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서 한국을 다녀오는 여기 한인들이 부쩍 늘었다. 그리고  과거보다 즐거운 이야기를 듬뿍 가지고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된다. 고국이 잘 살게 되어 멋진 놀이터와 관광 명소와 맛집이 많아져 그런 거 아닌가 싶다. 대화의 내용을 들어보면 그렇다.

한국 여행을 가지 않거나 못하고 여기 그대로 사는 한인들도 요즘 호주보다 고국 이야기를 많이 한다. 모국이니까 당연한 거지만 미디어 전공자의 관점에서 보면 한인사회를 주도하는 1세와 1.5세들은 호주가 아니라 한국 뉴스를 주로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조사가 없지만 그들은 ABC나 채널7이 아니고 앉아서 단추 한번 누르면 한국과 동시에 보게 되는 YTN, 연합뉴스 같은 한국말 뉴스 전문 채널과  여러  종합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골라 보는 것으로 믿어진다.

한때 나는 주로 영어 방송을 듣고 영어 책과 영어 간행물을 읽고 쓰고 했었다(영어를 잘했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은 전혀 아니다. 그런 동기의식이 사라진 게 이유다. 텔레비전을 킨다면 한국 방송이고 신문도 한국어다. 대하는 사람도 거의 동족이다. 그러기에 나는 사업가가아니어서 경제적으로는 몰라도 시사와 관심 면에서는 한국과 더 일일생활권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물질적 풍요는 몰라도 매체를 보고 듣고 배우는 한국의 정치와 사회는 늘어난 멋진 놀이터와 관광 명소와 맛집만큼 즐거운 이야기 거리가 아니다. 무슨 뜻인가는 독자들 자신이 더 잘 아시리라 생각하니 따로 쓰지 않겠다.

법만능주의

이상 쓴 것은  한국과 일일생활권에 살고 있는 한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고국지향적인  글을 자주 쓰는 변(辯)이다. 이 글도 마찬가지인데 칼럼을 이런 변칙적인 스타일로 전개하는데 대한 독자의 양해를 구한다.

나는 너무  혼탁한 한국 정치를 개혁하겠다면 정치 지도자와 국회의원과 법조인들이 즐겨 일삼는 헌법과 그 많은 법률과 기구와 제도와 정책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정치사회문화에 새롭게 눈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무엇이 정치사회문화인가? 법과 기구와 제도와 정책 자체가 그걸 바라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그에 못지않게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 국민의 ‘행태적 취약점’이다. 이해하기 쉽게 몇가지 사례를  든다면 세계에서 2등 가라면 서운해 할 강한 한국인의 직위의식, 자기 이익이라면 어느 쪽이든 둘러붙는 정의감의 부재, 탐욕, 기회주의, 정실주의, 지역주의,  수오지심(羞惡之心) 등이다. 물론 구성원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게 문제다.

그건 오랜 기간을 거쳐 쌓인 사람들의 몸에 벤 습성이며 전통이어서 바뀌자면 국민적 각성과 합의가 이뤄져야 하고 그나마도 꾸준한 노력이어야 변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과 같아서는 시간이 갈수록 더 나빠진다. 이런 국민적 이슈를 걱정하고 연구하고 대중을 향하여 설파하는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다. 왜 없을까? 그런 사람에게는 일자리가 없고 미디어가 띄어 주지 않으니 그렇다.

관(官) 숭배

훌륭한 법과 제도만으로 나라가 된다면 대한민국의 정치는 지금쯤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해방 공간과는 달리 지금 이 나라는 법과 제도에 관한한 미비한 게 거의 없다. 법 전공자가 우대를 받고 법관이 많은 나라인지라 법과 기구 하나는 빠르게 그리고 깨알같이 잘게 잘 만든다.

‘기회주의’란 쉽게 말해서, 자기이익을 위하여 속된 말로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하는 경멸해야 할 인간의 행태이다. 막노동자가 아니고 국정을 담당하는 정치인이 그런다면 나라는 어지러워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기회주의자를 제재하는 법은 못 만든다. 법 만능이 해법이 아닌 한 가지 사례다.

높은 자리라면 사족을 못 쓰고 어떤 하수인 노릇도 마다하지 않는 저질스러운 관(官) 숭배자 또한 법과 제도로도 어떻게 할 수 없다. 배짱이 두둑해서 부끄러움 모르는 사람도 그렇다. 이런 사람들이 책임있는 자리에 앉으면 나라는 시끄럽다.

많은 다른 정치사회문화 아이템이 그러하다. 정부는 지난 반세기 동안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별의별 입법과 행정 조치를 고안해냈었다. 그러나 그 투기 세력은 더 늘어났다. 자기만이 얼마고 갖겠다는 탐욕스러운 인간 또한 법과 제도만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 된다.

살만한 집 한 채면 됐다는 검소한 평균적 국민, 돈은 정직하게 벌어야 한다는 국민이 대다수라면 법과 제도는 잘 먹히게 되어 있다. 내가 사는 호주나 선진 서구국가들이 4-50년 전만 해도 그런 사회였다. 지금은 국제경쟁과 제3 세계 물결의 영향을 받아 이게 많이 바뀌고 있다. 참 애석하다.

새 정권이 들어서자 과거 정권 아래 저질러진 대형 비리를 폭로 하는 공직자의 사례가 매일 보도되고 있다. 왜 그때는 못했을까.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항명하는 건 어렵지만 불의를 맞서 조용히 사퇴하는 건 가능하다. 선진국에서는 그런 사례를 가끔 본다.

한국에서는 법복을 벗어도 갈 데가 많은 판검사가 진급에서 빠지면 사직하는 일은 흔하다. 이것도 한 가지 정치사회문화의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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