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엔 한 청년이 그의 어머님과 함께 와서 큰절을 넙죽했다. 가끔씩 나타나는 그는 맘에 드는 좋은 배필이 나타나길 기원하는 어머님의 성화에 못 이겨 한 달에 한 번 정도 떡 공양을 부처님께 올리곤 한다. 그렇게 하길 5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지금까지도 지속 중이다. 그에게 언제쯤 연꽃처럼 화사한 맘에 드는 색시가 나타날 것인가?

 

1,200여 년 전 땅속에 묻혀 있다가 비로소 인연이 되어 꽃을 피운 연꽃 생각이 난다. 바로 아라연꽃이다. 2009년 경남 함안 성산리 성산산성 고분 발굴 현장에서 700여 년 전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10개의 연씨가 발견되었다. 이 중 2개를 함안 농업기술 센터에서 심어 꽃 피우는 데 성공해 전국적인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후 18차 발굴 현장에서 또 다른 4개의 연씨를 발견해 한국 지질학회에 의뢰하여 그 연대를 측정했는데 이것은 1,200여 년 전 신라 때 씨앗으로 확인되었다. 그중 3개를 또다시 심어보았는데 모두가 꽃을 피웠다. 그 꽃들은 꽃잎이 좀 가녀리고 길면서 연한 분홍색을 띠고 있다. 그 연꽃 이름을 아라연꽃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것은 신라 때 아라가 지역 이름이었던 것에서 따온 것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함안엔 그 연꽃을 보러오는 인파들로 북적거렸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알 수가 없다. 그 무리 중에 있으나 오직 관리인만 안다. 거름이나 물 조절 등 특별관리가 되고 있는 귀한 꽃님이다. 1,200여 년 동안 깊은 땅속에서 곤하게 잠들어 있었던 연씨가 비로소 인연이 되어 화사한 연꽃을 피우게 된, 그 뜻깊은 꽃씨의 사연, 그렇듯 자연스러운 기다림의 인연과 가꿈의 인연 중 우린 어떤 길을 택하는 것이 더 좋을까? 

우리 사찰에 한 사업가 청년이 있다. 10여 년 전, 청년회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결혼 적령기에 이르자 한 가지 발원을 하게 된다. 좋은 인연을 만나기 위한 마음 속 자기 다짐이었다. 3년 동안 매주 일요일마다 그릇 씻는 봉사를 혼자서 담당하겠다는 당찬 봉사 정신이었다. 그렇게 2년 정도 지난 뒤에 좋은 인연을 만날 수가 있었다. 지금은 아들 하나를 둔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하는 사업도 나날이 번창해 가고 있다. 바로 그것이다. 자연은 때를 기다려서 인연을 만나지만 사람은 인연을 가꾸어서 좋은 배필을 만나게 된다. 

경전에 관심일법 총섭제행((觀心一法 總攝諸行)이란 용어가 나온다. 한 생각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핵심 세력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종자식(種子識)이라고 한다. 모진 생명력을 가진 1,200여 년 전의 연씨가 연분홍 꽃을 아름답게 피워내어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드러나 보이는 것은 꽃 모습이지만 그 이면엔 썩지 않는 꽃씨의 강인한 생명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생각, 하나의 종자가 어떤 색깔의 꽃을 피우게 되는지는 오직 그 꽃씨의 성향에서 비롯된다.

그처럼 일념은 평생을 내가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를 결정짓게 되는 최대의 요인(要因)이다. 다음 달엔 부처님 오신 날 봉축 행사가 8일에 봉행된다. 그날엔 연등을 밝히고 기도를 드리면서 우리 모두가 연꽃처럼 아름답고 멋지게 살기를 희망하며 기도한다. 독한 진흙탕 속에서도 향기롭고 멋진 모습을 보이는 연꽃처럼 우리들도 이 험하고 고된 사바세계에서 좀 더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가길 희망하고 다짐하는 날이다. 

연꽃의 원산지는 인도라고 한다. 홍련, 백련, 청련, 3종류가 있는데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라 그 이름을 딴 사암이 많다. 의상대사의 설화가 어려있는 낙산사 홍련암, 천하제일의 수도처 중 하나인 강진 백련사, 한국의 소림사로 여겨지는 범어사 청련암 등등 연꽃 이름을 빌린 수많은 사암이 있다. 그렇듯 좋은 뜻을 지닌 사찰은 수없이 많건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피살되고 있는 길거리의 상황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은 무겁고 우울하다. 한 생각의 그릇된 종자가 잘못 발아되어 벌이고 있는 중생들의 탐욕의 현장이다. 그곳에도 연꽃인연이 도래하길 간절히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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