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죽었고 나는 미쳤다. 세상의 어떤 언어로도 이 상황을 표현 할 수는 없다. 그의 죽음을 기억하거나 받아들임은 내가 사는 동안 감당할 영역이 아닌 것 같다.

 병상에서 사후에 남을 일을 철저히 정리한 후 그토록 원하던 집으로 돌아와 함께했던 시간,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죽는 순간이 그리 아름다울 수 있었는지. 마지막까지도 그는 조용했고 의연했다. 정신은 맑았고 속옷마저 깨끗한 채 남은 의식 앞에서도 죽음을 초월한 듯 담담했다. 오히려 자식들을 위로하며 간곡히 나를 부탁했고 영혼에 새기듯 각자에게 눈을 맞춘 후 숨을 내려놓았다. 모세혈관의 떨림마저 멈추었으나 한동안 시신은 따뜻했다. 우리는 함께 누워 그의 몸을 껴안고 만지며 서서히 식어가는 체온에 함께 추워했다. 세상마저 온전히 멈춘 시간을 붙드느라 병원 연락도 늦추었다. 오후에 의사와 장의사가 도착했고, 나는 그 이후에 별 기억이 없이 그저 꿈을 꾼 것 같고 아직 살아 숨쉬고 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인들 외엔 그가 중증의 환자였음은 아는 이는 없었다. 도리어 잔인한 병마를 안으로 삭히며 깊게 화해하고 수용했다. 속절없이 무너지던 몸과 마음을 평정심과 자제력, 운명으로 받아들여 때로는 마치 도인과 함께 사는 것 같았다.

 역마살이 있던 그는 혼자서 또 함께 자연을 누볐다. 여행 길에서 해방을 찾고 병의 고통에서 자유를 얻은 듯 했다. 햇살의 욕망을 즐기며 집요한 세균의 공격으로 파괴된 세포들을 청결하게 씻었다. 사냥감을 향해 총부리를 겨눌 때엔 쇠약한 몸이 치솟는 흥분으로 날아 올랐고 빈 손이어도 좋았다. 숲과 들판을 달릴 때엔 병마의 사슬이 끊어지며 충만한 망각으로 편안해했다. 심신을 지배하던 고통이 소멸되고 희열만이 그를 들어 올렸다. 전생에 어부였는지 바다에 넋 놓은 그는 배 낚시에 빠져 호주 바닷가를 멀리도 찾아 다녔다. 갖가지 신기한 어류들을 만날 때면 첫사랑 연인을 재회한 듯 벅차하며 살아있음을 몇 배로 느꼈다. 스킨스쿠버를 즐길 때엔 바다와 한 몸이 되어 물 속의 생명체와 눈맞춤을 했고 산소통의 무게도 암세포를 보듬듯 가볍게 견디어주었다. 돌이켜보면 살아가는 힘을 숲과 바다에서 건져 올렸다.

 백년이 되어 우리처럼 늙어가는 집을 계속 손보며 견고하게 유지했다. 텃 밭에 심은 나무와 화초들은 그의 손만 닿으면 금방 토실해졌다. 게다가 나와 딸들은 옷수선을 맡긴 적이 없었다. 손수 자른 옷감을 미싱으로 박아 공구그기로 마무리 한 후 다려 낸 옷들은 지인들이 감탄했다. 낚시의 바늘처럼 그의 바느질은 나와 딸들을 위한 그만의 헌신이었고 완벽한 관계로 작품이 되었다. 그의 손은 두텁고 부드러워 늘가족의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

베토벤의 음악은 그가 만난 지상 최고의 선물이었다. 불출의 심포니에 압도당하며 모든 세포가 일어나는 감당못할 극치를 만끽했다. 소리의 장엄함 앞에서 병으로 얻은 모든 상실은 희망이 되었고 지친 영혼은 위로와 치유를 받았다. 베토벤의 비운과 장애가 열정과 격정이 되었 듯, 젊은 날에 가장으로 치열히 살던 때를 추억하며 삶의 굴곡을 돌이켰는 지 모른다. 영혼까지 안아주는 베토벤을 숭배하고 열광하며 마니아로 지냈다.

 그와 함께한 35년, 살면서 싫은 소리나 지청구를 들은 기억이 없다. 가끔 나의 일탈을 핑계로 분에 넘은 사치를 했을 때도 한사코 본인의 능력을 유감스러워했다. 장례 미사 전 사제가 우리의 가정사에 관해 물었을 때‘늘 존중 받고 살았다’고 대답했다. 나는 이걸로 내 결혼생활을 가감없이 표현한다. 주위에서 진국, 부처라 불리우며 순둥스럽고 유머러스한 그를 마다할 사람이 없었다. 손해를 볼 때도 크게 연연해하지 않아 혼자 천당에 가라며 마냥 비양거렸다. 그가 정말로 그곳에 가있다면 우리의 재회는 어려울 것 같다. 덧붙여 고인을 기억하는 이 글을 그가 듣고 있을 터 과장은 애초에 없다. 

 인생에서 가장 잔인한 시간, 세상에서 길을 잃었고 자식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대로 죽을 수도 있었고 신은 애초에 없었듯 내게서 가장 귀한 그를 앗아갔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의 모든 수고와 희생을 당연해하던 과보를 받고 있는 듯 하다. 이제 모든 것이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일상은 의미가 해체되었고 무기력한 전개의 나열 앞에서 함께 하던 여행도, 버킷리스트도 다시 리셋해야 한다. 뿌리 깊은 나무이던 그는 겨울 밤하늘의 비켜 뜬 달로, 나는 사각거리는 소리마저 아픈 가을 바람의 서러운 가사를 쓰고 있다.

 시간은 약이 아니었다. 불면증을 겪으면서도 낮에는 꾸벅거렸고 식욕을 잃고도 어느 새벽에 게걸스레 먹고 있었다. 수저를 내동댕이치며 짐승처럼 울다 잠든 꿈에 그가 찾아왔다. 마음 가는대로 살라며 굳이 붙들지도 보내려 애쓰지도 말란다. 괜찮다며 늘 지켜주니 담대하라며 평소처럼 너그러웠으나 단호했다. 

 내 삶의 무대는 사별의 전후로 나눠진다. 세상에서 아빠를 제일 존경한다는 자식들로부터 과분한 대우를 받고있으니 그의 보살핌 임에 틀림없다. 한 부분 그의 영향을 받았겠지만 정반대 성향인 나는 결코 그처럼 살 수는 없다. 단지 그의 행적을 흉내 낼 뿐, 이제 늦었지만 그이처럼 잘 살다 잘 죽고 싶다. 크고 작은 문제에 직면하면 그에게서 답을 구하고 그의 방식을 따르다보면 어느새 주위가 정리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그의 절대적인 사랑만으로도 차고넘쳐 이제부터는 당당하게, 남은 시간이 나의 고통에 동참할 권리를 허락한다.

 문득 기억과의 단절은 다른 경지의 이별일 수 있겠지만 나의 방식은 아니다. 통속적이게도 나는 그를 보내지 않았다. 그와의 기억을 구멍난 심장에 묻으며 그러나 집착이지 않게 애도한다. 삶은 상실의 연속, 죽음은 영원을 갈구하는 다른 차원의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 이제 생의 한계를 반추하며 널부러진 정신을 다 잡아 美쳐 살아갈 일이다. 그가 나의 남편, 우리 자식들의 아버지로 만난 인연과 눈부시던 시간을 선물해주신 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곽숙경(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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