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

모세의 시대에 이집트는 이스라엘을 종으로 삼았었다. 극심한 노역을 강요하고 히브리인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태어나는 갓난 남아를 모두 강에 던져 넣으라고 명령을 내려 대량 학살을 시행하였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시점에 모세는 아무일도 일어 나지 않았던 듯, 마치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 사람들의 환대에 빚을 진 것처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네 형제임이니라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네가 그의 땅에서 객이 되었음이니라. (신 23:7)”

모세는 한편 출애굽을 하며, 유월절에 쓴 나물을 먹고 무교병을 먹으며 이것을 기억하여 미래 세대에 잊지않고 전해지도록 하기 위한 내재된 메시지를 전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를 향해가는 백성들에게, 모세가 전하는 ‘이집트 사람들을 미워 하지 말라’는 앞 뒤가 맞지 않는 것 같은 이 말은 과연 무엇을 의미 하는 것일까?   

유월절의 무교병과 쓴나물
유월절의 무교병과 쓴나물

1. 자유의 역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진정 자유하고 싶다면, 미움이 떠나가게 해야 한다.’ 는 것이 모세의 강조점이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영원한 원수인 그들을 미워한다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끌고 나왔지만, 결코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이집트를 끄집어 낸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정신적으로 그들은 아직 이집트에 과거의 종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아직도 쇠사슬이 아닌 마음의 더 끊기 어려운 강한 사슬에 묶여 있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미움의 바탕 위에서는 진정한 자유의 세계를 건설할 수 없다. 분노와 원망, 모욕과 불공정의 불만으로 과거의 핍박자에게 상처를 가하는 것은 자유를 저해하는 확연한 결핍 요건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탈무드는 “우리는 과거와 함께 살아야한다. 그러나 과거 속에 살면 안된다.”고 가르친다. “과거의 핍박자에 대해 노여움으로 매여있는 사람들은 지금도 ‘종’일 뿐이다. 이는 과거에 자신을 ‘종’이라고 명명했던 원수들로부터 아직도 진정한 자유를 얻지 못한 것이다.” 라고 첨언하고 있다. 

아간의 죽음과 율법의 엄중함
아간의 죽음과 율법의 엄중함

모세가 말한 “네가 이집트에서 종이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신명기15:15)” 는 말은 미움과 복수, 앙갚음과 같은 것을 유발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이집트를 기억하며, 종살이를 제한 하라는 것이다. 과한 노역을 부과하지 말고, 그들에게 안식을 주고 7일 째엔 꼭 쉬게 하고, 7년차엔 그들을 풀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 자신 처럼 그들을 인정하고 존재론적으로 열등하다고 여기지 말라. 어느 누구도 종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토라의 가르침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넉넉하게 주라. 추수에서 남은 것들을 먹게 하라. 밭의 한 귀퉁이를 남겨 두라. 너의 축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라. 남의 생업의 자산을 갈취하지 말라”는 것이다. 

토라의 법규의 총체적 구조는 이집트에서의 종살이와 깊이 연관돼 있다. 네가 마치 핍박의 피해자로서 마음에 느끼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핍박하지 말라는 것에 그 핵심이 있다. 토라의 윤리는 우리가 미움을 보존하자는 게 아니라, 내가 마치 피해자인 것처럼 느끼는 것을 기억함으로 과거를 정복 하는 것이다. 과거에 묻혀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반복을 방지하기 위해 기억하라는 것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돌보라는 성경의 가르침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돌보라는 성경의 가르침

2. 하나님의 역설

모세가 불타는 숲에서 하나님을 처음 만날 때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자유로 이끌라는 사명을 받았다. 하나님은 여기에 기이한 예언을 보탠다.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온 패물과 금,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 (출애굽기 3:21-22)”

이 말은 11장과12장에서 두 번이나 더 언급된다. 하지만 창세기에서 에스더서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원수들로부터 전리품을 챙기고 망치고, 약탈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난처한 상황이 전개된다. 우상 숭배를 한 경우 그들의 재산은 부정하고 불경건하고 파쇠되어야 하고 소유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여호수아 시대에 아간이 여리고에서 전리품을 숨긴 것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호된 벌을 받았다. 출애굽하며 받은 금은 나중에 우상인 금송아지를 만드는 것에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이 왜 중요한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소외된 자들에게 남겨진 곡식
소외된 자들에게 남겨진 곡식

탈무드는 종을 풀어 주는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종에겐 ‘종으로서의 스토리의 종결’이 필요하다.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종은 과거의 주인으로부터 적대감 없이 떠날 수 있어야 한다. 결코 모멸감이나, 분노, 복수심을 갖고 떠나서는 안된다. 만약 그런 상태로라면 몸은 풀려 났어도 정신적으로 그는 아직 노예 상태일 뿐이다. 떠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는 이유는 종의 상처를 싸매는 토라의 심리적 통찰력이 배어있다. 노예들에겐 필연적으로 치유되어야 영혼의 상처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사람들로부터 송별 선물을 받으라고 한 것은 이는 마치 하나님이 ‘이집트 사람들이 너희를 종으로 삼았지만 이제 그것이 과거가 되게 하려고 한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이제 “네가 미움으로 복수를 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고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억할 것은 종 일 때 가졌던 고통이지 과거 주인을 향한 분노의 감정이 아니다. 이를 위해선 상징적인 종결이 필요한 하나님의 역설이 담겨 있다. 

쇠사슬의 결박
쇠사슬의 결박

3. 미움과 자유는 공존할 수 없다 

죽은 사람은 살릴 수 없고 지난 세월의 상실된 자유는 회복할 수 없다. 어느 누구도 과거를 부정할 수 없고 기억의 회로에서 지워버릴 수 없다. 지우려 하면 할 수록 더 생생히 과거가 되돌아오고 극단의 마음으로 상대에게 원수를 갚으려는 생각으로 치닫게 된다. 그래서 과거의 주인은 떠나는 종에게 선물을 줘서 마무리를 해야한다. 이제 종은 충분히 공헌을 했고 당당한 한 자유인으로서 복지를 누릴 수 있도록 인정을 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보상의 정의라 불리는 ‘피해 보상’과 같다.  

자유를 향한 갈망
자유를 향한 갈망

탈무드는 ‘미움과 자유는 공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유로운 사람은 과거의 원수를 미워하지 않는다. 아직도 미워하고 있다면 아직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다. 핍박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핍박 받은 사람들의 과거의 사슬을 끊어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유는 미움의 단절을 전제로 한다. 왜냐하면 미움은 반대로 자유로의 포기이기 때문이다. 

모세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미워하지 말라고 하는 말에는 과거로부터의 종된 삶의 확연한 청산과,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고 새로이 건설할 미래의 가정과 나라를 향한 신적 통찰이 담겨져 있다.

자유하기 위해서는 미움을 떠나 보내야 한다. 샬롬!  

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

문화교류학박사 (Grace Theological Seminary) 

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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