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말 구 소련이 붕괴되고,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냉전 시대가 끝나갈 때, 전 세계는 서구가 공유해 왔던 윤리가 이데올로기로 인해 상실되는 불안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결집된 윤리없는 사회는 결국 붕괴되고 말았다. 개인주의는 점점 강해지고 사람들은 더 이상 공공의 선을 위해 열심을 내지 않았다. 공동체적 책임감은 뒷전이 되고 공공의 삶을 보호하는 힘의 결집엔 무관심하게 된 것이다.  

최초의 역사학자로 불리는 헤로도투스

1. 현대 유대인의 정체성

구 소련 지역에 살던 현대 유대인 철학자들은 전체주의가 유대인들에게 어떤 것인지를 몸서리치게 알게 되었고, 그곳으로 부터의 탈출은 고대 이집트로부터의 출애굽과 같은 개인적 기억을 갖게 하였다.  유대교는 노예로부터 자유로 향하는 여정에 태동된 종교이다. 그리고 모든 유대인 자녀들이 유월절과 그들이 먹는 절기 음식을 통해 기억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현대 유대인의 현자라 불리는 이사야 벌린 경은 ‘유대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역사의 기록과 탐구
역사의 기록과 탐구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자부하는 모든 유대인들은 역사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른 어느 민족보다 지속적인 공동체로 생존한 오랜 역사를 기억한다.  어떠한 요소가 독특한 혼합체를 구성하는 것에 상관없이, 세상은 과거의 지속적인 역사 속에서 그들이 가장 질기게 살아남은 민족으로 인정을 하는데 큰 이견이 없다.” 

탈무드는 “이 말은 틀리지 않은 말이지만 생략된 중요한 구별점이 있다고 첨언한다. 그것은 “그들이 역사 속에서 가장 먼저 신을 발견한 민족”이라는 점이다. 유대인들 이야말로 계절이 바뀌고,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변함 없는 수레바퀴를 역사성 안에 가정 먼저 생각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최초의 역사학자로 알려진 헤로도토스나 그리스 역사학자인 투키디데스보다 오히려 더 먼저 처음 역사를 쓴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성경적 히브리어에는 ‘역사’라는 말이 없고 대신 어근 ‘Zakhor’라 불리는 ‘기억’ 이라는 의미의 단어가 대신 쓰여지고 있다.  이 말이 신명기에는 ‘기억하라’는 의미로 스물 한번 나오고, ‘잊지말라’는 의미로 열네번이 쓰였다. 

역사와 현재
역사와 현재

현자들은 근본적으로 ‘역사’와 ‘기억’에는 그 의미에 큰 차이가 있다고 강조한다. 역사는 어느 시대의 제 3자로서의 ‘그의 이야기’인 반면 ‘기억’은 1인칭으로 ‘나의 이야기’이다. 이것은 과거가 내면화되고 나의 정체성의 일부가 된 것란 말이다. 역사는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 났는가?’에 대한 대답이지만 기억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이다. 탈무드는 정체성은 ‘우리가 우리를 기억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치매처럼, 개인의 기억의 상실은 개인의 정체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통곡의 벽- 역사의 기억과 교육
통곡의 벽- 역사의 기억과 교육

2. ‘역사’가 ‘기억’이 될 때

‘키 타보’라는 말은 그런 면에서 아주 중요하다. 이는 성전에 바치는 첫 열매를 의미한다. 미쉬나(비쿠림) 3:4는 이스라엘 각지로부터 과실을 들고 음악과 축제로 기뻐하며 모여든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과실만 들고 오는 것 뿐 아니라 이 때 각 사람은 다음과 같은 선포를 해야 했다. 그들의 선포는 원래 오순절에 시작했지만, 나중에 유월절의 하가다에 들어가는 가장 잘 알려진 구절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방황하는 아람인이었다. 그가 이집트로 내려갔고 소수의 사람들과 거기서 살았고 나중에 거대한 나라가 되었다. ..”고 신명기의  출애굽의 이야기를 노래했다. 

여기서 ‘처음으로 나라의 과거를 되뇌이는 것이 모든 국민의 의무가 되었다’고 그들은 설명한다. ‘비두이 버쿠림’ 이라 알려진 이 말은 ‘첫 열매에 대한 고백’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이는 간단하면서도 필수적이지만, 과거엔 읽혀지거나, 소리내어 고백되지 않았었다. 짧으면서도 함축적으로 나라의 전체 역사가 정리되었다. 이들은 이렇게 노래한다.  

“ 메소포타미아의 원 조상들은, 신비적인 선사 시대로서가 아닌, 역사의 한 가운데로 히브리 국가가 접속되었고, 이집트에서의  노예에서 자유로, 다른 기후의 이스라엘 땅을 획득하고 이를 통해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인증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으로 시작된 움직임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끄집어 내었다” 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가 기억으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탈무드는 이것이 역사가 내면화된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를 현자들이 미쉬나에 “ 모든 세대의, 모든 개인은 이집트로부터 개인적인 출애굽을 한 것으로 인식해야한다(미쉬나 페사힘10:5)”는 말로 유대인 모두의 정체성에 각인되도록 기록하게 되었다.  

어려운 시절 속에서도 교육
어려운 시절 속에서도 교육

3. 정체성의 지속성

이는 유대인들에게 그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간과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조상들이 무엇을 기억했고, 그것이 나에게 전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의 정체성은 개인의 기억에 의해 구성된다. 그룹의 정체성도 역시 공동체의 기억으로 형성된다. 그저 미미한 스토리 텔링이 정기적인 종교적 의무로 전수된 유대인의 정체성은 수세기동안 지속되었다. 심지어 나라도 없고 땅도 지역적 친소성도 독립도, 주권도 없는 상태에서 유지된 것이다. 이는 이집트와는 상반되는 삶의 의미와 방향성과 공동체적인 자유와 정의와 생명의 존엄의, 사람이 주권자가 아님 하나님이 ‘왕’인 사회가 건설되는 것이었다.  

역사 속으로 오신 예수
역사 속으로 오신 예수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어떤 이야기에 내가 속해 있는 가에 있다. 모세는 자신들이 어느 이야기에 속해 있는 지 잊지말 것을 당부했다. 유대인들은 세상에 대해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지속적으로 말해 온 민족이다. 탈무드는 이것이 유대인의 정체성이 부요하고 공명이 있게 만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기억 용량은 날로 커져가지만 사람의 기억 능력은 점차 메말라가고 있다. 역사는 우리가 보고 싶은 때 찾아 볼 수 있도록 컴퓨터로 대신할 수 있지만 기억은 대체 할 수 없다. 기억은 전수되지 않고, 전수될 수 없는 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사람되게 하는 것이다. 탈무드는 만약 민족적 정체성이 유지되기를 바란다면, 때마다 기억을 새롭게하고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바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려 한 것이고 유대인들이 대대로 전수해 온 것들이다.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강조하는 제목이다.  

21세기, 국적을 쉽게 넘나드는 글로벌 시대에도 국가적인 기억은 너무나 소중하다. 윈스톤 처칠은 ‘더 길게 되돌아 볼수록, 더 길게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한 하나님의 약속은 역사가 되었고 그들의 기억이 되고 정체성이 되었다. 

2000년전 오랜 역사 속에 예수는 동일한 약속을 위해 이 땅에 살았다. 그것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의 백성된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이다. 역사는 기억으로, 기억은 믿음을 바탕으로 시대마다 내면화 되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공동의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세워가는 신의 변함없는 손길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샬롬!

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

문화교류학박사 (Grace Theological Seminary) 

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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