엔 단기적으로 총선 목적이 있다. 자유-국민 연립 정부의 재집권을 위한 ‘땜질 처방’이란 비난을 받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생활비 앙등으로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물가인상률을 반영한 실질 임금(real wages)이 후퇴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예산안에서 2021-22년 급여 상승률을 2.75%로 인플레이션은 4.25%로 예측했다. 실질 임금이 1.5% 하락한 셈이다. 

탄소 감축(기후변화) 정책, 전기차 장려책, 노동생산성 증대, 팬데믹을 통해 대표적인 취약 산업임이 드러난 노인요양업 근로자들의 급여와 노동 조건 개선책 등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2022-23 예산 편성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반면 국방과 교통 인프라스트럭쳐 투자 예산은 대폭 늘었다. 국방 산업 증대는 호주와 중국의 관계 악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도 물론 있겠지만 모리슨 정부의 과도한 ‘안보프레임 정치화’ 시도도 한 몫 하고 있다. 모리슨 총리와 자유당 강경 보수파의 수장인 피터 더튼 국장장관이 이를 주도하면서 총선과 연계하는 작전을 펼치고 있다.  

호주는 2040년까지 군병력을 1만8500명 증원(380억 달러)해 8만명으로 국방 인력을 늘릴 계획이다. GDP의 2% 이상으로 국방 예산을 늘릴 계획인데 향후 10년동안 국방예산이 무려 5750억 달러에 달한다. 막대한 병력 증원 등 국방 예산 증액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의회 논의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교통 인프라 프로젝트는 물론 중요하지만 선정 과정이 항상 문제로 지적 받는다. 정치적 편향성이 강력하게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모리슨 정부의 재집권을 위해 연립 여당 후보가 반드시 당선되어야 하는 백중 지역구에 집중됐다는 비난이 나온다. 

예산안에서 지원을 받는 144개 전국 프로젝트 중 21개만이 국가적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관장하는 ‘인프라스트럭쳐  오스트레일리아(Infrastructure Australia)'의 우선 사업 목록에 포함됐다. 120여개는 중요성 외 다분히 정치적 입김이 반영된 프로젝트들이란 의미다.    

유류세 6개월 절반 인하 결정도 경제적인 측면(생활비 부담 완화) 외 총선 목적도 있다. 30억 달러의 예산이 소요되는 이 정책의 혜택은 모든 운전자, 즉 유권자들이 대상이다. 무차별적이란 점에서 프라이든버그 재무가 강조해온 ‘목표로 설정된 지출(targeted spending)’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유가 폭등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초래된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향후 사태 전개에 따라 시장(가격 등락 주기)의 변화가 예상된다. 31일(목)부터 약 10센트 정도 휘발류 값이 내렸다.

KPMG는 8만 달러 미만 소득자에게 탁아보조비를 지출하면 약 54억 달러 비용이 들지만 74억 달러의 경제 부흥과 노동생산성 증대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예산안에는 여성의 취업 장려를 위한 탁아보조, 육아 휴가에 대한 퇴직연금 적용도 없었다. 전기차로 전환을 촉진하는 장려책도 전혀 없었다. 

정치적 핫이슈를 해소하는 단기적 대응인 ‘반창고 처방(band aids)’ 보다 장기적 경제 부흥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코로나 팬데믹이란 큰 위기를 벗어나며 생산성 증대와 경제 개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추진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상실한 점이 2022-23년 예산안의 최대 단점이다. 비즈니스 지출이 내년 9% 상승에서 2024년 1%로 둔화되는 배경도 바로 이같은 장기적 장려책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호주는 많은 분야에서 ‘장기 대책’이란 개념이 사실상 없는  나라다. 3년 주기의 연방 정부 집권 전략이 주요 결정 사항의 기준이 돼 왔다. 국가적 적폐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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