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인생길에 들어선 나의 미래는 탄탄대로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그러나 어느 누구도 미리 볼 수 없는 죽음의 골짜기 외에는 훤히 보인다. 오늘과 내일이 똑같은 날들임을 알기에 쓸데없는 희망이나 조바심 없이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느긋하게 살고 있다. 탄생의 비화나 사랑의 아픔과 미로 그리고 욕망의 지뢰밭 같은 돌아갈 수 없는 역동적인 과거의 삶이 몇 장의 풍경화나 연극무대처럼 기억속에 보관되어 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보는 여유로움도 노년의 즐거움 중에 하나일 것이리라.

나는 이세상에 태어날 때 울지 않았다. 이미 두차례나 핏덩이 자식을 떠나 보냈던 엄마는 나의 죽음을 확인하기도 전에 포기하고 홑이불을 덮어 놓았다. 반나절이나 지난 후 가족들이 모여 앉아 서로 슬픔과 아쉬운 마음으로 엄마를 위로 하고 있을 때였다. 마치 ‘나 아직 죽지 않았어.’라고 소리치듯 내가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언니오빠들은 아기귀신이라도 만난 듯 놀랐고 엄마가 그들을 밀치고 허겁지겁 안으며 이불로 덮여 있던 나의 얼굴을 처음 보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젖을 물렸다. 태어난 순간이 삶의 시작이었을까 울기 시작한 순간이었을까. 아니면 젖을 빨기 시작한 순간이었을까. 특별한 탄생이나 태몽을 갖고 태어나면 비범한 사람이 된다는데 나는 평범한 인간이었고 내 인생길만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죽었다 살아난 뒤에 이어지는 나의 유아기 인생의 삶도 녹록치 않았다. 먼저 태어난 여섯 명의 자식들과 아버지의 양조장일까지 뒷바라지하는 엄마에게는 젖을 얻어 먹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함께 살던 외할머니는 동짓달 초하루날에 계집아이가 유난을 떨며 태어났다고 외면한 채 작은오빠만 정성으로 보살폈다. 하지만 외로이 누워있는 나를 틈만 나면 안아주던 따스한 손길이 있었다. 별채에 살던 이씨 아저씨 부부였다. 자식이 없었기에 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컸다. 할머니한테 애 좀 내려 놓으라고 핀잔을 들으면서도 교대로 안아 주었다. 얼마 후 아저씨 부부가 오랜 동안 기다리던 임신까지 하게 되자 내 이름을 복덩이라고 부르며 더 잘 보살펴 주었다. 내 기억속에는 없는 짧은 유아기 인생사이다. 이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던 짧은 세월 동안의 증거는 없다. 아버지는 일년여가 지난 후 출생신고를 했다. 태어난 순간도 울던 순간도 아니고 더구나 동짓달 초하룻날도 아닌 다음해 겨울에 어느 날로 정해서 신고했다. 분명 살아있었던 시간들은 오로지 주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만 존재했던 것이다.

이씨 아저씨에 대한 나의 기억의 시작은 초등학교 때이다. 장날마다 손수레에 강냉이와 엿을 싣고 우리집에 들르던 아저씨의 모습이다. 엄마가 고물을 이것저것 챙겨주면 그것을 싣고 난 후 점심식사를 할 때 주변에 얼쩡거리는 나를 바라보며 인자로운 웃음을 지었다. 그때 작은오빠가 옆에서“니 아부지 오셨네.”하며 툭 밀었다. 왠지 배신당하는 기분과 억울함으로 오빠를 쫓아가면서 울다가 훌쩍이며 서있었다. 다가온 아저씨가 엿과 강냉이를 내 주머니에 가득 채워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아저씨의 눈에는 나는 아직도 복덩이였고 내 기억에는 아저씨는 가족과 친한 엿장수였다. 아저씨로부터 전해들은 내 아기 때 이야기는 없다. 엄마나 언니 오빠들로부터 전해 들었을 뿐.

무의식에 깜깜한 방에 저장된 나의 기억과 타인들의 기억으로 시작된 탄생비화는 수십년 동안 잊은 채로 살았다. 호주 이민 후 처음 한국을 방문해서 작은 오빠와 함께 부모님 성묘를 다녀오던 길이였다. 오빠는 익숙한 듯이 찾아간 어느 허름한 집 앞에 차를 세운 후 내리라고 했다. 의아한 마음으로 내리니 앞에 한 노인이 어디서 본 듯한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니 아부지야 대신 이씨 아저씨야 말하며 내 어깨를 툭 치는 오빠와 함께 인사를 했다. 나는 또 어릴 때처럼 당황스럽고 어색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들어가자는 아저씨의 말에 갑자기 방문한 것을 불편해 할까봐 오빠가 바빠서 가봐야 한다고 핑계를 대며 용돈이 들어있는 봉투를 건넸다. 오빠는 아저씨의 관계를 서로 기억하고 있었기에 아저씨에 대한 마음이 나와 다른 것일까. 아저씨가 나에게 베푼 사랑은 짝사랑처럼 그의 기억속에만 있었고 기억조차 못하는 나는 수많은 세월을 잊고 살았나 보다. 지금은 엄마도 이씨 아저씨도 이세상에 없다. 그들 또한 내 기억속에만 있다.

지구라는 아름답고 푸른 별의 기나긴 나이에 비하면 나의 인생은 한 순간이다. 이 별에 다녀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와 만나는 사람은 모래사장의 모래 한줌보다도 적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시선만으로 스치는 사람들은 결코 기억에 남지 않으리라. 삶과 삶이 부딪치며 생기는 사랑이나 분노 그리고 고마움 같은 감정으로 남을 때 기억할 것이다. 누구에겐 머리에 누구에겐 가슴속에. 공유된 기억을 함께 나눌 사람들이 아직 곁에 남아있고 비록 다르게 기억된 일로 실랑이를 벌여도 말년의 심심함을 달래 준다. 누구에게 어떻게 기억되든지 그것은 모두 내 삶의 그림자들이리라. 잘못된 기억들을 회복하고 잘 마무리할 수 있는 노년의 시간. 지인들과 자손들에게 남겨질 기억들과 죽음 앞에 가져갈 기억들을 잘 정리해서 떠나고 싶다. 그리고 그 시간이 주어진 노년의 삶은 축복이라 생각한다.

이영덕(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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