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와 귀환의 약속
토라와 귀환의 약속

유대교에서 기독교을 바라 보는 시각에 대해서 우리는 별로 들어 볼 기회가 없었다. 그들은 기독교의 유대교에 대한 일반적인 판단은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거부’이다라고 말한다. 신은 예수를 메시아로 이 땅에 보냈는데, 그를 믿지 않고 오히려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 신이 선택한 민족이지만 벌을 내려 그들을 세상으로 흩어 버렸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옛 이스라엘’로 파기되고 새 이스라엘은 ‘기독교’로 대체되고 예루살렘은, 영적 예루살렘인 ‘교회’로 교체되었다는 일명 ‘대체 신학’이 판단의 근간에 있다고 보았다.

변환의 도래

기독교에서 부르는 ‘구약 성경’은 영어로 ‘Old Testament’로 ‘Old’는 말 그대로, 예전에 한 때 약속이 있었지만 더 이상은 아니고 신은 더 이상 유대인들의 구약적 방식이 아니라 신약의 방식으로 섬김을 받기를 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옛 선택된 백성’은 아브라함의 물리적 후손을 지칭하고, 그의 새롭게 선택된 백성은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인 ‘크리스천’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스라엘의 멸망
이스라엘의 멸망

역사학자이며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프랑스계 유대인 Jules Isaac은 이러한 신학적 원칙이 유대인들이 수세기 동안 팝박당하고 부랑아 취급을 받게 한 원인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그의 글은 반향을 일으켰고 나중에 교황 요한6세가 궁극적으로 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에서 ‘Nostra Aetate(기독교와 유대교의 화해 선언)’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것은 가톨릭교회와 유대인의 관계의 커다란 변환을 가져왔다. Eugene Korn과 같은 랍비는  "이 선언은 모든 정통 랍비들이 '기독교와 유대교가 신학적 분쟁으로 일관하기 보다, 영적• 신앙적인 공통점들을 확인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언서는 마이모니데스, Jacob 엠덴, 삼손 R 허쉬와 같은 저명한 유대교 학자들이  "기독교를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기독교에 남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인 기록”들을 상기 시키며, "신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학적 차이를 가진 동반자들로 구별한 것이지, 적들로 간주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적시하고 있다.

유대인의 시온주의와 독립 선언
유대인의 시온주의와 독립 선언

토라의 선언

하지만 탈무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신뢰가 없었던 것이지, 하나님이 그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오해였던 것을 많은 구절 중 다음 구절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레위기 26:44-45에 “ 비록 그들이 죄는 지었지만 그들이 원수의 땅에 있을 때 내가 그들을 아주 저버리거나 멸망시키지는 않을 것이며 그들과 맺은 내 계약도 어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고 여러 민족들이 지겨보는 가운데 이집트에서 인도해 낸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겠다. 나는 여호와이다.”

탈무드는 비록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을 호되게 다루고 있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른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잊지는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맺은 언약을 결코 져버리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비록 약속을 깨뜨릴 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언약을 파기하지 않는다고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는 말라기3장6절을 상기시킨다. 

Nostra Aetate- 위키피디
Nostra Aetate- 위키피디

지난 번 글에 잠시 다루었던 것 처럼 무신론자인 스피노자는 바벨론에 포로가 된 유대인들에게 “더 이상 주인이 종을 다른 왕에게 팔아 버렸으므로 과거의 왕은 아무런 권리를 주장 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일부의 유대인들의 613개의 율법이 더 이상 소용없다는 항변에 동조하고 신앙을 떠나게 하는 근사한 글귀였지만, 토라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는 것임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유대인들에게 예례미아를 통해 선포하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이런 자연 질서가 지속되는 한 이스라엘도 언제까지나 나라로서 존속할 것이다. 하늘이 측량되고 땅의 기초가 탐지된다면 몰라도 그런 일이 있기 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내가 그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에례미아 31:36-37)”

하나님의 진심

여러 선지자들의 예언은 결국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고 너희를 이 땅으로 돌아오게하고 결코 언약을 파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신의 진심을 오해한 인간은 고된 포로 생활과 핍박으로 신앙을 떠났지만, 탈무드는 하나님의 유대인들에 대한 거부라는 오해에 대해 계속 번복하는 진심을 여러 곳에 빼곡히 담아 두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가톨릭과 유대교의 화해-노스트라 아에타테
가톨릭과 유대교의 화해-노스트라 아에타테

첫번째 기록은 노아의 홍수이후이다. 신은 `비록 사람의 생각이 어릴 때부터 악하긴 하지만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거나 이번처럼 생물을 전멸시키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비록 혼을 냈지만 결코 전멸하지 않을 그의 진심을 나타내고 있다.  

두번째는, 하나님은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과, 또 에서가 아닌 야곱과 언약을 맺었다. 하지만 하갈과 이스마엘의 절규를 들어 주었고, 에서의 후손인 에돔을 멸시치 말라는 당부를 하였다. 야곱이 죽으면서까지 저주했던 레위가 나중에 모세와 아론 미리암이라는 걸출한 레위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탄생케하고 온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가 되게 하였다.

프란시스 교황과 유대교, 이슬람 지도자들과의 화해
프란시스 교황과 유대교, 이슬람 지도자들과의 화해

세번째는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고 세상으로 흩어지고 핍박을 받고 백성은 하나님을 떠나고, 신실하지 못했을 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았고, 언약을 파기하지 않고 여전히 신실하셨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탈무드는 백성이 하나님을 거부한다고, 신이 그의 백성을 거부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유일 신앙 안에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신관인 것을 일깨운다. 피묻은 굴곡의 역사 가운데도 결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았고, 미진하고 깨질 수 없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인 것을 리마인드한다. 앞서 언급한 교황 요한 6세를 통한 ‘Nostra Aetate – 기독교와 유대교의 화해 선언” 은 그 후 요한 바오로2세와  후계자인 베네딕트16세와 현재의 교황인 프란시스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고 현 시대의 많은 랍비들도 그 정신에 공감하고 있다. 교황 프란시스는 이탈리안 신문인 ‘ La Republica’에서 ‘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은 결코 파기된 적이 없다. 오히려 수없는 핍박 속에서도 유대인들은 더욱 하나님을 신뢰해 왔음을 교회로서 인간으로서 그 공과를 간과할 수 없다’고 적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언약이 파기 된 적이 없는 특별한 성경적 입지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탈무드는 힘들고 괴로울 때 인간이 하나님을 버렸던 것이지, 하나님의 진심은 택한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고, 약속을 파기하지 않는 신실한 사랑 안에 감추어져 있음을 일깨우고 있다.  약속을 파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진심이 모든 인류에게도 소중한 이유이다. 샬롬!    

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

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 

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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