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수어 멘토로 호주사회, 한국 교민사회에서 활동 중

- 어머니가 수어 배우는 것 반대했지만, 독학으로 수어를 터득해

- 11월 5일 저녁 6시, Tom Mann Theatre에서 ‘수어합창단’ 공연 열려

지난 5월 시드니에서 열린 호주한인장애인페스티벌에서 청각 장애인박영주씨는 활약이 주목을 받았다. 수어를 통해 노래하고, 춤을 추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다음은 박영주씨와 일문일답이다.

박영주 씨는 현재 다양한 영역에서 ‘수어’를 가르치는 멘토로 활동 중이다. 특히 오슬란 멘토(Auslan Mentor)로 호주 수어(오슬란, (Australian Sign Language)를 가르치는 멘토 활동을 하고 있는데 대상은 청각장애 아이들의 부모, 가족 중 청각장애인이 있는 경우,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 CODA)’로 불리는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청인 자녀들, 청각장애인 중 구화인, 성인이 된 후 청각을 잃은 사람 등 광범위하다.

리틀 오슬란 아카데미(Little Auslan Academy) 
리틀 오슬란 아카데미(Little Auslan Academy) 

요즘 킨더가든 입학 전인 어린 아이들에게 오슬란을 가르친다고 하는데..

“그렇다. 현재 사인디피아에서 근무하면서 리틀 오슬란 아카데미(Little Auslan Academy)를 열어 오슬란을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이 도착하면 인사를 간단히하고 아이들이 본인의 이름을 수어로 소개하도록 한다.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고 수어를 익힌다. 그 후에는 숫자를 가르친다. 아이들이 숫자를 알고 익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몇 명이 왔고 몇 명이 출석하지 않았는지를 세게하여 숫자를 익힌다. 날씨에 따라 아이들에게 다양한 단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그 외에 그림 카드 같은 준비물을 사용해 단어를 익히는 시간을 갖는다.” 

수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수어 이름’을 지어준다고 들었다 

“동명이인이 많다. 그런 경우를 모면하기 위해서 다양하고 개인의 특징에 맞게 얼굴 이름을 지어서 주는 것이다. 단 얼굴 이름을 지어서 주는 본인은 청각장애인이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얼굴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한다. 내 친할아버지가 경상북도 영주에서 작명소를 하셨었는데 아무래도 그 피가 나한테도 흐르고 있는 모양이다.”

Sign name 수어이름(호주수어)/얼굴이름(한국수어)
Sign name 수어이름(호주수어)/얼굴이름(한국수어)

9월 23일 ‘세계 수어의 날’을 기념해 아이들의 얼굴 이름이 적힌 수여장을 만들어 이름을 누가 지어줬고 어떻게 얼굴 이름을 수어로 표현하는지도 사진으로 설명한 수여장을 지급한다.

아이들이 특히 좋아할 것 같다. 박영주 교사 본인의 경험에 대해 소개를 부탁한다.

“저는 생후 5개월 때 열병을 앓고 청력을 잃었다. 한국에서는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특수학교인 구화학교(口話學校)에 다녔다. 어머니는 서울 종로구의 가회동에 살았었는데, 동네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가 집단 따돌림과 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보시고 내가 구화를 배워 장애를 숨기길 원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보청기를 사용하며 발성훈련을 받았는데 너무 힘들었다. 친구들과 놀지 못했고 매일 단어카드로 연습하고.. 피나도록 연습을 반복했다. 

어느 날, 옆집에 미국인 4남매가 이사를 왔는데 검은 피부 때문에 또래 한국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었다. 서로 언어는 안통했지만 마음이 통했던 우리는 정말 즐겁게 뛰놀았다. 그때부터 영어를 배우고 싶고, 영어로 그 친구들과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 입학을 했는데 일반 학교로 전학을 갔다. 옆 친구와 필담으로 얘기하면서 학교생활을 했다. 이대로는 너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신 부모님은 1981년 호주로 이민을 결정하셨다.“

어머니가 수어를 배우는 것을 반대했지만 수어를 독학했다고 하는데.. 

“그렇다. 캔버라에 살 때 공립학교에 청각장애인 학생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이상하게 손으로 막 움직이는 학생들이 있어서 남동생에게 물어보니 잘모르겠다고 했고 그 후 시드니로 이사를 왔다. 일반학교에 진학을 해서 학업을 따라가는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18살 무렵에 구화도 원활하게 잘하고 수어도 아주 잘하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부터 ‘아 내가 왜 수어 생각을 못했을까?’라는 점을  깨닫고 어머니에게 수어 교육을 허락 받았다. 

낮에는 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수어에 관련된 책을 사서 밤 늦도록 독학했다. 사전을 찾아보면서 영어단어, 호주수어단어를 공부했다. 그렇게 한국어, 영어, 호주수어를 공부했는데 ‘한국수어’는 호주수어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수어책을 받아서 공부하고,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선후배를 통해 한국수어를 배웠다.” 

수어를 하지 못했을 시기와 수어를 터득했을 때 어떤 점이 가장 달랐는지 

“수어를 하지 못할 때는 이해도, 소통도 불가능했다. 입모양이 비슷한 단어들이 나오면 대화를 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물, 풀, 뿔, 불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수어를 배우고 나서는 유머도 이해할 수 있고 대화 참여도가 확실히 차이가 났다. 정보를 스스로 모으는데도 훨씬 수월하고 나 자신에 대한 비전이 생겼다. 이제는 ‘수어 멘토’라는 직업도 갖게 되었다.. 취미 생활로 수어로 노래를 하기도 하고, 수어통역도 하고, 연기도 하고 , 수어 이름 지어주고, 무용을 추기도 한다. 수어는 특별한 언어이다.”

2022년 호주한인페스티벌에서 수어 찬양을 공연 중인 박영주 멘토
2022년 호주한인페스티벌에서 수어 찬양을 공연 중인 박영주 멘토

2023년 NSW 공식 커리큘럼에 호주 수어 ‘오슬란’이 추가된다. 그동안 열심히 요구한 것이 현실화됐는데 기분이 어떤가? 

“드디어 해냈다는 생각에 너무 기쁘다.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기분이다. 청각장애, 코다 학생들이 한계 없이 교육을 받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잘 성장하길 바란다. 사실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시니어분들에게도 수어교육을 추천해드린다. 청력이 약해지면서 듣고 말하는 것들이 어려워지는 때가 온다. 실제로 고객들 중에는 청력이 약해져서 수어로 대화하는 시니어분들이 꽤 있다.” 

호주 동포사회에서 청각장애 상황은 어떤가? 커뮤니티를 만들어 교류하고 수어를 교육한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 나를 통해 수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로 안다. 수어를 배우기 전에 멘토링을 해주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지도해주고 이야기한다. 청각장애 자녀를 둔 한인 부모들이 서로 만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서 청각장애에 관한 중요한 정보들을 편하게 공유하고 어려움들을 나누고 있다.” 

박 교사는 수어 교육은 물론 한국 홍보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2022 호주 굿 디자인 어워드(Australian Good Design Awards)에서 리틀 오슬란 아카데미가 수상을 했다. 시상식에 대부분 어두운 색상의 드레스를 입고 참석을 하는데 나는 분홍색의 고운 한복을 입고 참석했다. 인터뷰도 했는데 호주 수어로는 ‘한복’이라는 단어가 없어서 한복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문화예술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지난 7월 연극 ’서시’에 출연했고 수어합창단 공연을 준비한다는데..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유명한 성악가들도 함께 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서 수어 합창을 연습하고 있다. 공연은 11월 5일(토) 오후 6시, 톰 만 시어터(Tom Mann Theatre: 136 Chalmers St, Surry Hills)에서 열린다. 많이 와주시면 고마울 것이다. 

연극 서시 ‘연주’역을 연기한 박영주 선생
연극 서시 ‘연주’역을 연기한 박영주 선생

향후 비전과 계획은 무엇인가?

“지금은 농통역사(Deaf interpreter)가 되기 위해 공부하며 준비 중이다. 1년정도의 준비 과정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농맹인(Deafblind-태어날 때 청력 잃은 후 수어를 사용하다가 나중에 시각을 잃어 촉수어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통역도 촉수어(볼 수 없이 상대방의 수어 동작을 손으로 만져서 하는 의사 소통) 공부를 하며 훈련 중이다. 

농통역사란은 다른 나라에서 온 청각장애인을 위해 통역을 하는 또 다른 수어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레바논의 청각장애인이 호주에 오는데 호주수어를 할 수 없다. 이 상황에서 국제 수어나 특별한 교육을 통해 통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통역을 돕기 위해 공부를 하고 준비하는 중이다. 또 문맹이나 수어에 무지한 사람들을 위해 이런 공부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호주에 있는 한국 장애인 사회가 좀 더 돈독해지고 교류가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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