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3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수어의 날(International Day of Sign Language)’이다. 이 날이 지정된 배경은 농인 인권 실현와 지역사회에서 수어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것이다. 

지난 3월 2022년(제94회) 아카데미상(오스카) 남우조연상 시상식에서 인종과 언어를 초월한 수어로 대화가 이루어진 에피소드가 눈길을 끌었다. 남우조연상 시상자로 나선 한국 배우 윤여정씨가 수상자 ‘트로이 코처’를 위해 수어로 호명하고 그가 수어로 수상 소감을 말할 수 있도록 트로피를 대신 들어주는 그 장면은 감동을 자아냈다.

그것이 작은 불씨의 시작이었나.. 2023 제주도에서 열리는 세계농아인대회 홍보대사로 ‘트로이 코처’가 위촉됐다. 그는 “수어는 우리의 모국어이다. 수어의 존재성과 계속성을 이야기하고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드니에서도 오래 전부터 수어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한인 동포가 있다. 주인공은 박영주씨. 

그는 지난 14일 사인피디어(Signpedia) 회사의 ‘리틀 오슬란 아카데미(Little Auslan Academy)’ 과정인 오슬란(호주 수어) 멘토 수업에 한호일보 기자를 초청했다. 박 씨는 지난 7월 EU극단의 창작연극 ‘서시’에서 청각 장애인 역을 맡아 한국 수어로 무대에 오른 EU극단의 1호 청각 장애인 배우다.

Little Auslan Academy에서 수어를 가르치는 박영주 씨
Little Auslan Academy에서 수어를 가르치는 박영주 씨

수업에 참가한 아이들은 킨더가든 입학 전의 어린이들이 대부분이었다. 5명의 어린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수업에 참여했다. 2020년부터 시작하려고 했던 오슬란 멘토 수업은 코로나 때문에 무기 연기됐다가 올해 2월부터 시작해 꾸준히 수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학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오슬란을 배우고 있다
학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오슬란을 배우고 있다

수업에 참가한 아이 중 한명은 청각장애로 인해 이미 인공와우(청신경에 전기적 자극을 직접 제공해 줌으로써 손상되거나 상실된 청신경세포의 기능을 대행하는 전기적 장치) 수술을 받았다. 엄마와 여동생이 함께 수어를 배워 소통하기 위해서 수업에 참석한다. 또 다른 아이는 예비 고모부가 청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수어를 배운다고 설명했다. 

박 씨를 도와 수업을 진행하는 샐리 스미드(Sally Smid)는 세 자녀 중 첫째 아이가 청각장애가 있다. 이날 수업은 다양한 이유로 수어를 배우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 

오슬란 교육자료
오슬란 교육자료
오슬란 교육자료
오슬란 교육자료

쉬는 시간, 점심 시간이 되면 부모들은 박 씨에게 다가와 단어를 정확하게 수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또 아이의 행동에서 이해가 안가는 부분 등을 질문했다. 

박영주 교사가 Signpedia의 캐서린 로빈슨(Catherine Robinson) 최고경영자와 수어로 대화하고 있다

“아이들이 영어를 못하는 부모와 대화의 단절이 일어나는 것처럼 청각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부모, 또래와 대화를 깊이있게 하지 못하면 화가 나고 답답한 상황이 많아진다. 그래서 수어라는 이중언어가 정말 중요하다. 특히 조금이라도 말을 할 수 있거나 들을 수 있을 때, 수어를 배워야 한다. 호주 부모들은 대게 수어를 잘 하고, 배우는 것에 장벽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 박 씨는 한인들도 ‘수어’에 대한 관심, 중요성을 더 많이 알아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Signpedia의 바더 훔(Bader Haouam) 이사가 학부모들과 수어로 대화하고 있다.
Signpedia의 바더 훔(Bader Haouam) 이사가 학부모들과 수어로 대화하고 있다.

사인피디어(Signpedia)의 캐서린 로빈슨(Catherine Robinson) 최고경영자와 그의 남편 바더 훔(Bader Haouam)도 청각 장애인이다. 사인피디어는 청각 장애인들이 주도하여 그들을 돕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비전을 가지고 설립한 회사다. 

16일 열린 2022 호주 굿 디자인 어워드(Australian Good Design Awards)에서 리틀 오슬란 아카데미는 서비스 디자인 부문에서 수상했다. 3년의 프로그램 연구와 개발을 통해 청각 장애인 자녀와 부모가  오슬란을 배우고 청각장애인 커뮤니티를 확대하며 아이들을 연결시키는 구심점으로써 더욱 기대가 된다. 시상식에 박 씨는 한복을 입고 참석해 한국과 한국 청각장애인 커뮤니티를 소개했다.

2023년부터 NSW 정부의 공식 커리큘럼으로 오슬란 수업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2022 Australian Good Design Awards의 서비스 부문을 수상한 Little Auslan Academy
2022 Australian Good Design Awards의 서비스 부문을 수상한 Little Auslan Academy
한복을 입고 시상식에 참가한 박영주씨가 호주수어로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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