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제목은 내가 아니라 내가 믿기에 한국의 대표적 정신적 지도자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내세우는 지론이고 신념이다. 이 정도의 말은 나도 그렇고 다른 일반인도 할 수 있겠으나 그는 100세가 넘도록 평생 이것을 일관되게 실천으로 옮겨온 게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아는가? 나는 그와 지내보지 않았으나 그간 외부로 나타난대로 한 번도 큰 직함이나 돈 욕심을 부린 적이 없다. 그랬다면 그 경력과 지명도로 봐 한국의 대표적 지성인으로 알려진 몇 사람 학자들처럼 문화부장관과 대학총장 말고도 재벌 고문, 정부의 전문위원 자리 하나는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나는 오늘 김교수 예찬론을 쓰려는 게 아니다. 그런 글은 다른 사람들이 그간 많이 썼고 책과 다른 대중미디어를 통하여 널리 전파되었다.

오늘의 한민족사회의 현실을 볼 때 이 말이나 그가 설파하는 인생철학이 왜 그렇게 중요하느냐, 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하느냐, 그런데도 그런 게 전혀 먹히지 않고 세상은 갈수록 어지러워지는가, 해법은 무엇인가를 짧게 써보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아니라 한민족사회라고 굳이 쓴 데는 이유가 있다. 갈수록 고국의 영향권으로 빨려 들어가는 해외 거주 한인들도 똑같이 생각해야 할 큰 이슈라고 보기 때문이다.


군자의 길

인격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표현은 달라도 쉽게 설명할 수 있고, 말이 아니더라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개념이다. 양심, 정직, 도덕, 윤리, 자비와 같은 말들이 그것이다.  군자(君子)의 자질을 놓고 오랫동안 쌓이고 우리가 배운 그 많은 고전 문헌과 지식이 모두 그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 우리 나라와 우리 사회와 우리 민족은 이런 교육을 덜 받고 덜 입으로 말하는 다른 선진국들보다 이 인간의 높은 자질 면에서 꼴찌가 되어 버린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지적에 대하여 반론을 펼 인사들도 많을 줄 안다. 우리 민족, 특히 대한민국은 ‘보릿고개’ 이야기가 무색하게 비약적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최선진국 대열인 G10 또는 G7에 끼게 되었는데 무슨 소리냐고 말이다. 

그러나 그건 사회의 물질적 측면만을 바라보는 견해다. 다른 면을 보면 전혀 아니다. 정치는 여야 간의 토론이나 건전한 게임이 아니라 조폭들간 막말 싸움 수준으로 퇴보했다. 정치가 그런데 사회가 크게 다룰 수 없다.  만연한 사기와 살인과 절도 사건만 봐도 안다. 거기에 평화가 있을 수 없다.

그 원인을 여기에서 길게 논할 수 없고 한마디로 말한다면  행복은 인격만큼이 아니라 반대로 높은 직위와 돈만큼이라고 믿게 하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든 구성원,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정신과 사상을 지금도 크게 지배하는 유교의 좋은 가르침은 당대의 사회과학 지식의 결핍으로 모순된 게 많다고 생각한다. 도의와 공정을 강조하면서도 마른 자리에 앉아 편히 먹고 사는 길인 높은 직위를 명예로 여기게 한 게  한 예이다. 

높은 직위를 가지고 사회에 명실상부 공헌을 한다면 왜 나쁘겠나. 그러나 지금의 여건에서 그렇게 될 수 없다. 가장 순순해야 할 학자들의 모임인 분야별 학회나 일반 단체장을 하겠다면 사전에 밥을 사고 로비를 해야 한다. 더 큰 자리를 바란다면 정권의 줄을 찾아 동분서주해야 한다. 그것부터가 사회에 대한 기여가 아니라 사회의 기강을 흩트리고 갈등을 부추기는 일이다. 

단칼로 바꿀 길은 없다. 직위와 돈보다도 인격을 먼저로 하는 인물을 사회가 대접해주는 게 첩경이다.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다. 일정한 원칙을 따라 행동한다는 뜻이다. 그 원칙이란 안위(pleasure, 이 영어 표현은 안위와 쾌락 어느 쪽 의미로도 쓰이는데, 우리말 번역은 대개 쾌락 아니면 즐거움이다. 안위와 즐거움의 절정이 쾌락이 아닌가 한다)를 극대화하고 고생(hardship)을 최소화하는 일이다.

직위와 돈은 일단은 쾌락을 가져다주는 수단인 건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직위와 돈을 가진 사람 못지않게 그런 걸 크게 탐하지 않고 올바른 삶을 사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 인정하고 격려해준다면 쾌락의 사회적 개념도 세상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