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모리슨 전 총리가 왜 그랬을까? 현직 장관을 믿지 못해 허수아비로 만들 요량이었나? 

아무리 코로나 팬데믹의 보건 위기 상황이 주요 배경이었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선진국 중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희한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5명의 장관직을 현직 총리가 ‘비밀리에’ 겸직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이번 주 확인됐다. 그가 겸직하며 권력 행사를 공유/감시한 장관직은 보건, 예산, 내무, 과학기술 자원, 재무부로 정부 운용에서 가장 중요한 부서들이 대부분 포함됐다. 

모리슨 전 총리는 17일 해명 기자회견을 갖고 그 나름의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2가지 이유 때문에 5개 장관직을 비밀리에 겸직했다고 한다. 첫 번째 이유는 현직 장관이 코로나 감염으로 일을 못하는(being incapacitated) 비상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대비책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지만 투명성과 과도한 대응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장관 외 부장관을 임명하면 될 일이다.

지난 1967년 해롤드 홀트(Harold Holt) 현직 총리가  바다에서 실종(사망 추정)됐다. 이런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영국식 의회 민주주의(웨스트민스터 시스템)에서 장관의 유고시 즉각 대행 임명이 가능하다. 따라서 현직 장관이 코로나에 감염될 경우, 대행 장관을 임명하면 된다는 점을 왜 무시한채 현직 총리가 무려 5개 장관직을 겸직해야 했나? 이런 절차를  무시했고 또 비밀리에 총리가 셀프 임명을 한 것은 권력 집중 욕구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클레어 오닐(Clare O'Neil) 내무장관은 “과대망상증환자의 무례한 폭군(rude megalomaniac despot) 행위”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아담 밴트 녹색당 대표는 “도널드 트럼프에게 기대할 수 있는 행위”로 비유했다. 

시드니모닝헤럴드지는 사설(16일자)에서 호주 정부 시스템에 대한 무시라고 질타했다. 

모리슨 전 총리는 총선 패배 직후 서호주의 한 교회 설교에서 “정부를 신뢰하지 말라”고 말했다. 종교적 의미를 떠나 9년반 집권을 했던 연립 정부의 마지막 총리로서 이런 발언은 제 얼굴에 침 뱉기였다.  

모리슨이 설명한 두 번째 이유는 총리에게 비상대권을 유보할(reserve emergency powers)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개인(장관)의 일방적 행동 결과로 국익이 위험에 처할 것을 우려했다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총리가 책임을 지고 행동을 해야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는 총리가 발탁한 장관들 중 일부가 혼자 단독 결정권을 가질 때 국익을 위해할 수 있다는 논리인데 팀플레이(내각)가 기본인 의원내각제에서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독재 스타일의 대통령제 국가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다.  

총리가 장관의 권한 행사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그런 장관은 절대 임명하지 말고 해임하고 다른 사람을 임명해야한다. 이것이 의회내각제의 작동 원리다.  

장관의 권한은 의회법(Acts of Parliament)에 명시돼 있다. 예를 들면 재무장관은 주요 외국자본의 호주 투자에 제동을 걸 수 있다. 보건장관은 생체안보 위급 상황(biosecurity emergency) 중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할 수 있다. 

내무장관은 살인범 또는 성폭행범의 비자 취소가 가능하다.  예산장관은 팬데믹 권한으로 의회의 승인없이 수십억 달러를 지출할 수 있다.  

법이 이를 허용함에도 불구하고 모리슨은 분명히 장관들 혼자 이런 권한을 가져서는 안 된다라고 판단했다. 국익 저해 위협을 우려했기 때문에.. 의원내각제 국가의 총리가 이런 근거 없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 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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