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의 시작, 창세기에는 믿음의 조상들에게 이스라엘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후손을 갖게 될 것이라는 축복이 여러번 등장한다. 출애굽기 초반에도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고 말하고, 솔로몬도 선택된 백성은 위대하고 셀수 없는 숫자가 될 것이라고 노래했다. 선지자 호세아도 동일하게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의 모래와 같을 것이라고 말한 것을 여러 곳에 기록하고 있다. 

십자군의 예루살렘 점령
십자군의 예루살렘 점령

1. 역설의 정체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신명기 7: 7절에 “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라고 새로운 땅으로 진입하는 국가적 아젠다를 앞에 둔 민족에게 ‘역설의 정체성’을 선포하고 있다. 이것은 이들이 익숙하게 들어오던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이미지와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다. 가나안 입성을 앞둔, 혈기 왕성하고 사기 충천한  새로운 젊은 세대에게 던지는 ‘가장 작은 민족’이라는 말은 적잖이 의아함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이에대해, 탈무드는 여러 의견들을 개진하고 있다. 

탈굼 요나단은 이 말은 숫자를 말하기 보다 ‘자기 이미지’를 말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작은 민족’이 아니라  ‘가장 낮고 겸손한 민족’ 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랍비 라쉬도 아브라함이 ‘나는 흙이고 먼지 일 뿐(창18:27)’이라고 했고, 모세와 아론도 ‘우리가 과연 누구인가?’하고 자신들을 낮고 겸손한 존재들로 표현하고 있다고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다. 

12세기 중반 프랑스의 랍비 라쉬밤과 히프쿠니는 모세가 가나안에서 싸울 일곱 족속과 비교하기 위해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이 압도적으로 수적 열세에 있으면서도 그들을 파하고 승리를 쟁취하게 할 것이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로마 헬레니즘의 정복의 역사
로마 헬레니즘의 정복의 역사

스페인의 13세기의 랍비 라비누 바야는 마이모니데스가 말하기를, 그 때 이스라엘 백성은 잠언에 “(잠 14:28)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말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큰 민족이 되게할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스라엘은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보물과 같은 존재로 선택하신 것이 더 큰 축복인 것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 했다. 

라비누는 작기도 하지만 창세기에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게 할 것이라는 약속은 가장 작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가장 큰것과 같을 것이라는 가정법적인 의미로 그들을 선택했다는 것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스포르노는 하나님은 스스로의 영광을 위해 이스라엘을 택한 것이 아니라, 그의 선택이 큰 것으로 돌아갈 그의 영광 보다도 오직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기꺼이 들으려는 것을 기특히 여기시고 그의 자녀들을 대대로 사랑하신 것이라는 해석이다. 

유럽의 게토
유럽의 게토

2. 역사 속의 선택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이를 증명하는 차고 넘치는 기록들이 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세계 인구의 0.2-3 %가 채 되지 않는 소수의 민족으로 살아왔다. 거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탈무드는 진단 한다.  첫번째 이유는 바벨론 포로와 핍박의 시대와 14-15세기의 스페인과 19세기의 유럽에서의 개종으로 기인된 대량 학살과 포그롬이 있었다. 만약 반유대주의로 인한 하드리안 왕조의 멸절 시도와 십자군과 홀로코스트가 없었더라면 그들의 인구도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수용소로 끌려가는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가는 유대인

두번째 이유는 유대인들이 다른 민족을 개종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만약 전도를 했다면 아마도 기독교나 이슬람처럼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불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말빔은 가나안에 들어 갈 때 일곱 민족이 있었고 모세는 강하게 혼합결혼을 금할 것을 경고하였다. 이는 인종적인 혼합보다 종교적인 혼합에의 문제에 기인한 것이다. 그 이유는 며느리나 사위가 자식들을 유혹하여 “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신7:4) ” 하나님이 진노하고 그들을 멸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였다.  말빔은 하나님은 혼합결혼을 통해 이루려는 인구증가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단언한다. 

역사는 1세기의 로마 제국 때 유대인들이 전체 인구의 10%를 웃도는 시기가 있었다고 진단한다. 당시, 많은 로마인들이 헬레니즘의 세속적인 다원주의와 혼합주의에 식상하고, 유대인의 신앙과 삶의 방식에 매료되어 유대교적 신앙을 접목하게 되었다. 그들이 직면하게 된 것은 계명과 할례였다. 그 때  유대인들은 그들로 하여금 개종하기 위해서 그들의 삶을 포기해야하는 결정을 요구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그 때 많은 사람들이 대신 개신교의 신앙 노선을 따르게 되었다.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은, 지속적으로 숫자를 늘리려는 시도 보다는 그들이 소수로 남더라도 그들의 본질과 가치를 잃지 않으려는 선택을 해오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하겠다.      

수용소의 유대인 신원확인 촬영
수용소의 유대인 신원확인 촬영

유대인들은 소수이지만 그들보다 훨씬 더 거대한 힘들에 대해 위대한 일들을 이루어 왔다고 자부한다. 거기에는 신적 도움과 하늘의 지혜가 역사 속에 이들과 함께하셨다는 것을 토라를 따라 증명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 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느냐.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신명기4:32-34)” 

여러 분야의 유대인들
여러 분야의 유대인들

3. 위대함과 숫자

탈무드는 “하나님은 위대하게 되기 위해서  큰 민족이 될 필요는 없다고 인류에게 말씀하신다”고 강조한다. 그 이유는  국가는 사이즈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에의 공헌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유대인들은 역사 속에 수많은 선지자들과 제사장과 시인과 철학자들과 현자들과 주석가들과 랍비와 토라의 학자들과 학교를 배출해 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와 음악가, 화가와 영화인, 학자, 의사, 법조인, 기업가와 IT 창업자들이 나오게 되었다. 이 안에 불의와 가난과 질병과 무지와 싸우고 우울증과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이들을 돕는 사람들이 있다. 

안식일과 절기의 유대인
안식일과 절기의 유대인

탈무드는 다시금, 영적, 도덕적 지평을 늘리기 위해서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서는 오히려, 삶의 현장에서, 개인의 존엄과 가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인간의 연합된 힘,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고, 국가적인 책임감과 상황을 개선하고자 하는 생각들이 합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 실망과 넘어짐에도 동요되지 않는 높은 가치와 자발적 의지가 더 필요한 것임을 상기시킨다. 지금 이 시대에도 지속적으로 의료 과학의 발전과 농업과 기후, 예술과 과학 기술의 여러 영역에서 마치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해답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역사 가운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소수의 민족으로 남아 있다. 

 탈무드는 이스라엘은 역사의 법을 거부한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역사는 역사의 진정한 주인을 섬길 뿐이고 단지, 그에게 접속된 역사는 그로 인해 위대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거품 많은 인생에, 새삼 숫자를 거부하는 역설의 원리가 새롭다. 샬롬!

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

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 

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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