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호주땅에서 육만년 동안이나 기록된 법없이 살아오던 애보리진 원주민의 세계에 시커먼 먹구름이 덮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이백삼십오년 전의 일이었다.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부자나라라고 한국이 가난했던 초등학교 때 배웠을 때만해도 남의 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결과라는 것을 알기엔 내가 너무 어린나이였다. 사진으로 보기에도 멋진 제복 - 흰바지에 붉은색이나 검정색 상의와 위엄 있어 보이는 모자를 쓰고 호주 땅에 닿은 식민지 개척자들의 눈에 비친 원주민들은 검은 피부를 드러낸 벌거벗고 흉측한 모습이었으니 인간이하 동물 취급을 했으리라. 동물세계만이 아니라 인간세계에서도 약육강식의 법칙이 존재했고 그 덕분에 현재 내가 호주라는 나라의 체재 안에서 잘먹고 잘살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우리 가족이 호주에 이민 온 지 삼십오 년이 되어간다. 그 당시 나와 남편을 인터뷰했던 이민담당 서기관이 비자를 내주며‘호주는 무궁무진한 기회의 나라’라고 했을 때만해도 일종의 개척정신으로 호주에 오면 무언가 이루어 낼 것 같은 기분이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무지가 용감을 키운다했던가.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일에만 집중하다 보니 애보리진 원주민에 대해서는 추상적으로만 알았을 뿐 딱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들에 대해 매스컴에서 이슈가 될 때마다 그런가보다 하며 큰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왔다. 

어린 아이들 둘을 데리고 왔으니 우선 정착하고 학교에 보내는 일에 신경을 쓰며 그냥 내 식대로 바쁘게만 살아왔을 뿐이었다. 최근에 끝내 모르고 지날 뻔 했던 원주민에 대한 통한의 역사를 늦었지만 어느 정도 자세히 알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바위처럼 무거워진 마음으로 그들을 생각하며 며칠을 보냈다.

딸이 교편을 잡고 있는 학교에 애보리진 교육관들이 와서 그들의 소리를 세시간에 걸쳐 선생들에게 강의해 주었는데 그 내용을 딸에게 듣고 이 세상에서 인간이 제일 잔인한 동물이라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이제까지 내가 뿌리 내리고 사는 이 나라의 역사를 백인의 입장에서만 알았으나 원주민의 입장에서도 보아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간과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 땅의 원주민에 대해서 백인들이 저질렀던 만행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 넘치게 많다. 아서 필립 제독이 이끌고 온 첫번째 함대는 11척의 배로 이루어져 있었고 첫번째 죄수선엔 남자들만 타고 있었는데 호주땅에 닿자 그들이 원주민 여자들을 취한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을 1/2, 1/4, 1/8..로 융화시키기 위한 정책이었다니 기함을 하고도 남는다. 평화롭게 자기네들의 삶을 살아가던 애보리진 여자들이 얼마나 망측하게 당하고 있었을까. 또한 그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원주민 말살 작전으로 그들이 마시는 물에 독을 풀고 그들에게 천연두균이 감염된 담요를 주었다고 한다. 그들의 문화와 이름과 정체성을 빼앗았고 언어를 쓰지 못하게 했으며 몇 십년에 걸쳐 학살을 자행했다. 

 뉴카슬대학의 한 역사학자가 올해 새로이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가해자들은 원주민들의 목을 쇠사슬로 엮은 채로 땔감나무를 주워오게 했으며 나무에 등유를 부어 불을 붙힌 다음 원주민들을 그대로 불속으로 밀어 넣었다는 최악으로 잔혹한 만행도 저질렀으며, 가해자들은 점점 더 계획적이고 잔인해졌다고 한다. 

 과학적 증거에 의하면 이들이 겪은 트라우마는 여덟 세대에 걸쳐 DNA에 녹아 들어 있다고 한다.‘빼앗긴 세대(Stolen Generations)’라던지 실화를 영화로 만든‘토끼막이 울타리’등은 백인들이 약자인 애보리진 원주민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했음을 여실히 알 수 있다. 문명화교육을 목적으로 아이들을 마치 길바닥에서 어슬렁거리는 주인 없는 개들을 낚아채듯이 마구잡이로 데려가 입양이나 기숙사에 강제 수용해서 원주민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이들은 신체적, 정신적, 성적학대를 당하고 훗날에도 트라우마에 시달려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나의 어린 손주들이 거리에서 강제로 잡혀가 이런 일을 당했다고 감히 상상하니 할머니로서 내가 까무라쳐 죽을 것 같은데 그 아이들 부모들의 뼈아픈 고통을 어찌 상상인들 제대로 할 수 있으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이런 일들이 백인들에 의해 자행되었던 것이다.

 유튜브에서‘1월26일’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아서 필립 제독이 록스(The Rocks)에 영국 국기를 꽂은 날을 기념하는 호주의 날 1월26일을 데이빗 베니욱이라는 울릉공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민요가수 겸 작곡가가 부르는 이 노래는 나에게 깨달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왜 비극의 날을 경축하느냐는 가사를 반복해 부르면서 배경에 나오는 동영상엔 애보리진 원주민 남자들이 목에 굵은 쇠사슬을 감고 옆 사람들과 같은 쇠사슬로 이어져 있는 사진과 ‘침략, 살인, 강간, 도둑질이 시작된 이 날을 경축합시다’라고 비꼬아 만든 포스터가 나온다. 원주민들에게 침략의 이 날을 구태여 호주의 날로 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나는 이제 원주민들을 보는 시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한국말로 하면 호주원주민, 애보리진 등으로 칭하지만 영어로 이들을 칭할 때는 딸의 학교에 왔던 강사에 의하면 애보리지널(Aboriginal) 이라고 부르는 게 적합하다고 한다. 흔히 애보리지니(Aborigine)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 사람들을 조센징이라고 비하해 부른 것처럼 비하하는 말이라고 한다. 교육부는 2023년의 목표가 애보리진 학생들의 고등학교 졸업률을 50% 증가 시키는데 있다고 한다. 마약과 알코올에서 벗어나 공부를 하고 일자리를 얻어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 수명을 10년 늘릴 수 있다니 이들에게도 어두운 터널 끝에 빛이 보인다고 할까.   

 2007년이 되어서야 연방정부 차원에서 ‘빼앗긴 세대’에 대한 사죄를 했다. 보수파들의 반발이 있었고 시행하는데 진통을 겪었지만 당시 케빈 러드 총리는 사과를 관철했다. 양파껍질 벗기 듯 앞으로 당면한 커다란 문제를 논하기엔 내 깜냥으론 너무 부족하지만 적어도 관심을 가지고 마음으로나마 성원을 할 뿐이다. 인간의 탐욕과 잔혹함의 그 끝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치가 떨린다. 식민지개척자들은 꼭 그런 방법으로 이 거대한 땅을 삼켜야 했을까.  

권영규(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장)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