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이 늘 급하고 불평을 잘 하는 편이다. 이건 자격지심이거나 주관적 판단이고 평균적 한국인이 나 같은 지도 모르겠다. 요즘 매일 들어오는 카카오톡 메시지 가운데는 느긋하게 살라고 가르치는 게 많으니 말이다.

어쨌든 나는 독실한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이런 문제를 내심 기도 제목으로 삼아보기도 하고, 실제 생활에서 실천해보려고 노력한다. 동서양 마찬가지인데 실생활에서 쌓인 지혜를 나타내는 좋은 속담, 격언, 거기다가 한국에서라면 사자성어(四字成語)가 그런 원만한 심성을 독려한다. 

속담, 격언 수준은 아니지만 가끔 문장가들의 입에 오르는 말 가운데 교훈적인 게 많다. 오늘은 미국 영어에서 나온 그런 표현 하나 -If the shoes fit, wear them-을 가지고  평소 잘 안한 수필 하나 써보려는 게 이 글의 목적이다. 

위 영어 표현은 직역하면 신발이 맞으면 신으라, 의역하면 바라는 신발은 아닐지라도 발에 맞으면 그냥 신어두어라. 더 확대해서 설명하면 원치 안았던 일도 닥치면 선용(善用)하는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그간 뜻밖에 우리의 삶을 어렵게 만든 코비드-19를 어떻게 슬기롭게 지낼 것인가를 놓고 이 문구를 이미 한번 글에서 인용했었다. 이번에는 우리 집 계단  이야기다. 지금의 우리 집은 30년 전 AV Jennings이 지은  4베드룸 2층의 이른바 프로젝트 하우스로 고급 주택은 아니나 자녀들이 떠난 둥지로서는 넓은  공간이다. 

집을 지을 당시 장차 친지들이 나이 들면 2층 올라다니기가 힘들 것이라는 경고를 했었다. 지내보니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내 경우는 취침과 기타 이유로 하루 한두어번 올라다니는 건 아직은 큰  문제가 아니다.  

방안에서 걷기 운동 

그러나 내가 보통 하루를 보내면서 짜증 날 때가 많은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아래층은 넓은 유리창이 몇 개 있으나 옆집이 바짝 붙어 있어 낮에는 어둡고 겨울에는 춥다. 2층은 반대다. 햇빛이 잘 들어와 밝고 따뜻하다. 그러나 한 여름에는 복사열로 너무 덥다. 

부엌은 아래층에 있고, 일부 책과 자료와 학용품, 그리고 외출할 때 쉽게 갈아입을  옷가지 일부는 아래에 두고 있어 하루 얼마 동안은 내려와 있어야 하고, 글을 쓸 때라든가 컴퓨터를 움직이려면 위로 몇 번 올라와야 한다. 그럴 때마다 안약, 제체기약, 혈압약, 안경, 손톱깎기와 여기 모두 적지 못하지만 어딘가에 둔 잔 물건들을 찾으러 여러 번 오르내려야 할 때는 짜증이 난다.

그런데 내가 요즘 늦게 깨닫는 건 이 고역이 덕이 되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사실이다. 일부러가 아니고  자연히 하게 되는 건강을 위한 값비싼 보약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계단 오르내리기는 즐거움이다. 매사에 이런 태도라면 산다면 훨씬 편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김삼오(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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