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겨울은 제법 쌀쌀한 날씨가 여러 날 지속되었다. 그래서인지 봄이 어서 왔으면 하는 기다림이 불쑥불쑥 마음에서 일어났다. 지난주에 마운틴에서 내려와 시내를 지나다 보니 자목련과 백목련이 따뜻한 봄기운을 안고 우리 곁에 와있었다. 그런 꽃소식의 기운을 받아서일까? 요즈음 영결식장에 가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각각의 다른 사연들을 가슴속에 고이 간직한 채로 이승의 삶을 마감하는 그분들의 평소 영상들을 쳐다보면서 다시 한번 생명성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3일 전인 지난 9일에 영결식을 맞이하게 된 그분은 평소에 금강경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독송을 많이 하다가 이 세상을 갑자기 혼자서 떠났다. 그분의 마지막 영혼은 어떤 상태로 이생을 마감했을까? 본인은 그분의 영정사진 앞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고별인사를 했다. 

금강경엔 여러 개의 나구란 게송(4구게송)이 나온다. 5글자로 된 네 구절의 시적인 표현으로 가장 핵심 내용을 담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중의 하나가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하라이다.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일체의 현상은 그 모두가 꿈과 같고 꼭두각시, 물거품, 그림자와 같으며 또 아침이슬, 또한 갯불과 같나니 마땅히 그와 같이 직시하며 살아야 하느니라. 앞서 이야기한 여러 현상은 그 모두가 일시적으로 있는 듯해 보이지만 영구불변한 실체는 아니어서 허망하다는 의미이다. 

특히 꿈은 그 대표가 될 수 있다. 우린 잠 속에서 일어난 여러 현상들을 꿈이라고 말한다. 그 속에서도 나와 대상이 분명하게 있고 희로애락의 감정도 느낀다. 그러다가 꿈에서 깨어나면 스스로가 그 꿈속 내용을 음미하다가 혼자 미소를 지으면서 꿈속 일들이라 모두 내려놓게 된다. 그것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라야 가능한 일이다. 만일 잠을 계속 이어간다면 꿈속의 일에 지속적으로 끌려다니면서 고락의 감정을 느끼며 방황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금 이 현실도 꿈속과 똑같다고 하는 말씀을 금강경에서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싶은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는 꿈속과 지금의 일상은 전혀 별개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온갖 것에 집착하면서 갖은 고통을 당하면서 사는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게 된다. 꿈속만 꿈이 아니라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도 바로 꿈속의 상황과 동일하다고 깨달은 서산대사의 말씀을 들어보자. 

어느 날 대사께서 어떤 처소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주인과 어떤 나그네가 재미있게 간밤의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주인몽설객(主人夢說客) 객몽설주인(客夢說主人) 금설이몽객(今說二夢客) 역시몽중인(亦是夢中人)이라고 하였다. 주인은 손님에게 자기 꿈 얘기를 하고, 나그네는 주인에게 또 그러하네. 지금 꿈 얘기하고 있는 두 양반 역시 꿈속에서 꿈 이야기 하고 있다네. 우리들 일상의 삶이 바로 꿈속의 일과 똑같다고 자각한다고 하면 우리 모두의 삶의 태도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열쇠는 미몽에서 깨어나는 일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것은 누가 흔들어서 깨워 주든지 아니면 스스로가 잠을 깨는 것이다. 그것을 불교에서 깨달음이라고 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의 현상 법칙에 잘못 이끌리어 그것이 지존의 가치인 양 탐닉하다가 갖은 고뇌를 만나게 되는 중생계의 현장, 영원불변의 참 진리를 깨달으신 성현들은 우리들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꾸짖는다. ‘슬기로운 사람들은 쌀로 밥을 짓지만 무지인의 소행은 모래로 밥을 만들려고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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